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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회: 미국 가톨릭교회의 현주소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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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12 ㅣ No.136

[세계 교회 동향] 미국 교회 : 미국 가톨릭교회의 현주소와 과제

 

 

주요 선진국 가운데 미국이 가장 종교적이라 자처하는 이유는 매주 종교생활 참여율이 단연 높기 때문이다. 과거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개신교도는 현재 51%(복음주의 개신교 26.3%, 주류 개신교 18.1%, 흑인 개신교 6.9%)로 줄었다. 가톨릭 신자 비율은 23%로 미국인 4명 중 한 명 꼴이다. 미국 종교의 특성을 한 가지 꼽자면 소속 종교의 유동성이 심하고, 이민자들의 증가로 종교의 다양성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인구와 다양성을 가진 종교

 

한국에 가톨릭 신앙이 움트기 시작했던 18세기 말 미국 가톨릭 인구는 2만 5,0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1차 미국 공의회가 열린 1852년에는 가톨릭인구가 200만 명으로 증가하여 최다 신자수를 가진 단일종교가 되었으며, 제2차 미국 공의회가 열린 1866년에는 400만 명으로 두 배 증가하였다.

 

2009년 현재 가톨릭 신자는 6,811만 5,001명으로 미국 전 인구의 23%를 차지하며, 여전히 신자수가 가장 많은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가톨릭 신자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며, 다양성 안의 일치와 조화를 추구한다. 또한 아직도 이민자의 교회로 성장하고 있고, 70%가 비유럽인이며, 총 교구 수는 195개(라틴 예법 교구 178개, 동방예법 교구 17개)이고, 추기경 16명, 주교 424명(현역 258명, 은퇴 166명), 신부 41,500명, 수도자 64,877명이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1,700여 개의 가톨릭 구호단체가 한 해 약 900만 명에게 다양한 사회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위축된 게토에서 자신감 있는 발전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 가톨릭교회는 주류사회를 장악하던 개신교 다수에게 핍박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웠기 때문에 게토 의식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종전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면서, 각종 신심단체와 자선기관이 조직되어 평신도들이 활발히 활동하게 되었다. 많은 성당이 건축되고 가톨릭학교들도 설립되었다.

 

반면 이러한 조직력과 성취로 자신감을 갖게 된 미국 가톨릭교회는 교황청으로부터 ‘미국주의’에 대한 질책(레오 13세)과 근대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고발(비오 10세)을 경험하면서, 로마에 순종하고 충실한 자세로 일관하게 된다.

 

미국의 가톨릭은 오랫동안 개신교 주류 문화 안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다. 심지어 가톨릭 신앙은 미국적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상반되어 접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1960년 처음으로 가톨릭 신자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가톨릭이 미국 정치계에 온전히 입문하는 것을 막아왔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풀톤 쉰 대주교가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강의를 한 것도 사회에서 가톨릭을 친숙하게 여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국 가톨릭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도로시 데이의 ‘가톨릭 노동자 운동’이나, 미국의 아우구스티노로 알려지고 문예부흥적 인물인 토마스 머튼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대중에게 비친 가톨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수년 전 성직자들이 저지른 미성년자 성적 학대와 이러한 스캔들에 대한 주교들의 부적절한 대처로 가톨릭의 위상은 크게 떨어졌다.

 

 

예언자적 위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지난 400년 중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사건이고, 미국 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가톨릭이 이 공의회에 공헌한 것은 특히 종교자유, 전례, 교회일치운동, 타종교와의 대화와 사회정의에 대한 부분이다. 종교자유는 미국의 건국에서부터 강조되었다. 다원주의를 현실적으로 체험하면서 이러한 공헌이 이루어졌으며, 노동운동의 선봉에 섰던 미국 가톨릭교회였기에 사회정의 부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가톨릭이 제도적인 건설의 시대를 지냈다고 한다면, 공의회 이후에는 위원회나 기구 등 조직의 구성을 통해 참여하는 시대로 성장하게 된다.

 

1958년 미국 주교회의는 사목서한 ‘미국 인종문제의 위기’를 발표하면서 시민권리운동에 앞장섰으며, 월남전의 도덕성을 비판하였고, 1973년 낙태를 합법화한 대법원 판결에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 주교들의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1983년 사목서한 ‘평화에 대한 도전’을 발표하면서 핵무기 개발과 전쟁을 비판한 것을 들 수 있다. 1986년의 사목서한 ‘모든 이를 위한 경제적 정의’는 국내와 국제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데 예언자적인 공헌을 하였다.

 

 

시대적 도전과 과제

 

이러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하며 두터운 신뢰와 존경 속에서 양심과 정의를 대변해 오던 주교단의 위상이 앞서 언급한 스캔들로 크게 떨어지게 된 것은 미국 가톨릭이 직면한 심각한 도전이다. 또한 미국 대법원 판사 9명 가운데 6명이 가톨릭 신자이고, 하원의원의 30%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가톨릭의 일치된 목소리로 정책을 설정해 나가며 영향력을 미치기는 힘든 상황이다. 가톨릭 신자들의 정당 선호도가 일반 국민의 정당 선호도와 같은 비율을 보이기 때문에 가톨릭이 공화당 성향인가 민주당으로 기우는가는 사실 의미가 없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은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고, 윤리적으로는 보수적이라고 인식되어 있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상황은 이른바 ‘카페테리아 식의 선택적인 가톨릭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더 넓은 참여와 개방을 요구하는 진보진영과 정통 신앙과 엄격한 신앙 그리고 윤리생활을 부르짖는 보수진영 사이의 대립은 신중히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과 중 하나는 ‘대화의 자세’이다. 하느님께서 구원의 대화를 주선하시고 계속하시듯, 교회도 안팎으로 서로에게, 또 세상을 향해서도 개방적인 자세로 서로를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필요한 것에는 일치가, 의심되는 것에는 자유가, 모든 것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교황 요한 23세의 호소는 지금도 유효하다.

 

개인을 신격화하는 철저한 개인주의가 깊게 뿌리박고 있는 미국 문화의 병폐가 무제한 자유경제로 표출될 때, 연대의식과 친교의식이 줄어들고, 종교도 사유화되며, 사회악에 대해 무감각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성체성사가 주는 교훈은 그 정반대이다. 곧 자신을 바쳐 남을 살리는 것이 성체성사의 뜻이라면, 이것이 바로 친교로서 본연의 교회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다. 현재 남미와 북미의 주교들이 정기적으로 회동하여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고 각종 사회악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은 이러한 가톨릭 정신을 실천하는 좋은 일례라 할 수 있다.

 

 

세상과 예언자적 대화

 

교회와 세상, 사회 안에서 신앙인의 역할 등의 주제는 미국 교회가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논의하고 실천해 온 주제들이다. 한국 교회가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이나 어디에서나 상호 입장을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않고 무리한 일방적 요구를 하며, 결국에는 혁명으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에 독점적인 역할을 해왔던 복음주의(제리 폴웰, 팻 라벗슨)와 가톨릭 신보수주의(조지 와이걸)가 이라크 전쟁 등을 지지하여 그 영향력을 잃고 있다. 반면, 요즈음은 개신교 사회운동가 짐 월리스(“하나님의 정치”, 2005년)와 가톨릭 논평가인 이 제이 디온(Souled Out: Reclaiming Faith and Politics After the Religious Right, 2008년) 등이 신앙과 정치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정리하고 있다. 미국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충실한 시민의식(Faithful Citizenship)’도 가톨릭의 사회교리 원칙을 실천적으로 잘 요약한 표본으로 들 수 있다.

 

점차 다국적화, 다원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가 미국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와 교훈도 많을 것이다. 우선 미국 주교회의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권 출신 신자들 간의 화합과 조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여러 유형의 이민자들(이주 노동자, 정치적 망명자, 난민, 불법체류자 등)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위해 예산과 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민자 법안 개혁에도 가톨릭이 앞장을 서고 있다.

 

다양성은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필자가 이사로 있는 ‘워싱턴 종교간 협의회’는 30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11개의 종교가 참여하여 상호이해와 사회정의 등을 공동으로 추구한다. 복음화의 일환인 종교 간 대화는 진리, 일치,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교회의 핵심적인 차원이다. 공존을 넘어 서로에게 축복이 되도록 노력하고, 모든 종교인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커다란 공통분모를 확인하며, 깨진 세상을 치유해야 할 자신들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가톨릭교회도 새 세대의 복음화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교육수준이 높고, 교회정신이 투철한 평신도들(데이비드 깁슨 등)이 갈림길에 서있는 현 교회의 모습을 심도 있게 점검하고, 뼈아픈 반성으로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를 예리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반대의 모습은 슬프게 늙어가는 것이다. 성령에 깨어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교회가 존재함을 깨닫고, 세상과 예언자적 대화를 통해 희망과 기쁨을 유지하며 낙천적으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가톨릭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지만, 교회의 미래는 더욱 열려있고 낙관적이라 확신한다.

 

* 이덕효 바오로 - 미국 워싱턴 대교구 주님공현성당 주임신부이며, 교구 사제인사위원, 교회일치 및 종교간대화 사무소장, 사제평생교육 사무소장과 미국 주교회의 문화적 다양성 위원회 고문, 북미주한인사목사제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이덕효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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