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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정 폭력은 범죄다: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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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6 ㅣ No.930

[경향 돋보기 - 가정 폭력은 범죄다!]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내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을 많이 해서 / 내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 하는 것을 전 알아요. / 왜냐하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 온몸이 아프고 멍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 / 왜냐하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내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 지난밤 그는 나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어요.

내가 좀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나는 아마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13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탈출한 미국 여성 폴레트 켈리의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I got flowers today).’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가정 폭력의 은밀성, 지속성, 반복성과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난 시입니다.

 

‘가정 폭력’이라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인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헌신을 약속한 관계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할 ‘가정’에서 위협적인 고통을 주는 ‘폭력’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정 폭력의 다양한 유형들 가운데 배우자 폭력의 경우를 중심으로 그 특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은밀하게 발생하는 가정 폭력

 

인간관계 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관계가 바로 부모자녀 관계와 부부관계, 곧 가족관계입니다.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연약함을 감춘 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지만, 저녁이 되면 지친 몸과 연약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쉴 수 있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의 안식처와도 같은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친밀하고 모든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이들로 서로를 지켜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가족을 지키고자 가족 구성원의 연약함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보호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배웁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족관계의 은밀성이 형성됩니다. 가족의 기능이 건강하게 유지될 때는 이러한 은밀성이 가족의 응집력과 신뢰성을 높여주고 건강한 베이스캠프의 기능을 하게 도와주지만, 오히려 은밀성으로 말미암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곧, 고통을 가한 사람이 나를 지켜주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담장 너머로 소리쳐 이러한 행동을 폭로하고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가정 폭력

 

가정 폭력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면 계속 반복되고 더욱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가정 폭력은 ‘긴장 → 폭력 발생 → 후회와 화해 → 긴장’이 반복되는 순환 과정입니다.

 

긴장단계는 부부 사이에 짜증이나 긴장이 누적되는 시기로, 기분이 상하는 일들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불쾌한 감정을 억제하면서 침묵과 비난, 음주, 폭력적 행동의 예고 등의 행동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피해자는 움츠러들거나 눈치를 보고, 비굴한 태도를 보이거나 때로는 비난하고 상대방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폭력 발생 단계는 갈등의 긴장이 지나치게 쌓여 가해자가 자기 통제력을 잃고 폭력을 행사하는 단계입니다. 이때 피해자는 심각한 모멸감과 심리적 신체적 고통,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끼지만 배우자가 상해를 입힌 행동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은밀성이라는 암묵적 규범을 내면화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폭력은 반복되고 강화됩니다.

 

후회와 화해 단계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거나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기로 다짐하는 단계입니다.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을 후회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합니다.

 

한편 피해자는 배우자의 순간적인 실수라 이해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자 용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화해 단계에서 다시 긴장이 쌓이고, 가정 폭력이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가정 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점차 주기가 빨라지고 학대의 정도가 심각해져 화해 단계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가정 폭력이 발생하면

 

가정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은 피해자가 은밀성이라는 암묵적 규범을 깨고 가족이나 지인 등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폭력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부부관계는 건강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관계입니다.

 

따라서 이에 도움을 요청하느라 부부갈등이 악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족이나 친구 등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폭력을 자제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로, 각 지역의 상담 센터나 가정 폭력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상담 또는 부부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위기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폭력 피해의 대응방법에 대한 상담, 개인의 분노와 스트레스 관리, 부부관계 유형의 핵심 요인 분석, 그리고 부부갈등 해결을 위한 의사소통 훈련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가정 폭력에 대한 대응법이나 예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부부관계 문제해결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셋째로, 피해자는 가정 폭력에 대하여 형사 사법 체계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1998년부터 가정폭력특례법이 시행되고 있으므로 가정 폭력 사건을 신고하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임시 조치 등 폭력 제지와 예방을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가정 폭력 사건이 가정 보호 사건으로 처리되면 법원이나 검찰청을 통한 상담위탁이나 법무부의 수강명령 등을 통하여 가정 폭력 가해자를 폭력 중단과 예방을 위한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습니다(여성 긴급 상담전화 1366 또는 지역사회 가정 폭력 상담소에 문의하시면 더욱 상세히 안내해 드립니다).

 

 

가정 폭력을 예방하려면

 

가정 폭력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분노 관리와 폭력 행동의 통제 실패가 원인입니다. 가정 폭력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 곧 가족 배경(부모의 폭력), 사회문화적 통념, 부부갈등의 악화, 알코올 등은 가해자가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 영향을 주지만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을 허용하는 통념의 영향을 받으면서 폭력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도 여러 가지 개인적, 신앙적인 노력을 통하여 자기관리를 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스트레스나 분노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자기관리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신앙생활, 취미나 봉사활동, 혼자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의 만남 등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보다 약한 사람들, 특히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할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폭력을 허용하는 통념의 영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자녀를 키우면서 “말 안 들으면 맞는다.”라고 하거나 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을 두고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라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폭력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폭력을 허용하는 통념을 암묵적으로 학습하게 되면 자신보다 약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늘어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가 폭력을 허용하는 태도나 신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그런 태도나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 근원에 어떠한 분노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심리상담을 받거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가정 폭력을 예방하려면 아이들에게 인간에 대한 존중,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부모의 모습을 통해 배우게 해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때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대화와 소통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말보다 더 큰 배움을 얻게 되고,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욱 건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부부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은 지역사회 상담 센터나 건강가정 지원 센터에서 제공하는 부부관계 증진과 의사소통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음주와 관련된 가정 폭력을 예방하려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알코올은 뇌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이성적 판단력과 감정 통제 능력을 감소시키고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더욱 쉽게 하게 합니다.

 

알코올 문제가 있는 분들은 정작 본인은 술을 즐길 뿐이지 알코올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이 악화되어 문제가 점차 심화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알코올 상담 센터나 알코올 중독자협회(AA)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 ‘적과의 동침’의 주인공 로라는 남편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가 3년 7개월 6일 만에 자신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남편에게서 도망칩니다. 한국 영화 ‘빈집’의 여자 주인공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낯선 사람’을 따라 갑니다.

 

폭력이 존재하는 한 배우자는 안전한 동반자가 아니라 낯선 사람보다 못한 ‘적(敵)’이며, 가정은 더 이상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집’이 아니라 ‘빈집’을 뜻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폭력에서부터 지키고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자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 김미숙 - 서울 서초가족상담센터 소장이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외래교수를 지내고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법무부의 ‘가정 폭력 행위자 프로그램의 효과 : 인지행동 /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 해결중심 치료모형 비교연구’에 참여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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