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4일 (화)
(홍)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전례ㅣ미사

[미사] 전례 탐구 생활21: 자비송에서 대영광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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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8-17 ㅣ No.2032

전례 탐구 생활 (21) 자비송에서 대영광송으로 

 

 

대영광송을 부르는 날 시작 예식은 기쁨과 축제의 색깔이 더 질어집니다. 그래서 절제와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과 사순 시기에는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고, 간혹 위령의 날이 주일과 겹쳤을 때도 생략합니다. 주로 전례력상 대축일과 축일에 부르는 찬미가이지만 서품, 혼인, 견진 예식 같이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전례 거행 때도 부를 수 있습니다.

 

기쁨의 핵심은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다가온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스스로 찾아 얻는 쾌락이 오히려 삶의 진정한 기쁨을 반감시켜 버린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대영광송이 표현하는 기쁨도 우리의 청원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부탁할 때 그 사람은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의무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에 맡겨져 있습니다. 하느님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빚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 의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늘 그분께 빚을 지며 삶아가지요. 그런데도 하느님은 또다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기쁨은 바로 이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미사에 올 때 두 가지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실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사실을 생각할 때 나는 나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내가 가신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실을 생각할 때 나는 나의 강함을 알아챕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품위와 힘을 느낍니다. 우리는 기도하듯 자비송을 바치며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의 외침을 내어놓고, 대영광송의 환희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위풍당당하게 노래합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든 미사에서 대림과 성탄을 거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참회와 청원의 노래인 자비송은 우리를 대림의 신비로 들어가게 합니다. 자비송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가 필요하다고 외칩니다. 대영광송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 우리가 기다리던 구원이 드디어 이 땅에 나타났다는 성탄의 기쁨을 드러냅니다. 우리에게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대영광송을 일컬어 ‘자비송의 청원에 대한 기쁨 가득한 응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 알베르토 성인도 대영광송이 자비송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분명 너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리라. 성사를 통해 나는 너희 조상들에게 보냈던 그를 너희에게 보내어, 너희가 그 안에 참여하고, 너희를 악에서 끌어올려 모든 선으로 채워 주리라.’”

 

이렇듯 자비송에서 대영광송으로 이어지는 전례 기도의 흐름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친교를 나누시는 방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2020년 8월 16일 연중 제20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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