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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사형제 왜 폐지되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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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6-09 ㅣ No.1746

[알아볼까요] 사형제 왜 폐지되어야 하나?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논술·면접시험에도 자주 출제되었을 만큼 오래된 논쟁거리다. 민감한 주제이면서도 찬반이 선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학계의 논의나 세계적인 추세는 이미 폐지 쪽으로 확연하게 기울었다.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국가가 102개국이며, 사형 집행을 10년 이상 중단한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는 38개국이다(2018년 기준). 그러니까 세계 140개 국가, 대략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2 이상이 사형을 폐지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하고 일본 정도가 사형제를 존치하고 있는데, 미국은 18개 주가 이미 사형을 폐지한 상태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려면 사형제 폐지가 필수적이며, 유럽연합은 사형집행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범죄인 인도를 거부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향하는 국가라면 사형제도 폐지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17대 국회와 19대 국회에서 절반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사형제 폐지 법안에 서명을 했고, 헌법재판소도 1996년과 2010년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7:2, 5:4로 팽팽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사형 폐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한국은 1997년 이후 2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형제를 존치하자거나, 사형을 집행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흉악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사형시키자는 여론이 대두된다.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과연 사형이 궁극의 해법인지에 대해서는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형제의 범죄예방효과는 없다

 

사형제를 옹호하는 가장 주된 논거는 범죄예방효과다. 많은 사람들이 사형제가 있어야 살인 등 중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도 중한 형벌이 있어야 잠재적 범죄자들을 겁을 먹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형이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실증적 근거는 없다. 실제로 사형제 존치국과 폐지국의 범죄율, 사형 폐지 전후 또는 사형 집행 전후의 범죄율의 변화 등을 비교해 보면, 사형제와 범죄 사이에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예컨대, 사형제를 두고 있는 나라라고 해서 범죄율이 더 낮은 것은 아니며, 미국의 경우에도 사형집행을 많이 하는 주들이 대체로 살인 범죄율이 높다. 미국의 범죄 관련 학회들의 전현직 학회장들의 88%도 사형제가 범죄예방효과를 갖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살인과 같은 중범죄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살인은 대개 충동적인 범행이거나 아주 계획적인 범행인 경우인데, 일단 충동적인 범죄는 형벌의 강도가 범행을 막는 데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계획적인 살인의 경우에는 완전 범죄를 노린다. 완전 범죄를 계획하면서 사형제가 있으면 범죄를 포기하고, 종신형만 있으면 범죄를 감행한다는 것은 작위적인 상상일 뿐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20년간 사형집행이 없었기 때문에 ‘사형당할 수 있다’는 위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난 20년간 흉악범죄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살인범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상당히 복합적이며, 최소한 ‘사형제’의 유무는 변수가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켜보고 있다. 살인범죄를 막아야 한다면 우리는 사형 이외의 다른 대책들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중범죄에는 중형을 내려야 한다. 무기징역형이나 장기 징역형이 사형제에 비해서 특별히 효과가 덜한 게 아니라면,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며 굳이 사형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사형을 통해 중범죄자들을 영구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형제가 폐지되어도 종신형 등 장기 징역형에 처해지게 되고 사실상 영구 격리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형이 중대한 범죄에 대해 사회가 정당한 비난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오늘날 형벌이론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보복의 논리는 점점 설 땅을 잃고 있다. 최소한 범죄예방효과가 있다거나 범죄자의 재사회화에 도움이 되어야만 형벌이 정당화될 수 있다. 사형제의 범죄예방효과도 검증되지 않았고, 범죄자의 재사회화가 아니라 영구히 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면, 사형이 형벌로서 정당화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피해자를 위한 사형제?

 

사형제를 옹호하는 또 하나의 논거는 피해자 문제다. 간단히 말해, 범죄 피해자를 위해서 또는 그 가족들을 위해서 사형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범죄로 인한 고통,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잃은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그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사형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이유다. 그런데 과연 사형이 피해자(가족)의 사회복귀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피해자 문제의 해결이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범죄 이전이 상태로 최대한 가깝게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적, 사회적 차원에서 범죄 피해자(가족)가 다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형제가 그런 역할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살인 피해자 연구에 따르면, 사형이 집행되는 전후로 피해자 가족의 심경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사형제는 피해자를 위해 할 일을 다 했다는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사형’은 아주 극단적인, 순간의 처방이다. 사형을 집행한 국가는 제 할 일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사회복귀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지원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시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긴 호흡으로 지속적인 물질적·정신적 보상과 사회적 지원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느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사형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지원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지, 살인 등의 중범죄를 하찮게 보거나, 가해자를 무조건 용서하자는 식의 무책임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에 사형과 같은 단 한 번의 극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자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사형제 폐지를 소신으로 가진 법학자가 피해자 사회복귀를 위한 제도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다. 한국 사형폐지운동의 산증인인 조성애 수녀님이 살인범죄 피해자 가족 모임에도 함께하는 것은 인간과 생명의 문제를 고민해 온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인권을 위한 살인 피해자 가족 모임’에서는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다. 그들은 살인범을 사형시킨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아픔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모임을 결성했고, 복수와 증오에 기반을 둔 사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진정으로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면

 

살인범죄자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빼앗았다. 국가의 이름으로 그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은 그에 관한 응분의 대가이며, 생명의 중요성을 다시 회복하는 방법인 것처럼 말해지곤 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면, 생명을 빼앗은 사람의 생명을 다시 빼앗자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살인자에게 어떤 처분을 내려야 하는지, 살인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그에 비하면 사형시키자는 주장은 문제를 단순화시켜 단번에 해결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성찰의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사형제를 폐지하고 다른 해법을 모색하자는 것은 그런 성찰을 시작하자는 제언인 셈이다. 사형이 아닌 어떤 형벌이 합당한지, 흉악범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리는 것이 마땅한지, 피해자와 피해자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살인 등 중범죄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사형제가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사형 집행을 멈춘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사형은 더 이상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다. 인간과 생명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성찰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6월호, 홍성수 T. 아퀴나스(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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