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 단원의 봉헌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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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02 ㅣ No.676

[레지오 영성] 레지오 단원의 봉헌 갱신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영보 축일(3월25일)을 전후하여 가장 크고 중심을 이루는 연례행사인 아치에스 행사를 실시합니다. ‘전투 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을 지닌 아치에스 행사를 통해 모든 단원들은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된 단원으로서의 자각을 깊이 새기는 뜻으로 성모님께 대한 봉헌을 갱신합니다. 교본에 나와 있는 봉헌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의 모후,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오직 당신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나이다.”(261쪽)

 

만물이 소생하는 3월에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가운데 거행하는 이 행사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정착하던 시대에 겨울을 지나면서 전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군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레지오 단원들도 레지오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단체로 충성을 새로이 다짐하며 앞으로 한 해 동안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울 힘과 축복을 청하는 이 의식에 엄숙한 마음으로 모두 참석해야 하겠습니다. 교본은 이유 없이 아치에스 행사에 불참하는 단원은 레지오에서 필요 없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며, 봉헌 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봉헌이 중요한 것은 세례 때에 성령을 받듯이 단원들은 봉헌을 통해 성모님의 마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레지오의 사도직은 성모님의 마음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효과적인 협력이 됩니다. 봉헌이 온전하면 할수록 성모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더 잘 봉사하는 성모님의 손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성모님께 대한 봉헌을 강조했고, 또 자주 이 봉헌을 갱신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봉헌에 사용할 말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 “오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저는 온전히 주님의 것이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옵니다.”(제233항)

 

 

성모님께 다가가는 것이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비결

 

레지오의 봉헌문은 성 루도비코의 봉헌문에서 “주님의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봉헌의 대상을 예수님이 아니라 성모님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성모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비유하자면 병사가 국가에 충성하기 위해 상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도 최종적으로는 동일한 예수님을 지향하지만, 예수님과 일치하기 위하여 먼저 성모님과 일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두 봉헌문에서 귀속의 대상을 나타내는 라틴어도 동일하게 “totus tuus(또뚜스 뚜우스)”, 즉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문맥에 맞추어서 각각 “주님의 것”과 “당신의 것”으로 달리 번역하였을 뿐입니다.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당시 38살로 폴란드 주교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에 주교품을 받을 때, 자신의 사목표어로 “totus tuus”라는 글을 선택하였고,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도 이 표어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황 문장에 성모님을 표시하는 ‘M’자를 십자가 문형 아래에 새겼습니다. 성인은 자신이 선택한 사목표어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저술한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 있는 글이며, 스스로 이 책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성인은 교황으로 선출되고 처음 조국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쳉스토호바성당에 모신 ‘검은 성모(Black Madonna)’ 성화상 앞에서 “totus tuus”를 수없이 반복하며 기도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봉헌으로 레지오 마리애가 모범적인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되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우리에게 친숙한 성인이 되었듯이, 단원들도 아치에스 행사에서 성모님과 온전히 일치하려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자신을 봉헌하시기 바랍니다.

 

성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부분의 폴란드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성모신심을 키워왔으며, 특히 9살에 어머니를 여읜 뒤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머니의 빈자리를 성모님의 사랑으로 채웠다고 합니다. 성인에게는 성모신심이 성모님의 모성적 사랑과 보호라는 모습으로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런데 청년기에 접어들어 사제의 길을 준비하면서 성모님께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일부러 성모님을 멀리하려고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읽은 다음에는 오히려 성모님께 다가가는 것이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비결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교본 첫머리에 수록되어 있는 성인의 말씀에는 성인의 이런 체험과 확신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성인은 오늘날 신앙의 위기를 성모신심의 저하와 관련시켜 설명하면서 성모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성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분명하게 선언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신앙실태 자료를 살펴보면 성인의 이런 설명이 더욱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근래 신자들의 신앙생활 저하와 레지오 마리애 활동의 부진이 나란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관성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단원들이 성모님께 좀 더 자신을 맡기고 레지오를 활성화함으로써 한국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사명의식에 자극이 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들의 봉헌은 성모님께서 먼저 보이신 봉헌의 모범을 본받는데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 탄생에 대한 천사의 소식을 들었을 때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fiat!)”하고 응답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처럼, 신자들도 성모님께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totus tuus)”라고 봉헌함으로써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됩니다. 그리고 성모님이 하느님 말씀에 온전히 자신을 맡김으로써 예수님을 잉태하신 것처럼 단원들도 모든 것을 성모님께 맡김으로써 성모님의 정신과 사랑에 일치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정신과 사랑으로 예수님을 따른다면 성모님처럼 십자가 아래까지 가서 머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모님께서는 온전히 예수님의 여정에 함께 하심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한 제자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 안에서 성모님의 역할은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fiat!)”는 봉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항상 성모님께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totus tuus)”라고 봉헌하며 성모님께 봉사함으로써 성모님의 정신과 사랑을 온 세상에 가득 채워야 합니다. 성모님의 모성애로 신자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이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손발이 되어주는 단원들을 통해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고, 또한 그런 단원들을 보호해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장시켜주십니다.

 

한국 교회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고, 한국 교회와 더불어 분단된 한국의 상황에도 관심과 기도를 아끼지 않았던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주 성모님께 “totus tuus(또뚜스 뚜우스)” 기도를 드린 것처럼, 레지오 단원들도 성모님 앞에 설 때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성모님의 정신과 사랑으로 주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는 용감한 군사가 되기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3월호, 권용오 마티아 신부(안동교구 상주 가르멜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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