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신앙의 해: 사도 바오로의 신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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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02 ㅣ No.378

[특집 신앙의 해] 사도 바오로의 신앙 고백


유다교를 전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던 사람이 바오로였습니다. 그는 ‘성스럽고 거룩함(聖性)의 유일한 기준은 율법뿐’이라는 생각으로 율법을 몸소 지켰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열심한 유다인이었기에 다른 유다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모독하고 율법에 위협을 주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하느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십자가에 처형되어 하느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졌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그대로 달려 계시지 않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처형된 그분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고 높이 들어 올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첫 만남이 있었던 다마스쿠스 사건, 그것은 사도 바오로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바오로는 그분의 섭리하심 안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박해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고 선포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수석 사제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아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한낮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하늘에서 번쩍이며 나와 내 일행 둘레를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히브리말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뾰족한 막대기를 차면 너만 아프다.’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자, 일어나 바로 서라. 내가 너에게 나타난 것은 너를 종으로, 그리고 네가 나를 본 것과 또 내가 앞으로 너에게 나타내 보일 것의 증인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다. 나는 너를 이 백성과 다른 민족들에게서 구해 주겠다. 이제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낸다.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느님께로 돌아와 죄를 용서받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이들과 함께 상속 재산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사도 26,12-18)

바오로(히브리 이름은 사울)는 다마스쿠스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께 사로 잡힘으로써 그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그분의 종이 된 것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한없는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인해 바오로는 부르심을 받았고 선택되었습니다. 바오로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능력 때문에 선택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회심한 바오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박해자요 죄인이며 탕자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것은 스스로를 학대하고 절망하려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 속에 참여하기를 갈망하는 강렬한 희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1코린 15,9-10)

그러므로 바오로가 말하는 ‘죄인’은 고통이 영원히 멈추지 않는 지옥에 빠져 구원 받을 희망이 전혀 없는 비관적인 상태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은총을 풍부히 받아 구원 받을 희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바오로의 회심은 바오로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자신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전까지 바오로는 바리사이로서 율법이 명하는 바를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자신이야말로 구원될 거룩한 자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사건을 통해 자신이 의로운 자, 거룩한 자로 인정받는 것은 자신이 이룩한 업적들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업적이 가져다주는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없는 은총을 겸손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0.28)

바오로가 고백한 구원은 하느님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들은 실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현되고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우리는 현세에서 그 구원을 받기에 합당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에게 복음 선포란 다른 사람들의 강요에 의해서나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복음을 실천해보고 삶이 행복하고 희망차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것이 먼저이고, 실제로 그렇게 좋다면 자발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한 바오로가 온 삶을 다해 열정적으로 믿음의 삶을 산 것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은 하느님께 있으며 하느님의 은총과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미 충만히 내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총과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어느 누구보다 먼저 맛보며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10월호, 사목국 성서사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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