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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엄사, 안락사, 연명치료 중단, 호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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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08 ㅣ No.1277

[복음살이] 존엄사, 안락사, 연명치료 중단, 호스피스



2008년 11월 법원에서 식물인간 상태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연명해 온 세브란스 병원의 김모 할머니가 평소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현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여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치료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에 대한 존엄사 혹은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9년 5월 이 판결을 다수의견으로 확정하면서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 중단 여부는 생명권 존중의 헌법적 이념에 비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판결하면서 “이 경우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소위 ‘존엄사’의 개념을 확립하고 적용 기준을 마련하는 등 국회 차원의 입법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이 논쟁과 관련해서 가톨릭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존엄사’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과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존엄사’라는 용어는 환자가 고통 없이 존엄과 품위를 지니고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미화된 이미지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존엄사’라는 용어가 남용되어 넓게 사용될 경우 환자의 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적합한 치료조차 중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존엄사’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될 우려가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안락 살해’ 단죄

1980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안락사에 관한 선언’을 보면 안락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은 고대에는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뜻했지만 오늘날 그 의미가 변해서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거나, 가족과 사회에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는 병에 걸린 이들을 죽이기 위한 ‘안락 살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분명히 이런 ‘안락 살해’를 단죄합니다.

어느 누구도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고, 누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살인행위를 요청하거나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비록 오래 지속되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말미암아 선의로 환자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일이 일어나도 살인행위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자신은 물론 이웃의 생명의 완성을 위해 세상 마칠 때까지 생명을 성장시키고 열매 맺을 소명이 있습니다. 안락사는 이렇게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현세 생명의 보존과 완성이라는 소명에 위배됩니다.

통상적으로 안락사는 말기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동의할 경우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의사가 치사량의 극약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자비적 안락사)와 말기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중지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존엄적 안락사)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환자의 치료를 소명으로 삼고 있는 의사의 임무와 모순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이 ‘인간의 자유로운 자기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보는 오류에 빠질 수 있으므로 교회는 이를 배척합니다.

다만 교회는 더 이상 소생할 가능성이 없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면서 “균형”을 넘어서는 과도한 의학적 수단이나 예외적 치료 장치 등을 사용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합당하며, 고의적으로 죽음을 이끌어내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고통스런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해 줄 뿐이기에 인간의 조건인 죽음을 이제 받아들이려는 환자의 결정은 양심 안에서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존엄사 관련 입법은 시기상조

의사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충분한 치료법이 없다면, 여러 가지 조건들을 종합하고 판단해서 새롭게 시도되는 진보된 의료 기술이 환자에게 꼭 필요한 지를 판단해서 그것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환자의 동의를 얻어 중단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담당 의사가 자신이 맡은 환자들 중 완치될 수 없는 환자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의료집착’ 수준의 지나친 연명치료를 고집한다면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되는 것은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정상적이며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수단, 즉 영양공급, 수혈, 주사, 간호, 보편적 투약 등은 언제나 제공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어떤 것이 의료집착이고 어떤 것이 정당한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포기인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의사의 ‘지식과 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최근까지 존엄사나 연명치료의 중단과 관련된 입법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고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아직 안락사나 존엄사,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교회는 존엄사 관련 입법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회적 약자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안락사를 강요받거나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제화는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이유로 생명을 단축하려는 의도가 담기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 먼저 ‘호스피스’에 대한 정부 지원의 법제화가 필요합니다. 만일 정부가 말기환자의 치료비용을 부담하고, 임종을 준비하는 이들을 영적, 정서적으로 도와주는 호스피스 제도를 적극 지원한다면 굳이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을 재촉하는 시도를 찬성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존엄한 죽음 위해 호스피스 법제화 되어야

지난 2005년 3월에는 각계 유명인사 1만4천여 명이 참여한 ‘호스피스 국민본부’가 발족하여 진정한 존엄한 죽음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호스피스의 법제화를 촉구하는 운동을 시작하였고, 지금 정기국회에는 관련 법안에 발의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난 7월부터는 말기 암환자의 호스피스 이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말기 암 환자 이외에 다른 병은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 전국에 호스피스 병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2014년의 경우 말기 암 환자의 13.2%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생명의 끝은 하느님께 맡겨드려야지 어떤 사람도 남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할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은 피해야만 할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영생의 길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가르칩니다. 진정으로 존엄한 죽음이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가족 친지들에게 감사와 용서와 사랑의 인사를 전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생의 마지막을 평화롭게 맞이하는 죽음입니다. 죽음을 앞둔 모든 말기 환자들이 전인적인 도움을 받으며 기쁘게 삶을 잘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지원 관련 법률안이 이번 12월에 끝나는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통과됨으로서 우리 사회에 생명존중의 문화가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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