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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길에서 잡은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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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4-16 ㅣ No.154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길에서 잡은 고래


지금 지구 저쪽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특히 신앙에 대한 열정과 신앙 운동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직도 신앙을 간직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궁금증이 일어난 것은 「길에서 잡은 고래」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저자 르네 뤼크 신부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그가 쓴 책을 더 보고 싶었다. 순식간에 책을 읽어 내려가며 르네 뤼크 신부의 삶에 개입하신 하느님의 손길과 그의 마음에 들어가 사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토록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 기구한 운명이 있을까 싶을 만큼 그의 인생은 험난했다. 좋아하는 형과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 아버지의 이름을 쓰는 난에 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름이라고 써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 그뿐만 아니라 사생아로 태어난 르네 뤼크의 담담한 어린 시절의 고백을 읽으면서 정말 그는 어떻게 사제가 되었을까, 이 기적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하는 호기심마저 일었다. 폭력조직의 일원이었던 새 아버지 마르시알 아저씨와 아름다웠던 관계와 새 아버지의 성을 받을 수 있다는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뿐이었다.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형들과도 헤어지고 언제나 어미 닭이 날개 아래 병아리들을 품듯이 지켜주었던 엄마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사건을 끔찍했던 저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마음이 아파왔다. 좋아하고 의지했던 형들이 떠난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은 어린 나이에 자신도 폭력에 몸을 맡기고 오토바이 폭주족이 되고 그렇게 파괴된 가정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지냈다. 더구나 감옥에서 나온 새 아버지가 길에서 총을 쏴 자살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 순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그는,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폭력의 길로 빠져든다. 소위 말하는 문제아로 그토록 사랑했던 엄마에게 반항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인생 최대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 벌어진다.

우연한 기회에 엄마와 함께 니키 크루즈의 강연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뉴욕 갱 두목이었던 니키 크루즈의 전력을 강조했고 그 전략은 그대로 르네 뤼크에게 먹혀 들어갔다. 니키가 회개하여 목사가 되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강연회였다. 니키 크루즈의 책 「달려라 니키」를 참 감동 깊게 읽었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니키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저는 예수님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고 제 영혼은 변했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삶도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그분을 향해 한 발 다가가기를 초대합니다. 이 단상 아래로 내려와 우리 함께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여러분의 삶을 그분께서 변화시켜주시길 간청합시다.” 이 초대에 한두 사람이 움직이더니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는 니키의 삶에 비해 덜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었기에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니키가 평화롭고 온화한 얼굴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처럼 기도하고 싶다는 원의가 생긴 것이다. 그리곤 그도 기도한다. “예수님, 당신은 니키 쿠르즈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저도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제 마음을 당신께 열려고 합니다. 저 또한 다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기도의 분위기 안에서 눈물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 하느님이 나를 움직이신 것이다. 그날 저녁, 몽펠리에에서 나는 처음으로 니키에 힘입어 ‘성령의 내림’을 체험했다. 성령은 숨결과 같다. 성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에게 오신다. 그렇게 하나의 문이 열렸고, 창문도 열렸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 성령의 숨결이 우리 마음의 벽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그날 저녁 나의 풍향계는 자유로워졌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었다.”(본문 중에서)

막 열네 살이 된 그는 루르드를 순례하게 되고 은총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고 자신의 삶 전부를 바칠 결심을 하게 된다. 사제로 부르시는 하느님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영성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고, 같은 또래의 청소년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체험을 증언하게 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변하게 된다. 여러 기도모임에 참석하면서 점차 하느님의 뜻을 알아가는 르네 뤼크는 전쟁이 한창이던 레바논의 가톨릭 청년들을 만나고 친아버지와 감격적인 해후를 하게 되고 가톨릭 록그룹 토투스 투우스(온전히 당신의 것)를 창단하여 록으로 하느님을 찬미한다. 로마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만남, 마더 데레사와 만남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사제로 서품되어 많은 선교활동을 해나가면서 특히 청소년들을 위한 사목에 헌신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술 취한 레오폴 아저씨에게 고해성사를 주면서 새로운 선교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다. 이 순간을 그는 물고기를 낚는 것뿐만 아니라 길에서 고래를 잡은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교도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감자들과 함께 그들이 직접 쓴 묵상을 나누며, 역할극을 하면서 걸었던 십자가의 길은 굉장히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의 영화 같은 생애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그들처럼 교도소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처럼….

이 지면에서 다 풀어내지 못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이 책은 쉽게 허투루 볼 책이 아니다. 감동과 아름다움이 배어 있고 하느님의 손길이, 고독하고 아픔이 절절했던 한 소년에게 어떻게 어루만지고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지, 사제가 된 후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선교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있는 책이다.

그가 어린 시절 겪은 고난들을 회고하며 이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이 내게 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가족들과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가슴 가득히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 삶은 변할 수 있다!” 어쩌면 마음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외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은 하느님께서 하실 것이다.

[월간빛, 2013년 4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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