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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회의 불평등: 우리 사회는 공평한 기회를 주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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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3 ㅣ No.1332

[경향 돋보기 - 기회의 불평등] 우리 사회는 공평한 기회를 주고 있나

 

 

“모두에게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등장했던 이 말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든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명제이다.

 

‘공평한 기회’란 인간이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할 때 외부 환경의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외부 환경의 요인이란 성과 종교, 인종, 외모,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같은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주어진 조건을 뜻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거나 또는 여자나 이민자이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과 재능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라 할 수 없다.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사회 공정성의 척도이자 신뢰의 근간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생활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취업현장에서는 외모나 성별, 가족 배경, 인맥에 따른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교육과 취업 경쟁력에 끼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아기 영어 유치원에서 시작하여, 중고등학교 시절의 고액 사교육, 대학생 또는 성인이 된 뒤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심지어 청년들의 사회진입 경쟁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무급 인턴 경험이나 비싼 직업교육 학위의 기회도 모두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 회자하는 ‘수저 계급론’은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자식 교육의 질과 양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결국 자식의 고용과 사회적 지위 획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수저 계급론’을 통해 표현되는 젊은이들의 분노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식세대의 성공 기회를 결정짓는 데서 오는 무기력감으로부터 나온다. 취업이나 승진과정에서 아무리 법적 제도적으로 공평한 기회를 명문화해 두었다 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경쟁의 출발선이 다르다면 실질적 기회의 공평함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다

 

기회 불평등의 현실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대하고자 동그라미재단에서 올해 3,500명을 대상으로 ‘기회 불평등에 대한 경험과 인식조사’를 실시하였다. 기회 공정성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결과를 하나 소개하자면, ‘한국사회는 집안 등 사회경제적 배경이 개인의 노력보다 성공에 더 중요하다.’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74%나 되었다. 많은 사람이 사회의 기회 공정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는 청소년과 청년세대에서 우리 사회의 공평한 기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또 다른 세대에 비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공평한 기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공평한 기회에 대한 젊은층의 부정적 현실인식이 현실을 100%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과 청년세대 대부분이 기회의 공평함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만으로 암울한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는 데서 느끼는 좌절감과 무기력감, 누군가는 나보다 나은 환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공의 열매를 쉽게 가져갈 수 있는 데서 오는 실망감과 상대적 박탈감, 이런 감정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어떻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고 발전 동력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인가?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희박해진 사회, 불과 십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내가 노력하면 뭐든 성취할 수 있고 성공을 향한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믿음이 비교적 보편적으로 공유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러한 믿음이 급격하게 깨지고 교육이 신분상승의 사다리보다 기존 계층을 더욱 공고히 하는 세습의 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현재 청년층이 가진 기회 불평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경험은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지 시간을 두고 판단할 문제이다. 그런데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영미 교수는 현재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공고한 계층화 추세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다. 그 실마리로 청년세대보다 청소년세대, 30대보다 20대에서 가족배경이 개인 삶의 조건과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지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공평한 기회는 공평한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정당하게 대우받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흔히 공평한 기회는 공평한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개인의 잠재력을 키우고 꿈을 실현하는 첫 단계가 교육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회가 얼마나 공평하게 주어지는지 비교할 때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국가별 15세 학생들의 학력 성취도를 나타내는 국제학력평가(PISA) 점수의 편차로 교육기회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점수의 편차가 큰 국가의 경우 교육기회 불평등이 높고, 편차가 적은 경우 교육기회 불평등이 낮다고 평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이같은 방식으로 국제비교를 하게 되면 교육기회 불평등이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아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면 기초교육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고, 각종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내기에 유리한 암기식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기회 불평등을 논할 때는 아이들이 미래에 일자리를 차지하고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하는데 교육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제공되며 서열화되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동그라미재단에서 시행한 ‘기회 불평등에 대한 경험과 인식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아이들의 가정 배경과 거주 지역에 따라 교육기회 격차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과 가족이 상층에 속해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일수록 그리고 서울과 영남권에 거주하는 학생들일수록 학교생활과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어린 시절에 받은 질 높은 교육은 아이의 꿈과 잠재력을 키우는데 절대적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교육의 기회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또는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는 것은 공평한 기회를 위한 사회의 첫 번째 디딤돌부터 흔들거리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기회가 공평한 세상을 이루고자 우리 사회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 지역에 따른 교육 기회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교육, 현재의 나로 평가받는 사회

 

교육의 내용도 더 성숙하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 교육을 단순히 아이들이 미래 경쟁에서 이기려는 스펙 쌓기 수단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 스스로 잠재력과 꿈의 크기를 키워주는 소중한 기회로써 자리매김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른바 말하는 스펙(학력과 자격증) 쌓기 경쟁에 노출되어 각종 학원을 전전하며 진정한 자아발견이나 잠재력을 키울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우울한 청소년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또 얼마나 많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꿈보다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생존의 압박’을 받고 있는가? 초등학생의 입에서 임대업이 꿈이라는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을 희망직업 1순위로 꼽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교육은 미래의 일자리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고, 미래의 일자리는 정체상태인 현재의 경제 상황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현재의 청년들은 과거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했던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분야의 영역을 만들어내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면서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삶의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를 갖출 수 있는 기초 체력은 진일보한 교육으로부터 나온다.

 

모두가 임대업과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에서 기대할 것은 별로 없다. 경험과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찾고, 생존과 성공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사회는 다양한 기회가 창출되고, 나름의 방식으로 성공할 기회가 열리는 희망이 있는 사회이다.

 

아울러 대학진학 단계에서 정점을 찍는 현재의 평가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리 한국에서 왜 유독 어릴 때부터 경쟁적으로 교육에 과잉투자를 하고, 입시를 위한 교육에만 몰두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교육과 기회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는 한국에서는 어떤 대학에 들어가야만 사회에서 더 쉽게 취업할 수 있고, 더 쉽게 승진할 수 있으며, 더 쉽게 높은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곧 인생에서 대학 진학이라는 한 번의 결과가 이후 인생의 기회를 결정해 버리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평한 기회란 그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질과 역량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평가받고 대우받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성취, 특히 어떤 대학에 입학했는지에 따라 현재의 역량을 평가받고 다른 기회의 문이 차별적으로 열리는 것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고, 다시 도전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 앞에 높은 장벽을 세우는 것이다.

 

달리기 경주에서 넘어진 사람이나, 일정 궤도에서 이탈한 사람에게 또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고,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주는 사회, 이것이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의 또 다른 조건이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공평한 기회는 인생의 어느 특정 시점을 끊어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회는 생애 전반에 걸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기회에 영향을 미친다.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거주 지역에 따른 교육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미래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꿈의 크기를 키워 기회의 폭과 양을 늘릴 수 있는 진정한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진학 이후에도 지속적이고 공정하게 재평가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사회가 바로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일 것이다.

 

* 김현진 - 동그라미재단의 연구사업팀장으로 ‘기회 불평등에 대한 연구사업’과 ‘지역 기반의 사회적 기업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적 영향을 주는 활동에 관심이 많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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