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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그리스도교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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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2 ㅣ No.155

[그리스도교 철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150년경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나 215년경 카파도키아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는 클레멘스 성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도교 교리교수로 활동한 덕분에 우리에게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로 불립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부모한테 태어났지만 철학을 공부하던 중, 플라톤주의에 심취하게 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되어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스승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와 이집트의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배우고, 175년경에는 알렉산드리아의 교리교수가 되어 자신의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로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카파도키아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클레멘스는 그리스도교와 철학을 조화롭게 이해하여 서로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던 철학자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강조하고자 육체보다 영혼을 더 중시하던 영지주의의 사유를 이단시했습니다. 그의 저서들에 그리스도교가 경계했던 영지주의적인 모습이 많이 발견되어서인지 초대교회에서 성인처럼 추앙받았던 그는 1748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에 의해 로마 성인달력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 클레멘스는 교회교부의 권한도 박탈당합니다. 하지만 분명 그는 최초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철학적 사유로 해석해 내려고 노력한 철학자였습니다. 이러한 업적을 생각해서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첫 지면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교적 철학은 신학을 포함한다

클레멘스는 신학이나 신앙에 학문적인 설명을 통하여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신학이 학문적으로 발전하려면 철학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성적으로 이해하여 지식으로 아는 것이 실천을 위한 전제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단순한 신앙이 더 높은 인식에로 나아가게 한다고 하는 측면에서 영지주의적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곧 인식한다는 것을 사랑과 연계시키고, 사랑 안에 신앙을 통한 인식으로 신에게 도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면이 그를 영지주의자로 보게 만듭니다.

클레멘스에게 철학은, 그리스도교에서 앎과 신앙이 같이 묶이듯 거룩하고 신적이며, 천상의 유일한 진리의 철학이어야 했고, 이는 그에게 철학과 신학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였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교적 철학은 당연히 신학을 포함하는 것이었으며, 신학과 철학에 통일성이 유지되어야만 했습니다.

클레멘스의 주된 저작은 3부작으로 그리스 철학자들을 주석하면서 교육받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교로 회개시키려고 작성한 「그리스인에게 충고」와 그리스도교적 윤리를 가르치려고 저술한 「교육자」, 그리고 자신의 가장 핵심적인 작품인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근원적인 일치를 꾀하여 근원에 대한 인식론적 사유가 담긴 여덟 권의 작품집(‘이불들’ 또는 ‘침대보들’ 정도로 번역되는 소품집)이 있습니다.

먼저 클레멘스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리스도교적 교육’입니다. 그리스의 이방인들이 행했던 교육의 어리석음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긍정적 가치와 유산을 그리스 철학적 사유로 이해시키면서, 이러한 신앙의 교육이 더 많은 신앙인들을 양성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성경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을 위한 양성도구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의 지혜가 마치 모세나 예언자들이 그러했듯이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완성을 향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느님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클레멘스는 자신의 철학적 가르침이 곧 신학적 가르침이라 믿었기에 그의 철학은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철학에서 주된 문제들은 ‘어떤 명료성에서 순수한 그리스도교적 하느님에 대한 개념이 개진되는 것인가?’ ‘하느님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하느님을 올바르게 선포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들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출발한 클레멘스에게 하느님은 존재 자체였고, 그렇다면 하느님은 절대적 진리였습니다. 이러한 절대적 사유와 존재의 통일성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한 그가 하느님의 본질을 완전히 인식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개념화할 수 있는 범위를 하느님은 뛰어넘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적인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여기서 클레멘스는 부정신학을 수용하며 스스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하느님이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사유하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를 초월하는 하느님의 영원성

클레멘스는, 하느님은 비록 하느님의 본질에 따라서는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용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인식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클레멘스는 굳이 하느님의 존재 증명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질서정연하고 놀라운 세상의 경험은 이미 하느님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충분한 근거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로 사물들을 파악하는 순수사유 안에서 최고의 완성적 본질인 신에게로 상승할 수 있다고 여겼고, 여기서 존재는 필연적으로 포함되어야만 했습니다. 클레멘스에게 이렇게 인간은 배우지 않아도 본성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가질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 정신 본성이 신에게로 향함을 말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레멘스는 그리스 문학에서 표현하는 신인동형(神人同形)적 하느님의 표상을 거부하면서, 하느님은 형상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시공을 초월하고, 모든 우리의 사고 범주를 넘어서 계시다는 확신으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영원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의 하느님에 대한 사유가 범신론적인 의미에 놓이는 것은 아닙니다. 유일신으로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은 인격적 선이고 사랑입니다. 또한 우리를 향하여 내려오시고,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네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은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존재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사유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준비되고, 뒤에 그리스도교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통해 확장되어 갑니다. 클레멘스 역시 이러한 사상들과 지극히 내밀한 관련성 안에 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허석훈 루카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냈으며, 지금은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철학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허석훈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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