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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뜨겁게 만나다: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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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3 ㅣ No.160

[뜨겁게 만나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지 못하면

미치 앨봄,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며칠 전 딸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들린 건 손녀의 대성통곡하는 소리였다. 이제 만 4년 3개월인 손녀는 정말 슬프게도 울었다.

“아빠, 죽는 이야기하다가 할아버지가 먼저 죽는다고 하니까 나현이가 우네.”

딸은 손녀의 울음에 당황했는지 쩔쩔매면서 이야기했다.

“나현아, 울지 마. 할아버지는 돌아가셔도 나현이 마음속에서 같이 살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참 난감했다. 네 살배기 어린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죽음이라는 화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책

작년 10월에 만기가 된 보험을 대신할 보험을 들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험회사가 고혈압이 있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불리한 조건의 보험을 제시했다. ‘보험 불가입’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나니 남은 생에 대한 불안감이 확 밀려왔다.

‘나이가 더 들어 아프면 보험 혜택도 없이 병이 들면 어떡하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으면 어떻게 되나, 암보험은 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등의 생각을 하던 참에 손녀의 눈물은 다시 한번 죽음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겪어야 할 숙명적인 사건이다. 식물의 죽음에 비해 동물의 죽음은 시체라는 부산물을 남겨 미생물이나 짐승의 밥이 된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아 거창한 영결식을 거쳤든 아니면 소박하게 장사를 지냈든 흙이 되는 과정을 밟거나 화장하여 재가 되어 땅속에 묻히거나 물이나 바다, 산에서 흩날리기도 하고,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사를 지낸다.

육체는 흙이 되지만 영혼은 천국이나 연옥, 지옥으로 간다. 죽자마자 가는 것인가? 아니면 구천을 맴돌다가 가는 것일까? 억울한 영혼은 구천을 헤맨다는데, 연도를 바치면 빨리 천국으로 간다고 하는데 맞는 말일까?

미치 앨봄이 지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삶과 죽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죽어 다섯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천국으로 간다는 건 비종교적인 발상이지만 다섯 사람을 통해 주인공 에디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에디의 과거로의 여행에서 만난 다섯 사람 중에는 에디라는 주인공이 생전에 만난 사람도 있고, 만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두 에디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고, 에디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있다.


죽은 뒤 만난 다섯 사람

놀이기구의 추락으로 위험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죽은 에디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에디 때문에 죽은 남자였다. 야구공을 잡으려고 도로에 뛰어든 어린 에디를 피하려던 남자는 에디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길가에 서있는 트럭에 부딪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에디가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필리핀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굶주림과 노동에 시달리다 적군을 죽이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지뢰를 밟아 부하들을 구하고 전사한 대위였다.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은 에디가 미워하는 아버지였다. 무뚝뚝하며 폭력적인 아버지는 에디의 반항에 섭섭하여 말도 하지 않는 관계로 발전한다. 에디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다. 아버지는 친구를 구하려다 물에 빠져 익사했지만 에디는 술주정으로 바닷물에 빠져 병이 들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네 번째 만난 사람은 에디의 사랑하는 아내 마거릿이었다. 경마장에 있는 남편을 데리러 가던 마거릿은 한 소년의 술병 떨어뜨리기 장난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가 살아난다.

다섯 번째 만난 사람은 어린 소녀였다. 필리핀에서 적군을 죽이고 불을 지를 때, 불에 타죽은 소녀였다. 불붙은 막사 안에 누가 있음을 알고 머뭇대다가 대위의 재촉에 그냥 빠져나오는 바람에 소녀는 죽는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아야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건을 겪는다. 자의든 타의든 선의를 베풀기도 하고,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법을 어기기도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오해와 편견으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괴롭힌다.

이 책은 천국이나 지옥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곧 현재의 삶이 죽음과 연결되고 있으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죽음의 세계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천국이나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만나는 사람, 행위와 감정을 세상을 떠나 다섯 사람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천국에서의 생활,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지 않으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을 살면서 가족이나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면 천국은 그 어디에도 없을 듯하다.

* 박재형 프란치스코 - 동화작가. 가톨릭문우회, 제주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교대, 제주대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40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 교감, 제주도교육청 정책기획실장 등을 거쳐 현재 백록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까마귀 오서방」, 「짜장면」, 「내 친구 삼례」, 「이여도로 간 해녀」, 「검둥이를 찾아서」 등의 창작동화집을 냈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글 박재형 · 그림 박순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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