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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기도주간: 정교회 한국대교구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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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15 ㅣ No.186

[특집]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1.18-25) 정교회 한국대교구 성 니콜라스 주교좌 대성당을 찾다

'오래된 교회'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성찬예배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조그라포스 대주교가 주 예수 그리스도 신현축일 미사를 주레한 뒤 대성수식을 갖고 정교회 신자와 어린이에게 성수를 나눠주고 있다.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은 분열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할 지극히 거룩한 대의를 손상시킨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 분열이 세상에는 걸림돌이 되고, 그리스도의 뜻에 명백히 어긋난다고 확언한다.

1054년 동ㆍ서 교회 분리 이후 1000년 가까이 이어져온 분열의 역사는 갈등과 파국, 화해로 이어져 왔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4년 9월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 표시로 이탈리아 아말피에 옮겼던 안드레아 사도 유해를 다시 그리스 파트라이로 보내면서 성 베드로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인 6월 29일과 11월 30일에 서로 사절단을 보내 교류를 갖고 있다.

이에 18일부터 바오로 사도 회심(개종) 축일인 25일까지 이어지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주간을 앞두고 6일 정교회(Orthodox Church) 한국대교구 주교좌성당을 탐방했다.

마침 6일은 정교회 전례력상 '주 예수 그리스도 신현(神顯)축일'이었다. 주님 세례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스 정교회를 제외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비롯한 대부분 정교회는 이날을 성탄 축일로 지낸다.

조과(早課)에 맞춰 일찌감치 서울 마포구 아현1동 정교회 한국대교구 주교좌성당으로 향했다. 5호선 애오개역에서 5분 거리도 안 된다. 언덕을 돌아 오르니 돔형의 둥근 지붕(cupola)이 인상적인 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다. 여우 꼬리 마냥 짧은 겨울햇살 속에서 얼음처럼 명징하게 빛난다.

주 예수 그리스도 신현축일 미사를 봉헌한 뒤 대성수식에 참여한 어린이가 성화상에 친구하며 해당 성인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예를 표시고 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 예비교인들이 머무르는 공간인 현관(Narthix)을 거쳐 본당(회중석)에 들어서니 몇몇 신자들이 자비를 비는 예배인 조과에 몰입해 있다. 그리스도 생애를 기념하는 아름다운 시편들이 운율에 맞춰 불려진다. 악기를 일체 쓰지 않고 기도하는 이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언어가 잔잔하고도 심오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눈물 흘리는 '티츠빈의 성모'

문득 눈을 떠보니 구세사를 담은 성화가 압도적이다. '눈으로 보는 교리서 혹은 성경'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실감이 난다.

거룩한 제단이 있는 지성소(至聖所)를 중심으로 천장 원개에는 만물의 주관자(Pantocrator)인 주님과 구약 의인들, 예언자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시편 102,20 참조). 원개를 지탱하는 네 기둥엔 4복음서 저자가 그려져 있는데, 4복음서에 의해 교회가 지탱된다는 뜻이다. 이어 구세사를 열두 장면으로 나눠 형상화했다. 다른 정교회 성당에선 부활사건을 세분화, 열여섯 내지 열여덟 장면으로 형상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니콜라스성당에선 열두 장면을 그렸다.
 
오른쪽 벽면엔 주님 탄생부터 주님 변모와 성신(성령)강림이, 왼쪽 벽면엔 주님 부활부터 주님 세례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그려져 있다. 지성소 뒤쪽 벽에는 두 팔 벌려 주님을 품고 있는 성모님, '표상의 성모'를 그려 구약의 예표를 보여준다(이사 7,14 참조). 특이한 것은 성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교회에선 일부를 제외하고는 입체 조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성당 입당에 앞서 한 어머니가 촛대쪽으로 아이를 들어올려 기도 지향을 담은 촛불에 불을 붙이도록 돕고 있다.
 

이 성당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성화상이 있다. 지성소 왼쪽과 오른쪽 구석에 각각 놓여 있는 '티츠빈의 성모'와 '사로프의 성 세라핌'이다. 이들 이콘은 112년 전 러시아인 흐리산토스 세헷콥스키 수사 신부 등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이 중 '티츠빈의 성모'는 우리나라에 국난이 있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기적으로 유명하다.

이윽고 성찬예배가 시작됐다. 천주교회에서 미사라고 하는 것과 달리 정교회에선 성찬예배, 곧 리뚜르기아(Liturgia, 감사의 성사)라고 부른다.
 
이날 한국 정교회에서 사용된 성찬예배는 4세기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초대 교회에서 전해져온 전례를 체계화한 것으로,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나뉜다. 말씀 전례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영광송을 시작으로 평화를 간구하는 대연도(평화의 연도, 연속되는 기도), 구약 시편 반복구인 안티폰(Antiphon),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것을 상징하는 복음경을 들고 입당하는 소입당, 사도행전 및 바오로 서간을 봉독하는 사도경 봉독, 복음경 봉독, 설교로 이뤄진다.
 
이어 세례를 받은 신자들만이 참여하는 성찬 전례는 그리스도 수난을 재현하는 대입당을 시작으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따른 신앙신조(12개항) 고백, 성체성혈성사 봉헌기도, 주님의 기도, 영성체, 감사기도가 이어진다. 성찬예배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든 교인이 그리스도와 같이 산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성찬예배는 정교회의 삶과 예배의 중심이 된다.
 
생전 처음 접하는 전례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전례 순서를 알지는 못해도 대충은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 갈라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동ㆍ서방교회가 똑같은 모습으로 전례를 해왔다는 점, 그리고 같은 뿌리에서 나온 전례이기에 미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성부가 성자와 성령의 원천"

하지만 교리적 측면에선 다른 점이 있다. 똑같이 성경과 성전(Sacred Tradition)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선 다를 게 없지만, 에즈라 1ㆍ2서와 마카베오서를 분할해 구약성경이 49권이다. 또 삼위일체 교리에서도 서방교회가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필리오케)"를 덧붙인 것과 관련해 성부가 성자와 성령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경에서 '필리오케'를 넣는 것을 반대한다.

정교회 한국대교구 주교좌성당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전경. 
 

또 일곱 성사를 보존하지만 성체성사를 성체성혈성사라고 부르며 늘 양형 영성체를 한다. 단 성체는 반드시 누룩이 든 빵을 쓴다. 세례 때는 초대교회 관습대로 침례를 세 번 한다. 견진은 세례 후 즉시 일반 사제가 집전하고 곧바로 양형 영성체를 한다. 고백(천주교회의 고해)도 별도로 고해실을 두지 않고 지성소 앞 성화상 벽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며, 율리우스 역법을 쓰기에 부활과 성탄 등 교회력 날짜가 다소 다르다.
 
교계제도는 9세기께 포시우스 총대주교 시절에 완성된 「동방교회 법전」을 토대로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교회들로 구성돼 있고, 주요 성직은 주교와 사제, 보제(천주교회의 부제)로 이뤄져 있다.

본당에 들어오는 신자들마다 제각기 성모자상과 니콜라오 성인 이콘에 친구한 뒤 초를 들어 불을 붙이고 회중석에 앉는 모습이 인상 깊다. 자기 자신을 녹여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주님의 빛이 돼 세상을 밝히며 살아가겠다는 표지이자 다짐이다. 신현 축일이어서 이날 전례에선 성찬예배에 이어 대성수식(성수 축복 예식)도 함께 거행됐다. 1년에 한 차례씩 성수를 축복하고 신자들과 나누는 예식이었다. 조과부터 시작해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성찬예배는 오랜 전통을 지켜온 '오래된 교회'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오래된 형제들의 살아 숨쉬는 전례였다.
 

오래된 형제들의 살아있는 전례

예배 직후에 만난 정정남(벨라기아, 62)씨는 "오늘 신현 축일 성찬예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삼위께서 나타내신 날이기에 정교회는 성탄 축일 못지않은 큰 축일로 지내고 있다"면서 "성찬예배는 예전보다 짧아졌지만 옛 전례를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게 매력이다"고 귀띔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세상에 교회가 분열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초대교회 때 모습 그대로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시리아 안티오키아, 로마, 콘스탄티노플 등 다섯 교회가 동등하게 운영되는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12년 1월 15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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