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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통일 이후 사목을 위한 준비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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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2 ㅣ No.906

[통일을 준비하며] 통일 이후 사목을 위한 준비와 제언



2015년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동시에 남북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유럽에서는 전쟁의 주범국인 독일을 승전국들이 분할 통치하였고, 아시아에서는 안타깝게도 일본이 아닌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던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당시 그 누구도 전범국인 독일의 통일이 한반도의 통일보다 앞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분단 70년을 맞이한 오늘, 독일은 통일 25주년을 기념하며 유럽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을 내어놓기는 어렵다. 남과 북의 치열한 대결구도 속에서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남과 북이 저마다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서로 다른 방법론이 대결을 부추기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통일 이후의 사목’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통일을 생각하고 있는지다.

뜻밖에 많은 사람이 ‘급변사태’를 고려한 흡수통일을 생각하고 있다. 현 정부의 정책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북한의 붕괴가 곧 통일과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안이한 생각이다.

북한은 국제법에 따라 국제연합(UN)에 가입한 독립국가다. 만일 북한의 급변상황이 온다면 유엔의 평화유지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크고, 그 중심에는 북한과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설령 우리가 북한을 끌어안는다 하더라도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런 형태의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교류와 협력으로 주도적 구실을 해야

1989년 노태우 정부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는 이를 계승하고 보완하여 1994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른바 보수정권에서 발표한 방안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그 첫 단계가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평화를 기반으로 사회와 문화,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화해협력 단계’이다. 그런 단계를 통해 서로 신뢰가 쌓이면 그 다음 단계로 경제적 통합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연합’을 추진하고, 마지막으로는 ‘완전한 통일단계’를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두 번째 단계에서 ‘연합’ 또는 ‘연방’의 문제로 이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큰 틀 안에서 남북이 공유한 내용이었다.

그 원대한 방법론의 첫 단계인 화해협력 단계를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실천한 정부가 바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였다. 그런 교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 정상 간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더 적극적이고 발전적인 형태의 교류 확대를 천명한 6·15선언과 10·4선언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만일 그 정책들이 꾸준히 이어졌다면 지금 한반도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언론으로 전해지는 북한 소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조심스럽게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또 실제 많은 부분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장마당’의 활성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민간경제는 개혁 개방에 대한 거스를 수 없는 요구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북한은 중국식 개혁 개방을 모델로 삼아 자신만의 독특한 경제정책을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 변화의 흐름에서 우리는 동반자로서 주도적 구실을 해야 한다.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여 경제적 동반자로서 자리잡는다면 남북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며, 평화통일의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다.


주변 국가와 연계한 종교 교류의 확대

통일 이후의 사목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통일 뒤 어떤 사목을 펼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앞서 통일 과정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찾는 것이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 불의한 분단구조를 딛고 어떻게 움직여 나가는지에 따라 통일 이후 사목의 질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종교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국가의 이미지를 내세우려고 형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 종교적 틀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남북의 직접적인 종교적 교류도 필요하지만, 주변 나라들과 연대하여 종교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도 중요하다.

특히 북한이 개혁 개방의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며, 종교정책의 경우에도 중국식을 따르며 중국교회와 연대를 강화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국교회와 접촉을 확대하고, 중국교회를 통해 북한교회가 제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북방선교라는 큰 틀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북한 복음화에 대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북한교회와 직접적인 접촉과 교류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북한이라는 특수한 체제 속에서 종교가 갖는 위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이다. 현재 우리의 관점에서 북한교회를 바라본다면 대화의 진전을 이루기는 어렵다.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먼저 ‘사랑의 나눔’이라는 신앙적 가치를 통해 그들과 신뢰를 쌓고, 그 뒤 점차적인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을 교육이 있어야

남북갈등에 앞서 현재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남남갈등이 더 큰 문제라고 진단하는 학자가 많다. 분단체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내부적인 갈등은 분단이라는 상황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남과 북의 기득권 세력에 따라 양산되는 측면이 강하다.

분단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화해와 일치라는 신앙의 핵심은 가려지고, 신앙인 내부의 갈등과 충돌로 이어지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교회는 평화와 통일을 신학적으로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다.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또한 현재 일부 교구와 수도회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평화와 통일 관련 교육과정들이 실천신학의 관점에서 전체 교회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편협하고 왜곡된 정보에 따른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고, 화해와 일치를 위한 신앙인의 실천적 삶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특별히 평화와 통일은 미래세대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청년들과 청소년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바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남북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지향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에 주어진 중요한 사명이라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계제도적 틀을 일선 본당에서부터 구현하여야 한다. 현재 교구별로 조직되어 있는 민족화해위원회가 개별 본당에서 특정한 이름의 분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분과를 중심으로 계층별 신자 교육과 함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활동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배려

2015년 현재 탈북을 통해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북한 이탈주민의 수가 2만 8천 명에 이른다. 북한 이탈주민은 남북분단이 낳은 불행한 난민들이며,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들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통일시대를 대비한 체험을 미리 이루어주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남과 북의 경계에서 서로의 틈새를 이어주는 통일의 가교 또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북한 복음화의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독특한 공산주의 사회를 체험한 그들이 신앙을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앞으로 북한 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올바른 양성의 과정을 거쳐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주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현실은 북한 이탈주민을 위한 관심과 투자에 매우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정착교육을 담당하는 하나원에서는 종교활동 시간에 상당수의 사람이 천주교에 관심을 두고 종교행사에 참여하여 ‘받아들이는 예식’까지 받고 나온다.

그러나 정작 지역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로 연결되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이는 신앙을 개인의 선택으로 생각하는 천주교의 소극적 접근방식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크다.

북한 이탈주민의 경우에는 초기 정착과정에서 적극적 관심과 개입이 필요하다. 그들을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적극적 동반자가 필수적이다. 신앙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맞춤형 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신앙을 받아들인 뒤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영적 지원이 요구된다.

그들을 대하는 것은 남쪽의 일반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이탈주민을 도와주는 봉사자들을 위한 교육과 양성도 매우 중요하다.


통일이 하느님의 선물이 되려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총회를 통해 교계적 관할권과는 별개로, 한국교회 전체가 평화와 통일문제에 관심을 두게 하는 차원에서 북한의 각 지역을 세분하여 군종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교구들과의 결연지역을 확정하였다.

따라서 각 교구는 해당지역에 관심을 두고 인도적 차원의 교류와 더불어 개별본당으로까지 이어지는 기도운동으로 영적 결연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구체적인 지역을 염두에 두어 신자들에게 구체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언젠가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한 기금 마련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교구별로 다양한 방식의 통일기금을 조성하고 있지만, 본당별 참여 의지도 저조할 뿐 아니라 기금 활용방안에 대한 고민도 부족한 편이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가톨릭 평화학이나 통일신학 정립을 위한 연구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북방선교를 위한 선교사나 봉사자 양성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황님도 강조하셨듯이, 평화와 통일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선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거저 주어지는 선물은 분명 아니다.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은총의 선물이다.

통일 이후의 사목은 오늘 우리가 어떤 자세로 준비하는지에 그 승패가 달려있다. 깨어있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오늘 우리 교회가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이은형 티모테오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2월호, 이은형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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