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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의 음악: 스티븐 헤렉 감독의 홀랜드 오퍼스,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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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25 ㅣ No.641

[서석희 신부의 영화 속 복음여행] (15) 영화 속의 음악 - 스티븐 헤렉 감독의 '홀랜드 오퍼스' 톰 후퍼 감독의 '킹스 스피치'

절망의 끝자락에서 건져올린 새로운 희망 노래


음악 수업을 하는 홀랜드 선생님.
 

1.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을 'OST'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Original Sound Track'의 줄임말로 통상적으로 '영화음악' '사운드트랙'이라고 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영화들은 음악을 사용한다. 이 음악에는 기존의 곡을 빌려와 사용하는 '삽입곡'과 특정한 영화를 위해 작곡가가 직접 작곡한 '창작곡(스코어, Score)'이 있다.
 
삽입곡이든, 창작곡이든 이들 음악들은 때때로 영화 속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해 주기도 하고, 영화 주제를 드러내주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로 '왜 하필이면 이 음악이 이 장면에서 나올까'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영화 속 이야기의 흐름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각지도 않게 깊은 묵상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홀랜드 오퍼스'(Mr. Holland's Opus, 1995)와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2010)에서 삽입곡으로 사용한 베토벤 작곡 '교향곡 7번, 2악장 알레그레토'(Symphony No.7 In A Major, Op.92 - II. Allegretto)에 주목해보자.


2. '홀랜드 오퍼스'는 위대한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글렌 홀랜드라는 사람이 겪어야 했던 30여 년의 좌절과 절망, 그 과정을 통해 그가 이룩한 진정한 성공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궁여지책으로 음악교사의 길에 들어선다. 그동안 그는 고정된 직업이 없이 나이트클럽이나 결혼식장 등에서 연주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그런 생활로는 꿈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적성에 맞지 않지만 4년 동안만 고등학교 교사로 일해서 돈을 모으면 그 즉시 그만두고 뉴욕에 가서 작곡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조지6세.
 

하지만 인생은 항상 예측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듯 그는 학생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차에 결정적으로 그의 꿈을 포기하게 하는 일이 생긴다. 어느날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였던 아들이 선천적으로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의사에게서 아들이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 순간, 그는 장애인으로 살아갈 아들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그로 인해 그가 이루고자 했던 위대한 작곡가로서의 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이중적 고통과 절망을 느낀다.
 
누구에게도 차마 이러한 심정을 표현할 수 없었던 그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알레그레토'를 들려주며 자신이 처한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는 학생들에게 베토벤이 이 음악을 작곡할 당시 사연을 들려준다.
 
"베토벤이 이 음악을 작곡할 즈음엔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였단다. 그래서 그는 피아노의 다리를 잘라 피아노를 마룻바닥에 붙이고 피아노 건반을 누른 후 바닥에 귀를 대고 그 진동을 들으며 이 음악을 작곡했지. 이렇게 처절한 노력 끝에 나온 음악이 바로 이 곡이야. 근데 정작 힘들었던 사람이 누군지 아니? 힘들었던 것은 베토벤만이 아니었어. 정말 힘들었던 건 잘 들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곡을 지휘하는 베토벤을 따라 연주해야 했던 오케스트라였단다."

홀랜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음악가가 치명적으로 겪어야 했던 청각장애라는 슬픈 운명을 음악과 함께 들려주면서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표현한다. 또한 귀가 들리지 않은 베토벤도 힘들었지만 그의 지휘에 따라 연주해야 했던 오케스트라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한 사람의 장애인을 둔 가족이 얼마나 힘든지를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동시에 홀랜드는 베토벤처럼 자신도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운명을 이겨낼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다.
 
마침내 그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위대한 음악가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아버지, 선생님으로서 인생교향곡을 완성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 이렇게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은 영화 '홀랜드 오퍼스'에서 단순히 삽입곡으로서 뿐 아니라 영화 이야기와 주제를 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영화 '킹스 스피치'도 대영제국의 왕 조지 6세가 고통과 절망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실화 영화이다.
 
1930년대만 해도 국가의 군주나 지도자들은 라디오나 영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많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새로운 미디어라고 할 수 있는 라디오와 영화를 잘 활용하는 것이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데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영국에는 국왕 에드워드 8세의 왕위 계승이 있었는데 잘 알려졌듯이 그는 이혼경력을 지닌 심슨 부인과의 결혼을 위해 곧 왕권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자 애초에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의 동생 조지 6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어렸을 적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국민 연설이 라디오와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중요하게 부각되던 시기에 그의 약점은 더 더욱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히틀러가 광기어린 연설로 미디어를 통해 유럽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조지 6세의 심적 부담감은 거의 고통과 절망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로의 우정 어린 협조로 고통스럽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들어가 어린 시절에 그가 겪었던 차별대우와 그로 인한 자신감 부족이라는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이를 치유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왕으로서 독일과 전쟁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일치시키는 연설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국왕으로서의 중책을 수행하게 된다.
 
영화 '킹스 스피치'는 이렇게 조지 6세가 자신을 괴롭혔던 말더듬을 마침내 극복하게 되는 극적 전환을 라디오를 통한 대국민 연설로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보여주는데, 바로 이 순간에 삽입된 음악이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이다.
 
국가적으로 위기이자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적 단결이 요구되는 시기에 행해진 국왕의 연설은 국왕이 오랜 말더듬 장애를 극복하고 마침내 국민들 앞에 훌륭한 연설을 하게 되듯, 앞으로 닥칠 국가의 운명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이 음악은 연설중에 장중하게 울려 퍼진다.

- 조지 6세의 라디오 연설.
 

3. 위의 두 영화뿐 아니라 다른 영화에도 자주 삽입곡으로 등장하는 베토벤의 7번 교향곡 2악장 알레그레토는 4악장으로 구성된 그의 7번 교향곡 중 가장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특히 영화 속에서는 주로 주인공이 겪는 고통의 상황과 그 고통을 이기려고 처절하게 노력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할 만큼, 비장한 아픔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뚜렷한 희망을 담고 있다.
 
이 음악에서 물밀듯 밀려오는 처절한 아픔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나가는 듯한 전반부 단조풍의 웅장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장중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고조돼가는 슬픔, 그러나 그 슬픔이 끝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도 평화롭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변하는 반전의 매력은 마치 어두움 끝에 한줄기 빛이 비치면서 하느님의 손길을 붙든 것처럼 자기 분열의 해체 끝에 오는 희망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 음악에 대한 느낌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음악이 주로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과정을 거쳐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새 희망을 찾아가는 영화의 이야기 구조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것은 모두가 이 음악을 통해 공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4. 고통과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느끼는 자기 분열의 고통, 그 끝에 오는 부활, 예수님의 운명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가셔야 했던 길은 분명 저 깊은 절망의 나락까지 내려가야 되는 십자가 죽음이었으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현실이자 삶이다. 분명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단순히 '겉으로 조용하고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영혼을 짓이기는 아픔 끝에 머무는 평화' 즉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 끝에 오는 부활의 평화였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생활양식의 변화 추구와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에서 '웰빙(well-being)의 삶'이 유행하고 있다. 각종 스트레스와 바쁜 일상을 벗어나 여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의 방식으로 자연식을 추구하며 시간에 쫓겨 숨통을 조이는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시간을 지배하고 요가, 명상, 헬스 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고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 이런 삶 안에서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삶만을 추구하며 고통 없는 평화만을 추구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게 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평화신문, 2012년 8월 26일, 서석희 신부(전주교구, 서강대 영상대학원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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