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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한국교회 신앙의 위기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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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29 ㅣ No.373

[커버스토리] 신앙의 재발견, ‘신앙의 해’ - 한국교회 신앙의 위기와 현실

신앙과 삶은 별개? 세속주의 타파해 내적 성숙 다져야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깊이 내려있고, 누구나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세상만사가 곧 그리스도교적 가치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했던 서구교회와 사회에서 더 이상 하느님과 신앙이 “사회 생활의 자명한 전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신앙의 해’는 이처럼 이미 신앙을 수용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복음화의 첫 여정으로서, 집중적으로 스스로의 ‘신앙’을 재성찰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신앙의 해’ 기념의 일차적인 대상은 무엇보다도 신앙을 수용한 신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복음화율이 10% 내외에 머물고 있는 선교지역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다른 어떤 종교에 못지않은 사회적 위상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70년대와 80년대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으나, 90년대 들어서 신앙의 활력을 잃어가는 다양한 징후를 나타내면서 내적 성숙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유럽교회의 위기 상황을 직접적으로 염두에 두고 선포한 ‘신앙의 해’는 당연히 한국 천주교회에게도 적용된다. 겉으로 보이는 활력과는 달리 한국교회의 내면은 심각한 신앙의 갈등과 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교회에 90년대 이래 요청되는 내적 성숙의 과제는 ‘새로운 복음화’와 그 시작점으로서 ‘신앙’에 대한 집중적인 성찰의 요청과 맥락을 같이 한다.

서구교회에서 사용되는 말 중에 이른바 ‘카페테리아 가톨리시즘’(Cafeteria Catholicism)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는 스스로 가톨릭 신자임을 내세우지만 낙태, 피임, 동성애, 혼전 관계 등 주로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에 대해서 따르지 않는 신자들을 지칭한다. 1986년 처음 사용된 이 용어는 오늘날에는 자신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선택적으로 신앙적 가르침을 취하는 경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신앙과 교리, 윤리적 규범에 대해서 교회가 전하는 가르침 전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취사선택하려는 경향은 분명히 하느님 중심적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이며, 이는 곧 현대 사회와 세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세속주의의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문화적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위협

오는 10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개최되는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면서 교황청에서 질의한 내용에 대한 ‘한국교회의 답변’ 중 문화적 세속주의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질주의와 욕망 지향적 가치가 팽배해 가는 문화적 세속주의 영향은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의식과 삶에서 하느님과의 관련성을 약화, 부정하고 종교의 역할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총체적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 본연의 역할이 약화되고 종교가 개인의 내면적 영역으로 후퇴하여 단순히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와 신앙의 역할이 ‘구원’이라든가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심리적 위안’의 도구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청년층의 경우 더 뚜렷한데,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가 올해 초 실시한 ‘청년 신자의 신앙생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신앙이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에 대해서 절대 다수인 61.9%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태도가 자기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며, 자기 만족을 위한 도구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면, 비록 신자일지라도 언제라도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를 떠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다른 곳에서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교회 안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신앙생활의 불길한 징후로 꼽히는 주일미사 참례율 감소, 냉담률 증가, 청소년층의 저조한 신앙생활 참여 등은 결국 하느님과 신앙보다는 세속의 즐거움과 논리에 더 기울어지는 세속주의적인 성향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세속주의가 신자 생활에서 나타나는 양태는 이른바 신앙과 삶의 유리 현상이다.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깊지 않은 다종교 사회이고,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신자가 아니며, 사회 분위기와 시스템 자체가 철저하게 종교적 원칙과 신념과는 별도로 형성돼 있는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일에 미사에 참례하는 시간만 신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과 사회생활, 심지어 가정생활에 적용되는 원칙과 신념들은 성당 울타리 안에서 활용되는 종교적 신념 체계와 행동 양식과는 거리가 멀기 일쑤이다. 특히 많은 경우에 이러한 성당 생활과 세속 생활 사이의 유리 현상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내적인 긴장과 갈등의 원인조차 되지 못한다.

- 신자들은 세속주의 영향으로 신앙과 교리, 윤리적 규범에 대해서 교회의 가르침 전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취사선택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신앙과 삶의 유리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사진은 지난 2009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세속주의자들의 시위 모습.


신앙과 삶의 유리

이러한 신앙과 삶의 유리는 결국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에 머물게 하고, 신앙의 공동체적인 차원과 사회 복음화의 소명과 원칙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게 된다. 그래서 세속주의는 신앙생활을 성당 안에서 이뤄지는 개인적인 신심 행위에 국한시키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성경 구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철저한 성속 이원론의 입장에서 신앙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철저하게 나눠 각각 별도의 기준에 따라 처신하게 된다. 여기에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자기 삶에서 하느님의 절대적 존재를 애매하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는 상대주의로 연결된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절대적 가치나 존재도 부정하고 모든 것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뿐이라는 상대주의적 태도는 자연스럽게 무분별한 다원주의로 연결된다.

일부 신자들은 종종 아주 자연스럽게 말한다.

“모든 종교가 결국은 한길로 통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종교를 믿든지 착하게 살고 남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겁니다.” 혹은 “그리스도교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진 종교라고 하는 것은 아집입니다. 그러면 다른 종교와 대화가 되겠습니까?”

얼핏 가톨릭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너그러움, 세상에 대한 열린 자세를 드러내는 듯한 이러한 인식들은 그러나 근본적으로 종교다원주의로 흐를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끊임없이 강조해왔고, 2000년에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성과 구원의 보편성에 관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을 발표한 것도 현대 교회와 사회 안에서의 이러한 경향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한국교회와 사회의 상황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준비를 위한 한국교회의 답변은 한국교회와 사회의 현재 상황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세계화와 후기 자본주의의 부정적 특성인 물질주의, 물신숭배, 쾌락주의의 만연, 둘째, 문화적 혼종주의의 성행과 세속화로 인한 종교 혼합주의, 세 번째로 한국교회의 대형화, 익명화, 중산층화, 세속화 등을 지적한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특성들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올바르게 지켜나가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속적 가치와 복음적 가치 사이에서 방황하는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을 이끌어주고 지탱해주는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자칫 빗나간 신심생활로 이끌리곤 한다. 물질적 가치가 횡행할수록 더 깊어지는 영성적 삶에 대한 갈증은 종교 체험에 대한 갈망으로 뉴에이지 운동이나 선, 단학, 요가, 기수련 등 유사 영성에 이끌리게 하고, 기적에 대한 헛된 기대나 종말론에 기댄 신흥 종교단체를 기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현대 문화를 규정짓는 사회홍보 수단의 세계, 즉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스마트폰과 SNS 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그것이 창출하는 세계와 문화는 대부분의 경우 즉각적이고 수평적이며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작함으로써, 내적 성찰과 초월적 가치의 수용보다는 소비와 향락적, 현세적 가치들을 전파하는데 오히려 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 용산 참사,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핵발전소 문제 등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은 교회의 사회 복음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는 교회가 세속과 분리된 존재로서 교회 내의 영적인 문제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11일 강정마을 중덕해변서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주례로 봉헌된 ‘생명·평화를 위한 미사’.


교회, 특히 도시 지역에 집중된 교회들은 이미 대형화되고 따라서 신자들의 익명화를 야기하는 경향이 짙고, 특히 신자들은 평균적인 국민들에 비해 중산층화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 현상과 물질 숭배의 세속화가 교회 안에도 만연해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과 기술은 오늘날 종교를 대치할 위험성까지 논의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와 결합한 과학과 기술의 무분별한 질주는 교회의 핵심적인 소명 중의 하나인 인간 생명의 존엄성 수호와 부딪히는 지점으로서 생명과학과 생명윤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과 관련해 첨예한 논란이 근래 들어 지속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광우병 사태와 촛불 시위,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사태, 4대강 사업,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밀양송전탑 건설, 핵발전소 문제 등 논란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교회의 관심은 주교회의를 통해 이뤄짐에 따라 교회의 사회 복음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는 정교분리의 해묵은 이념적 잣대를 바탕으로 교회가 세속과 분리된 존재로서 교회 내의 영적인 문제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2년 9월 30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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