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4: 세속주의와 상대주의2 - 한국교회와 세속주의, 상대주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4 ㅣ No.392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4)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한국교회와 세속주의 · 상대주의

종교를 취사선택의 문제로 만드는 신앙의 위기 상황


세속주의, 상대주의, 종교적 다원주의 등의 용어들은 항상 함께 붙어 다닌다. 이러한 경향들이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세상과 사람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근본적이고도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의 정신 사조들에 대한 우려의 일차적인 대상은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이다. 따라서 주로 서구 사회의 변동과 직접 관련되어 지적되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등의 사조들은 한국과 한국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회에서는 오랫동안의 역사 및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는 복잡한 개념들을 좀 더 단순화하고 이를 한국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현실들과 연결지어 봄으로써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문제가 결코 한국교회와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살펴본다.


세속주의는 세속화의 과정과는 다른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천교구 오경환 신부는 저서 「종교 사회학」에서 ‘세속주의’는 세속화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초자연적 세계를 부정하고 개인의 윤리와 사회조직의 기반으로서 비종교적인, 혹은 반종교적인 원리를 주장하는 사상체계”라고 규정한다.

개념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속화는 세속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유리한 종교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여러 문헌에서는 ‘세속주의’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속화의 진전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들을 광범위하게 지적한다.

상대주의는 한마디로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며 절대적 진리, 보편적 도덕과 윤리를 거부, 무차별적 다원주의를 양산한다. 특히 종교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무시함으로써 모든 종교를 똑같이 취급한다.

그러면 이러한 정신 사조가 한국교회 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한국 사회와 교회의 현실

현재 보편교회는 오늘날의 시대 상황이 ‘새로운 복음화’가 절박한 현실 속에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수원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과 신앙의 해를 맞아 발표한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가 당면한 현실을 활기찬 겉모습과는 달리 심각한 신앙적 위기 상황에 있다고 진단했다.

사목교서는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미사 전례 안에서도 활력과 영성을 얻지 못하고, 선교를 향한 열정은 식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회가 자리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과학기술 발전의 부정적 영향, 전통의 단절과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의 문화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경제적 풍요가 오히려 사회 부조리와 소외층을 양산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정신적 가치는 쇠락하고 죽음의 문화는 확산되며, 결국 인간의 기본권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있다고 사목교서는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신앙의 유지와 성숙을 저해하고 있는 바, 종종 신자들은 신앙이 삶의 본질이요, 목적이 아니라, 부차적이며 취미 생활처럼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신앙적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몇 가지 의무를 형식적으로 채우는데 만족한다. 신앙은 신앙이고 삶에 적용되는 원리와 원칙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결국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신앙의 위기 상황을 구성하는 사회적 현실 안에서, 신앙인은 비신앙인과 차별화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사목교서의 진단이다.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세속화 현상

오경환 신부는 사회학적 이론으로서의 세속화 이론과 관련해 최근의 주장들을 바탕으로 ‘세속화’를 ‘종교 권위 범위의 감소’로 개념하고, 사회, 종교 조직, 그리고 개인 수준의 세 가지 세속화의 층위를 구분하고 있다.

사회 수준의 세속화는 “정치, 경제, 교육과 같은 사회 제도 영역에 대한 종교의 통제 능력의 감소”로 규정된다. 공적 영역의 주요 정책들이 종교적 영향권 밖에서 결정되는 것은 종교의 사회적 중요성의 감소를 의미하며, 이것이 사회적 세속화라는 것이다. 실상, 유럽교회가 최근에 직면한, 학교 교과과정에서 교회 학문의 배제, 종교적 상징의 공공 장소에서의 철거 등은 사회적 세속화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회적 세속화는 사회학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해방 이후 완전한 정교 분리 정책으로 인해 거의 완벽하게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적 뿌리를 가진 유럽 등 서구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다수를 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서구교회에서 크게 우려하는 사회적 세속화는 한국 사회 안에서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 조직의 세속화에 대해 오경환 신부는 샤베스(Chaves, Mark)의 이론을 빌려, 종교 조직 안에서 종교 권위자의 통제 능력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오 신부는 한국에서 조직 수준의 세속화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지만, 이러한 세속화가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한편 개인 수준의 세속화는 “종교적 해석을 빌리지 않고 세계와 자신을 바라보는 의식 구조” 또는 “개인의 행동이 종교적 통제를 받는 정도의 감소” 등으로 규정된다. “개인들이 종교 권위의 견해와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실천하지 않고 자율적이고 선택적으로 종교적 견해를 갖고 행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개인 수준의 세속화라는 것이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는 교회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개인의 취향에 맞는 것들만을 선택하고 준수하게끔 만든다. 사진은 지난 3월 미국 워싱턴에 있는 ‘내셔널 몰’ 앞에서 열린 무신론자 집회의 모습. 


개인 수준의 세속화

실상, 개인 수준의 세속화는 오늘날 신앙의 위기 상황이라는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른바 서구에서 유행하는 ‘카페테리아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뷔페식당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취사선택해서 먹듯이, 종교와 신앙생활에서도 개인의 취향에 맞는 것들만을 선택하고 이를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경향을 이른다. 이러한 경향이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생명윤리 문제이다.

교회는 낙태는 물론 피임과 인위적인 산아제한과 시험관 아기까지를 모두 금지하며, 안락사와 동성애 역시 반대한다. 하지만 많은 조사 결과들은 충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가톨릭 신자들과 비신자들의 차이를 보이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자유롭게, 상식적 차원에서 볼 때에는, 세속화 현상을 세속적 사고방식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침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쾌락주의, 성공주의 등 세속적 가치는 교회 안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고 지적된다.

김혜경 박사(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는 세속주의가 교회 안에 침투함으로써 대학 합격을 비는 기복성 신앙생활, 거창한 이벤트나 행사 위주의 겉치레 신앙, 비도덕적이고 비인격적이며, 물질주의적 교회 운영 등도 세속주의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 머물 곳이 없어지게 만드는 교회의 극단적인 중산층화나, 교회의 성장을 교세의 획기적인 증가로 측정하려는 성장주의 사고방식 역시 세속주의의 침투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인 성속이원론에 근거한 ‘신앙 따로 삶 따로’의 표리부동한 신앙생활 역시 세속주의의 단적인 예라고 할 만하다.


신앙의 이유가 단지 ‘마음의 평안’?

대구대교구 삼덕젊은이본당 부주임 김덕우 신부는 석사논문 ‘한국가톨릭교회 세속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서 한국갤럽의 통계를 인용, 가톨릭 신자들의 세속화 경향을 나타내는 몇 가지 지표를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자기 신앙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한 가톨릭 신자가 2004년에는 1984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고, 신에 대한 믿음이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천국과 영혼, 기적에 대한 믿음은 모두 감소했다. 특히 신자들의 종교성 전반이 2000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를 믿는 이유’는 각별한 함의를 지닌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1984년 ‘마음의 평안’이 이유라는 응답이 불과 37%에 그쳤지만, 2004년에는 74%에 달한다. ‘영원한 삶’, ‘삶의 의미’ 등의 응답은 ‘마음의 평안’에 비해 극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신앙의 이유가 개인의 심리적 측면의 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의제개요에 대한 한국교회의 응답서는 이렇게 말한다.

“총체적 삶의 방식으로서 종교 본연의 역할이 약화되고 종교가 개인의 내면적 영역으로 후퇴하여 단순히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교회의 늘어나는 쉬는 신자, 주일 미사 참례자 수의 감소, 청소년과 젊은 층의 저조한 신앙생활 참여, 교회의 중산층화 등이 이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곧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로 이어진다. 마음의 평안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준다면, 그것이 어떤 종교이든 상관없다는 태도이다. 서울대교구 박준양 신부는 ‘근본주의와 상대주의: 젊은이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진단한다.

“도덕적 상대주의, 자기만족 추구의 문화, 그리고 정의에 관한 상대적 이해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기분과 느낌에 좋은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의 상대주의에 해당한다.”

앞서의 갤럽 조사는 이를 통계로 보여준다. “종교단체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되는 종교적 믿음을 실천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가톨릭 신자가 85%에 육박한다. “여러 종교의 교리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같거나 비슷한 진리를 말한다”는 생각을 가진 신자들이 80% 내외이다. “극락이나 천국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고 응답한 신자는 1984년 56.8%에서 2004년 71.3%로 대폭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톨릭의 교리를 수용하면서도 다른 종교, 특히 불교의 교리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는 가톨릭 신자가 많다는 점이다. 창조설과 심판설을 수용하면서도 불교의 윤회설을 긍정하는 가톨릭 신자가 1984년 24.3%에서 2004년 39.69%으로 증가했다. 다원화된 종교적 상황에서 종교 교리의 상대화를 드러내는 이 같은 수치는 종교교육의 문제는 물론 기본적인 신앙 생활의 허점을 나타낸다.

[가톨릭신문, 2012년 11월 25일, 박영호 기자]


1,71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