2024년 5월 4일 (토)
(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자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0-03 ㅣ No.1267

[복음살이] 자살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자살통계(2013년 기준)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자살사망률)는 1992년 8.3명에 불과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에는 18.4명으로 급증했고, 2009년 30명을 넘어섰습니다. 2011년에 31.7명까지 늘다가 2013년에는 28.5명(총 자살자 14,427명)으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인 12.1명에 비해 2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특히 65세 이상의 노년층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80명에 육박하고 75세 이상 자살률은 훨씬 더 심각합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범위를 넘어서도 상위권 수준인데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106개 국가 중 그린란드, 리투아니아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살률의 증가는 사회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불안정이나 가치 혼란 등 사회적 병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 나타난 경쟁심화, 구조조정, 고용불안, 양극화 등 빠르게 변화된 경제사회구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사회적 병리의 심화로 인한 우울증과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한 복지와 상담, 보건 의료 등을 지원하는 공공서비스를 위한 체계 구축 등 정책의 부족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한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공동체의 붕괴, 즉 안정된 가정과 이웃을 돌아보는 관심과 사랑의 부족이 자살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인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 인간은 그 관리자

자살에 대해서 성경은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지는 않지만 성경의 여러 곳에서 ‘살인’을 금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자기를 살해하는 자살 역시 살인금지 계명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죽이는 것도 나요, 살리는 것도 나다”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인간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인간은 그 관리자일 뿐입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잘 관리하고 성장시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자살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돌보라고 하신 하느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 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258항에서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며,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는 자살도 금지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2280항부터 2283항까지 자살을 직접 다루면서 자살이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임을 밝힙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생명에 책임을 져야한다. 생명의 최고 주권자는 바로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생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보존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의 관리자이지 소유자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2280).” “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에 상반되는 것이다. 또 올바른 자기 사랑에도 크게 어긋난다. 그와 동시에 자살은 이웃 사랑도 어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살은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가정, 국가, 인류사회와 맺는 연대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다(2281).”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는 ‘그릇된 자비’

그러나 과거 ‘1917년 법전’에 있었던 자살자에 대한 장례 금지 조항은 ‘1983년 법전’에서 삭제되었고,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도 자살자들을 단죄하기보다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의 회개와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유효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다.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2283).”

교황 요한바오로 2세도 회칙 <생명의 복음> 66항에서 교리서와 비슷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살에는 자기애의 거부가 담겨 있으며, 이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들과 전체 사회를 향한 정의와 자비의 의무 포기가 담겨 있습니다. 자살의 가장 깊은 실재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한 거부를 나타냅니다.”

교황은 또한 자살을 돕는 행위, 즉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는 ‘그릇된 자비’라고 비판하며, 누구를 살리고 죽이는 결정을 내리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하시는’(창세기 3,5 참조)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이며 오직 하느님만이 삶과 죽음에 대한 권능을 지니고 계심을 다시 강조합니다. 교황은 <생명의 복음> 67항에서 “사랑과 자비의 참된 길”은 자살을 돕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생명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임을 지적합니다. 조력 자살의 요구는 “시련의 때에 필요한 동료 의식과 동정과 지지의 요구”이며 “모든 인간적인 희망이 사라졌을 때 계속 희망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는 탄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은 인간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영원성에 대한 원초적인 바람”을 신앙의 빛으로 일깨우고 “부활의 약속에 대한 희망”으로 위기를 이겨내라고 권고합니다.


자살자에 대해 연민을 보이고 기도하도록 권고

이처럼 가톨릭교회는 자살이 하느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에 반하는 태도임을 지적하면서도 자살자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단죄가 아니라 하느님께 그들을 의탁하며 그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 연민을 보이며 기도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힘들다, 도와 달라’는 표시를 하지만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의 개인주의 문화, 이웃에 대한 무관심, 가정의 붕괴 등의 탓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신앙인들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재확인하며 사회교리에 주목해야합니다. 사회교리는 고통 받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연대성의 원리’, 그리고 모든 이가 제외됨 없이 자신의 완성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 시스템을 일컫는 ‘공동선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자살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과도한 스트레스, 고립감, 자존감 약화,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 등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정신적 힘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할 이웃은 자살자 뿐 아니라 가족의 자살로 인해 상실의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살유가족’입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자살한 가족의 절망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극단적인 선택을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괴로워하면서, 자신들도 높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유가족들은 주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과 무책임하게 내뱉는 말로 또다시 상처를 겪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따뜻한 시선과 말로 감싸주면서 이들이 가족의 자살이라는 상처를 이겨내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도록 기도해야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0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2,721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