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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3: 세속주의와 상대주의1 - 신을 잃은 문화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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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17 ㅣ No.389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3)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신을 잃은 문화에 대한 우려

우리 시대 도전, 주님께 대한 열망 · 사랑 체험으로 극복을


- 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추기경과 주교들.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의제개요는 6항에서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한 6개 영역 중, 현대 사회의 문화를 가장 먼저 꼽으면서,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이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서 새로운 복음화와 참된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신앙의 재발견’을 위한 여정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현대 문화 속에 확산되고 있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한국교회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만연한 세속주의의 가치를 넘어서 새롭게 복음화의 여정을 가기 위해서, 특별히 ‘신앙의 해’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모두 3회에 걸쳐 성찰해보고자 한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개념

사회학자인 오경환 신부는 한국가톨릭대사전 ‘세속화’ 항목에서 이 용어가 현재는 사회와 그 구성원에 대한 ‘종교의 권위가 미치는 범위의 감소’를 지칭하는데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고전 세속화 이론은 사회가 현대화됨에 따라 ‘종교의 변형’이 발생하지만, 그것이 종교의 감소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며 새로운 ‘세속화’ 이론은 ‘종교 권위가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위가 축소되는 것’을 세속화로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세속화는 사회, 종교 조직, 그리고 개인 수준에서 종교적 가르침이나 권위가 직접적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세속화와 세속주의의 혼동

하지만 오신부는 세속주의가 세속화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객관적 과정을 의미하는 사회학적 의미의 ‘세속화’를 종교의 소멸을 추진하면서 종교를 비판하는 ‘세속주의’로 오해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경 박사(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는 “세속주의의 위험은 (세속주의를) 세속화와 혼동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는 ‘세속화’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함으로써 긍정적인 측면을 갖지만, 세속주의는 “그리스도교의 절대 가치가 세속의 가치중립을 가장한 무신론에 질식되어 은폐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세속화’의 긍정적인 측면과 관련해 교황은 2011년 9월 독일에서 “역사가 세속화의 여러 시기를 거쳐 교회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세속화는 교회의 정화와 내부 개혁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고 말했다.

세속주의는 반종교적인 색채를 띠기도 하는데, 오늘날 세속주의는 더 교묘하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해 하느님이 배제된 사고방식을 부추긴다. 주교대의원회의 의안집은 53항에서 이를 상대주의의 풍토로 지적했다.

‘상대주의의 독재’

상대주의적인 사고는 고금과 동서를 통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소피스트들이, 동양에서는 제자백가들이 지식이나 가치가 각자 개인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거론하는 상대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이다. 특히 이성을 믿었던 르네상스 이후, 세계 대전과 대학살 등의 사건들을 통해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포스트모던의 사고방식이 등장하면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의문에 처해졌다.

상대주의는 절대적으로 타당한 원칙을 부정하는데, 윤리학에서는 보편타당한 윤리 질서를, 법철학에서는 자연법을, 종교 철학에서는 종교의 타당성 요구를 거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일하고 절대적 가치와 존재를 주장하는 신학에 반대한다.

하지만 상대주의는 “모든 것은 회의적”이라는 자신의 가설 때문에,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자신의 주장 자체도 진리로 인정할 수 없는 자체 모순에 빠지고 만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도덕적 상대주의는 보편적 지침을 상실한 인간의 상대주의적 사고방식이 인권을 침해하고 오히려 비인간화의 상황을 야기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선출 미사 강론에서 이를 일러 ‘상대주의의 독재’라고 부르며, “결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욕망만이 궁극적 척도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상대주의의 독재’가 형성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결국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 무차별적 다원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특히 종교다원주의는 교회의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무시하고 모든 종교가 구원의 길을 동등하게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한 첫 영역 - 가톨릭교회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에 선출되기 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임하던 라칭거 추기경 시절부터 세속주의와 상대주의는 현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특별히 교황 선출 미사에서 ‘상대주의의 독재’와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경고하고, 해결책으로서 절대적 진리인 그리스도를 제시, 교회와 신앙의 위기를 넘어설 원동력으로서 신앙 정체성의 확립을 최우선적 과제로 선택했다.

교황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2010년 9월 21일 ‘새복음화촉진평의회’를 신설하고 “세속주의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지역의 개별 교회들을 위해 활동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2011년 2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개최를 발표, 특별히 유럽교회 안에서 확인되는 무신론, 종교 냉소주의, 탈그리스도교, 세속주의, 상대주의 등 서구교회가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2011년 10월 11일에는 자의 교서 ‘믿음의 문’을 발표하고 ‘신앙의 해’를 선포함으로써 신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일련의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 안에서 세속주의와 상대주의가 어떻게 신앙의 위기로 인식되고 있는지 교황 문헌과 강론들, 각종 교황청 및 관련 자료들을 통해 살펴본다.

‘믿음의 문’에서 상대주의라는 용어는 없으나, 12항에서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신앙은 변화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일련의 문제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며 “특히 오늘날 이러한 사고방식 안에서 합리적 확실성이 과학적 기술적 발견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앙교리성의 ‘신앙의 해 사목 권고’는 8항에서 같은 진술을 하고 있다.

세속주의에 대해 가장 명료하게 지적하는 것은 주교대의원회의 의제개요 6항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한 첫 번째 영역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부분이다. 또한 의안집에서는 52항과 53항에서 세속화와 상대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속화는 나직한 어조를 취하여, 이러한 문화적 형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하게 했다. 또한 이 문화 형태가 하느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부재하시거나 부분적으로 존재하시고, 그분의 존재 자체도 인간의 의식에 달려 있다는 사고방식을 키우게 했다.”(52항)

이러한 세속화의 흔적은 숱하게 일상에서 발견된다. 만연한 향락주의, 천박한 소비주의, 자기중심주의, ‘신의 죽음’을 대치한 개인 숭배, 모호한 영성주의와 유사종교 등등.

상대주의는 교회의 사회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2004년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는 사회교리가 윤리적 상대주의를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하고, 이것은 위장된 전체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에 선출되기 전부터 세속주의와 상대주의는 현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임을 누차 강조해왔다.


상대주의는 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황은 201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오늘날 교육 활동에 특히 해로운 장애는 우리 사회와 문화에 널리 퍼져 있는 상대주의”라며 “마치 자유처럼 보이는 상대주의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각자 자기를 자신 안에 가두어 버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감옥”이 되고 그러한 상대주의적 지평에서는 참 교육이 불가하다.

교황은 사회홍보매체가 만연한 상대주의를 전파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2008년 홍보주일 담화에서 교황은 “미디어는 우리 시대의 병폐인 경제적 물질주의와 윤리적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대변인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인간에 관한 진리를 알리고, 이를 부인하거나 파괴하려는 사람들에 맞서서 이 진리를 지킬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고 권고했다.

주교대의원회의 의안집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세속화 현상에 대해 더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13, 44, 49, 52, 53, 54, 55항과 63항에서 이에 대한 언급을 한 의안집은 이어 126항에서는 “현대적 개념에서 자유란 진리에서 벗어난 절대적 자율을 의미한다”며 “그래서 상대주의가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 안에서 살아가는 데 유일한 사고방식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이어 151항과 152항에서는 교육의 위기의 근원으로서 상대주의를 지목하고 있다.

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면서 교부들이 교황에게 제출한 건의안에서도 세속화와 상대주의의 문제가 누차 거론된다. 건의안은 ‘세속화된 세계 안에서의 증거’에 대한 8항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음을 깨닫고, 세속화의 과정에 대해 유념할 것을 당부한다. 이어 13항 ‘우리 시대의 도전’에서는 세계화와 세속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복음의 선포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도전을 제기한다고 지적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가 제기하는 현대 사회와 교회의 온갖 도전들 앞에서도 우리 모두는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교황은 지난 11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가진 일반 알현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록 세속주의가 더욱 확산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께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사랑의 체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세속화된 사회 안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열망을, 특히 사랑의 체험을 통해 느낍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1월 18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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