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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에 다시 읽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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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19 ㅣ No.381

[경향 돋보기 - 신앙의 해] ‘신앙의 해’에 다시 읽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공의회의 역할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서 새 술과 새 기름을 사용하여 인류의 상처를 돌볼 사명을 받고 있다.” 이 말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던 크로아티아의 디아코바르 교구장 슈트로스마이어(Strossmayer)주교가 공의회 회기 중 강조한 말이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21차례의 보편공의회가 열렸다.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구원의 진리가 이단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놓였을 때, 또는 신자들이 본연의 소명, 곧 거룩한 삶과 구원에의 초대에 응답하는 데에 중대한 위험이 있을 경우, 교회는 전 세계 주교들이 교황과 함께 모여 가톨릭교회의 정통적 가르침을 재확인 또는 명료화하여 선포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이 구원의 여정을 올바로 가도록 이끌어왔다.

다시 말해 공의회란 시대의 요청, 시대의 필요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이며 장엄한 형태의 응답이며, 구원의 진리를 손상시키는 오류 때문에 상처받은 인류를 치유하는 역할을 그 시대의 언어와 표현을 사용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 공의회의 결정이, 국회에서 정하는 헌법이나 법률처럼, 다음 공의회의 결정에 의해 변경, 번복, 또는 폐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의회의 결정은, 그것이 최초의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결정이든, 또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이든 오늘의 우리에게 처음과 똑같은 권위로 구원의 진리를 선포한다.

왜냐하면 공의회를 소집하는 분도, 이끄는 분도, 교의를 정의하고 선포하는 분도 궁극적으로는, 인간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손상됨 없이 지속하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의회에서 선포된 교의나 가르침은, 항상 그리고 전 세계 어디서나 ‘재해석(re-interpretation)’, ‘재수용(re-reception)’되어야 한다. 어떤 공의회의 결정이 그 시대의 언어와 표현의 옷을 불가피하게 입고 있다면, 다른 세대의 사람들은 그 결정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기 시대의 언어로 표현하고 그 의미를 다시 알아듣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미 공의회 폐막 직후에 쓴 책 「하느님의 백성」에서 이것을 가리켜 ‘다시 읽기(relecture)’라고 하면서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이 방법은 고대의 텍스트를 새로운 상황에서 취해 해석하는 것으로서, 과거가 새로운 방법으로 해석되는 것이고, 새로운 것이 과거와 함께 일치 안에서 재연결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된 지 이미 반세기가 지났고 지금 우리 시대의 의식, 사회, 당면한 문제는 그 시대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공의회의 성격상, 그 공의회의 가르침을 우리 시대, 구체적으로는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 재해석해야 하고, 이 작업의 첫 출발점은, 현재의 교황님이나 공의회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의도를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텍스트를 연구해 갈 것이며, 그 가르침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수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의 배경과 의도

16세기 이후 유럽 사회는, 철학,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총체적 변화는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혁명에서 폭발했으며, 사회는 근대사회로 방향키를 틀게 된다. 그 동안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분야가 종교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던 것과 달리, 이제 철학, 학문, 정치, 문화, 교육 등 각 분야는 ‘이성과 자유’의 이름으로 ‘독자성’을 주장하면서 교회를 떠난다. 흔히 말하는 ‘세속화(secularization)’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19세기는, 교회와 세계의 근대화가 충돌하면서, 특히 종교적 영역에서는 초자연적 계시와 교회의 권위가 심각하게 공격을 받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당시의 이러한 모든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중단되었고, 이제 세계는 역사의 분수령을 넘어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했고, 실증적 학문과 과학기술은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왕국이 아닌 근대국가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사실 교회는 아직 그 분수령 이쪽에 있었다. 교회는 세계의 이 변화를 충분히 읽지 못했고, 따라서 세계는 교회에서 점점 더 괴리된다. 더욱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들에게, 사실상 아직 근대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교회가 보여주는 계시진리에 대한 가르침, 교회 자신에 대한 인식 등은 그다지 큰 희망을 줄 수가 없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믿는 것이 신앙이라는 가르침은, 실존적 문제를 처절하게 겪은 사람들에게 무의미해 보였고, 제도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나치즘 같은 국가사회주의가 빚은 인류의 대참사를 겪은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교회의 참모습에 대해 말하기에는 부족했다.

한편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시기에는 교회와 사회가 충돌하더라도 어쨌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20세기 초반기에는 사실상, 이러한 충돌조차 아쉬울 정도로 세계는 교회에 무관심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아직도 교회가 근대 이전의 성 안에 스스로를 잠그고 구원의 진리를 근대이전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이었을까?

공의회 개최를 결정한 요한 23세 교황의 말씀은 이런 문제의식을 전제한 것이다. 그는 공의회로부터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창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우리는 공의회가 신선한 공기를 좀 교회에 들어오게 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사실, 세계에의 개방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자기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아무리 들어오라고 외친다 한들, 이 소리가 이제는 ‘다른’ 세상에 속해있는 현대인들에게 제대로 들릴 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의 필요성이, 무책임한 ‘자기 해체’, ‘자기 정체성 포기’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 23세는 공의회 개막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의 순종을 드려야 하는 분명하고 불가변적 교리들은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방법 안에서 연구되어야 하고 또 제시되어야 한다. 사실, 신앙의 유산, 곧 우리가 존중해야 하는 가르침 안에 포함된 진리들과, 그 진리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별개의 것이다.”

곧, 그리스도교회를 그리스도교회이게끔 하는 본질적 내용들, 사도들에게서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은 언제나 온전하게 보전되어야 하되, 이 신앙의 진리들을 현대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교황은 ‘아조르나멘토’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핵심을 지키되 ‘새로운 모양’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그러면서 교회 자신도 쇄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적 전통과의 연결, 세상에의 개방과 쇄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타원의 두 중심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두 원칙 아래 공의회는, 교회, 계시, 전례, 현대세계에서의 사목, 교회일치, 타종교와의 관계, 교육, 평신도, 선교 등 교회의 대내외적인 면 전반에 걸쳐 16개의 문헌을 선포한다.

한편, 이러한 문헌 선포가 단지 1962년부터 1965년 사이 3년 동안에 이루어진 작업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단순하고 순진하다. 인간 역사의 어떠한 사건도, 프랑스 혁명에서 보듯이, 특히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들의 경우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전통의 보존과 쇄신, 정체성 유지와 개방이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 테마는 사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시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물론,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식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이런 원의를 가진 사람이 소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프랑스, 독일, 동유럽의 몇몇 국가, 그리고 북미 출신의 여러 주교들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것에 지혜롭게 대응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이 테마는 많은 가톨릭 지성인들의 최대 관심사였고, 이러한 관심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다시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1940년대에도 일어난다. 물론 이들 중에는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나아간 이들이 있기도 했지만, 20세기 초의 피에르 바티폴, 그리고 1940년대의 이브 콩가르 , 슈뉘, 장 다니엘루, 앙리 부이야르 같은 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사상과 가르침을 현대세계와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특히 성서신학과 교부학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이들은 교회의 원천으로 돌아가 그리스도교의 근본 사상에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쇄신을 꾀하게 되었다. 1940년대의 이 학자들은 한때 교도권의 오해를 받기는 했지만, 결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 전문가들이 되었고, 공의회가 요한 23세의 의도에 충실하게 진행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신학적 움직임 외에, 현실적으로 여러 운동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례운동의 경우, 신자들이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전에 사제가 주관하는 전례에 ‘수동적’으로만 참여하던 것에서 벗어나게 했고, 이러한 운동은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선포에 밑거름이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평신도의 능동적인 사도적 활동이다. 중세 이후 성직자와 평신도의 이분화된 구조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은 단지 성직자의 지도에 ‘수동적 입장에서 순종’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평신도의 사도적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들의 능동적 역할이 신학적으로 정립되어 갔다. 평신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교회론, 계시의 전달 이해 등등, 곳곳에 스며들었고, 좀 더 명료하게는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 선포된다.

이러한 학문적 연구와 실천 영역에서의 발전을 통하여, 요한 23세가 공의회를 개막하면서 의도했던 전통의 보전과 교회의 쇄신, 곧, 아조르나멘토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 이해 : ‘다시 생각하는’ 그리고 ‘실천하는’ 신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초래한 엄청난 개혁과 혁신의 내용을 몇 줄로 나열한다는 것은 마치 시험문제의 단답식 모범답안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피상적이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신앙의 해 선포와 관련해서 신앙에 대한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교황문헌 「믿음의 문」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발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관련된 가르침은 매우 분명한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신앙은 무엇보다도 계시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전 인격적 응답이다(계시헌장, 5항). 신앙은 더 이상 단순히 교리를 믿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앙을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때, ‘자기 자신을 다 내놓으시고, 친구처럼 말을 걸어오시는 하느님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응답 행위란, ‘자기 자신을 다 내놓는’ 자기 증여, 자기 투신이다.

둘째,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톨릭 교리에 대한 학습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의 내용에 대한 인식과 신앙의 투신 이 두 가지를 연결시키고 있다.

셋째, 전 인격적 응답으로서의 신앙은, 이제 그 자체를 애덕(사랑)과 망덕(희망)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곧,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그 주시는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에 초대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랑에 대한 가장 합당한 응답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자의 사랑이란 수직적 차원, 곧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수평적 차원,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인간의 신앙과 사랑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늘 새롭게 하면서 마지막 날에 그 완성에 도달할 것임을 믿으며 나아간다. 곧 망덕이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고, 사랑하고, 바라는 이 세 가지는 분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셋이 긴밀히 연결된 상태라는 것을 가르친다.

계시헌장 1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온 세상이 구원의 선포를 들음으로 믿고, 믿으며 바라고, 바라며 사랑하게 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신앙이란, 사실, ‘실천하는 신앙’,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사실 베네딕토 16세의 「믿음의 문」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예를 들어 8-11항에서는 신앙고백의 중요성과 함께 그에 일치하는 신앙의 행위를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가톨릭교회 교리 내용을 아는 것에 대해 강조하신다. 신앙이 전인격적 자기 투신이요 실천이지만,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에 대한 탐구와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곧, ‘다시 생각하는 신앙’인 것이다.

신앙 내용을 알 이러한 필요성은 곧 신앙이 갖는 교회적 특성과도 직결된다. 신앙은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며, 사실 교회의 신앙인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앙인은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가 믿는 그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문헌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신앙이 사랑의 실천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믿음 없는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합니다”(14항). 곧 ‘실천하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이야말로, 신자들이 세상 안에서 진리의 말씀에 대한 ‘참된 증언자’가 되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5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신앙생활의 나침반처럼, 교회가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 최현순 데레사 -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교의신학 박사.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한 잘못된 이해와 해석을 벗겨내고, 제1차 ·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서로 긴밀한 연속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의 중심 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10월호, 최현순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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