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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동양고전산책: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1)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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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08 ㅣ No.274

[최성준 신부와 함께하는 동양고전산책] “자비의 해에 되새겨 보는 사랑의 가치”
- 동양의 덕목으로 풀어 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 ① 사랑



지난 호에 이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첫째 열매인 ‘사랑’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란 가장 중요한 가치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전체를 아우르는 덕목이라는 것과 이 사랑을 유학(儒學)에서는 인(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지난번에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눈을 돌려 보면 사랑의 가치는 우습게 여겨지기 십상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 이상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제 최고의 가치는 돈, 권력, 성공, 발전, 건강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취급받곤 하지요. 세상이 이렇게 물질적인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욕망을 좇더라도 그리스도인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우리의 지상 과제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고, 그 사랑의 정점이 성찬례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우리의 사랑을 보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많은 이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성당을 찾아오지만 신앙인들에게 실망해 성당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성직자, 수도자에게도 상처받고 냉담하는 이가 많습니다. 신자들의 모임도 바깥세상의 그것과 다를 바가 별로 없습니다. 카페나 식당에 모여 다른 이의 뒷담화, 험담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게 흔한 풍경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따돌리기도 합니다. 사랑이 가득해야 할 곳에서 오히려 사랑의 나눔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인도의 성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나는 그리스도는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가정에서, 세상 속에서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우린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떠해야 할까요? 공자(孔子)가 이야기한 사랑을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서(恕)’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서로 같이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글자를 공자는 이렇게 풀었습니다.

“자공이 공자께 여쭈었다. ‘한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이 과연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恕), 그 한마디일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1)

진리는 단순합니다.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쉽습니다. 삶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맹자(孟子)의 이야기도 들어 볼까요?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거든 자신의 어짊(仁)을 돌이켜 보고,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자신의 지혜(智)를 돌이켜 보며, 사람에게 예를 다해도 답하지 않거든 자신의 정성스러움(敬)을 돌이켜 보아라.”2)

물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내가 호의를 베풀고 다가가는데도 나의 호의가 전달되지 않고 오해를 산다면, 사랑을 하고 관심을 갖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을 탓하기에 앞서 나의 사랑이 진실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데도 상대가 그 사랑을 잘 받아주지도 않고 관계도 계속 소원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 방식대로 사랑을 베풀고 내가 생각한 대로 호응하지 않는다고 실망한다면 그건 자기만족이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단체의 리더로서, 모임의 대표로서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이끄는데도 사람들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내 권위에 도전한다고 기분 나빠하기 전에 내가 정말 지혜롭게 그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禮)를 갖춰 대하는데도 그 예에 맞게 답하지 않거나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마뜩찮다면 그 사람을 탓하기 전에 겉으로 드러난 예의 바른 행동 안에 내적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면 상대의 그런 행동이 당연할 것이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추어 예를 행했는데도 답하지 않았다면 그건 상대의 잘못이니 개의치 않아도 될 것입니다. 맹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 행위에 진실한 마음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을 드러내는 행위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은 나에게 차고 넘치는 것을 베푸는 자선 행위가 아닙니다. 부족한 가운데서도 나눠 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나눌수록 채워지는, 기적 같은 일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작년 12월 8일부터 ‘자비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비(慈悲)’라는 말은 불교에서 쓰기 전에 중국에서 고대부터 사용하던 말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 가진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가련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어진(仁) 마음이고 사랑입니다. 자비의 근원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말씀처럼 우리도 자비를 베푸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자비의 해를 보내면서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 21)

1)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23장.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於人.”
2)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 4장. 孟子曰, “愛人不親反其仁, 治人不治反其智, 禮人不答反其敬.”

* 최성준 신부는 북경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으로 있습니다.

[월간빛, 2016년 3월호,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교구 문화홍보실장 겸 월간 〈빛〉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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