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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43: 콘스탄티누스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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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0-26 ㅣ No.617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43) 콘스탄티누스의 승리


‘폰테 밀비오의 십자가’는 역사일까 신화일까

 

 

- 테베레 강에 놓인 다리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폰테 밀비오. 십자가의 은총으로 폰테 밀비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콘스탄티누스는 곧바로 그리스도교 박해를 중지했고 밀라노 칙령(313년)을 반포하여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죽느냐, 사느냐.”

 

로마 제국의 서방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동방 황제 막센티우스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습니다. 피할 수 없는 전투였습니다. 이기면 패권을 쥐게 되고, 지면 죽습니다. 궁지에 몰린 콘스탄티누스는 병사들을 모아 놓고 전의를 불태우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명령을 하나 내렸습니다. “모든 병사는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어라!”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넣어라

 

웬 십자가? 사형수를 처형하는 무서운 형틀 아닌가! ‘이단 종교’의 상징을 방패에 그려 넣고 싸우라고? 말이 되나? 순간 병사들이 술렁거렸습니다. 십자가 그려 넣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병사들은 대부분 태양신을 믿고 있었답니다. 황제 자신도!

 

황제가 시범을 보였습니다. 방패를 꺼내 높이 쳐들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태양신의 표식을 뜯어 버린 다음, 그 자리에 십자가를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이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십자가의 힘으로 이긴 전투,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적장 막센티우스는 현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312년 10월 28일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입니다.

 

한강이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듯, 테베레 강이 로마를 굽이쳐 흘러갑니다. 테베레 강에는 로마 2800년의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건국 신화가 있고, 그리스도교 박해와 자유의 역사가 있고, 영화 ‘로마의 휴일’ 속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의 사랑과 낭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밀비오(Ponte Milvio)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밀비오 다리’이지만 다들 그냥 폰테 밀비오라고 부릅니다.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혈투를 벌인 외나무다리가 바로 폰테 밀비오입니다.

 

객관적 전력은 7대3 정도로 필패의 상황이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콘스탄티누스는 D-데이 전날 밤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인 어머니(헬레나 성녀)의 영향이 컸습니다. “하느님 저를 도와주소서.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시면 당신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잠을 자다 꿈을 꾸었습니다. 맑은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났고, 거룩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따랐고, 전투에서 이겼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당장 실천했습니다. 313년 2월 3일 밀라노 칙령을 발표, 그리스도교에 대한 모든 박해를 중지했습니다. 더 나아가 성당 건설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밀라노 칙령은 이렇게 나왔습니다.

 

 

신화가 역사로

 

폰테 밀비오의 십자가에는 역사와 신화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고서 전투했다는 물증이 없었으니까요. 이탈리아 고고학자 과르두치가 1953년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무덤을 발굴하면서 라틴어 명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In Hoc Vince”, “이것으로 승리를 거두리라”는 뜻입니다. 330년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폰테 밀비오의 십자가 이야기가 목격자들이 아직 살아 있던 시기에 회자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어부의 무덤」, 존 오닐 지음, 이미경 역, 혜윰터 참조) 소설가 이병주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달빛에 물들어 있던 십자가 신화가 과르두치의 명문 발견으로 역사가 된 것입니다.

 

폰테 밀비오는 지금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합니다. 신앙을 맹세했던 다리가 이제는 사랑을 맹세하는 다리가 된 것입니다. 가로등 기둥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줄줄이 걸려 있습니다. 로마시는 다리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 통행을 불허함은 물론이고 가로등에 자물쇠도 걸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떨 때 가보면 가로등에 자물쇠가 촘촘히 걸려 있는데, 다른 날 가보면 몇 개 없습니다. 경찰이 정기적으로 거둬 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순례자에게 꼭 폰테 밀비오를 안내해 드립니다. 세계 역사도 배우고, 믿음의 역사도 체험하시도록! 테베레 강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부부 순례자들에게는 멋있는 사진 한 장을 찍어 드립니다. 두 손을 꼭 잡고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믿음의 다리, 사랑의 다리를 걷은 모습을! 대부분 부부가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다가도 금세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해 줍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0월 25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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