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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그리스도교 철학자: 캔터베리의 대주교 성 안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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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7 ㅣ No.164

[그리스도교 철학자] 캔터베리의 대주교 성 안셀모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안셀모는 1033/4년경 이탈리아의 아오스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열다섯 살에 수도회 입회를 꿈꾸었지만 정치가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란프랑쿠스(1010-1088년?)라는 위대한 스승의 명성을 듣기 전까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수학합니다.

1060년 그는 란프랑쿠스가 가르치는 수도원학교가 있던 노르망디 지방의 벡 수도원(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합니다. 그리고 신학교수가 되고, 란프랑쿠스의 후계자로 수도원학교 학장으로 일합니다.

그 뒤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고, 다시 란프랑쿠스를 이어 영국의 남부도시 캔터베리의 대주교(재임기간 1093-1109년)가 되어 일하다 1109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성 안셀모는 명성에 걸맞게 많은 철학적, 신학적 작품을 남겼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노로기온(Monologion)」과 「프로슬로기온(Proslogion)」을 비롯하여, 「프로슬로기온」의 존재론적 신(神) 존재 증명에 대한 변론과 더불어 내용을 보충하고 있는 「가우닐로에 대한 변론(Liber apologeticus contra Gaunilonem)」, 「문법에 대하여(de grammatico)」,「악의 원천에 대하여(de casu diaboli)」, 그리고 「삼위일체 신앙과 말씀의 육화에 대하여(de fide trinitatis et incarnatione verbi)」 등 다수가 있습니다.


신앙과 이성

당시 신앙보다는 이성을 강조하는 사조가 일부 있었는데, 베렌가리우스(1000-1088년?) 같은 학자들이 그런 부류였습니다. 그는 변증법을 통한 진리 추구에서 인간의 이성은 최상의 지침이자 위대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반하여 성 안셀모는 변증법적인 유용성을 거부하기보다는, 변증법의 단면적이고 분별없는 사용을 거부하면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전통에 입각하여, 변증법의 본래 용도에 따르는 사용과 더불어 신앙과의 균형감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곧 이성보다는 신앙에 우선성을 두고 신앙과 이성의 두 가지 지식의 원천을 진리 추구에서 조화시키려 노력했던 신학자였습니다.

성 안셀모는 「프로슬로기온」의 서문에서 후대에 아주 빈번히 인용되어 스콜라철학의 근간이 되어버린, “이성에 따라 추구하는 신앙”과 “나는 이해하려고 믿는다.”라는 중요한 명제를 제시합니다. 성 안셀모가 이 두 문장을 통해서 제시하고자 하는 신앙은, 모든 신비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세에서 늘 신비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신앙을 인정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에 따르는 필연적인 이유를 제공하는 정신의 힘을 확신했습니다. 곧 ‘삼위일체’나 ‘육화’ 신앙의 신비 앞에 우리의 이성은 그 필연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그는 계시된 진리 앞에 겸손한 태도와 더불어 그 계시된 진리를 증명하는 이성의 능력에 드러나는 무제한적 낙관론을 잘 결합하려 했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에 대하여

성 안셀모의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입니다. 그가 「프로슬로기온」 2-3장에서 제안하고 있는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은 오늘날에도 분석철학자들에 의해서 여전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성 안셀모가 전개하는 증명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무엇인가 반드시 생각하고 있다는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라는 단어로 무엇인가를 이해할 때, 이해하고 있는 것이 그의 지성 안에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유전개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의 증명에 사용된 전제는, ① 우리가 하느님을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무엇”으로 믿어왔다는 것에 놓입니다.

그리고 성 안셀모는 이제 ② 심지어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도 만일 그가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이라는 ‘정의’를 들으면, 그 개념을 이해한다는 사실에서 ③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이 지성 안에 존재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여기까지 세 번의 단계를 거쳐 성 안셀모는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인 하느님이 우리의 이성에 존재한다는 근거를 지우고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하느님이 실재로도 존재해야만 한다고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곧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이 실재가 아닌 이성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이는 더 이상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에만 있는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에 실재적인 존재를 덧붙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앞선 전제(하느님은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이다.)에 위배되기에 “그것보다 더 큰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인 하느님은 우리의 이성에만이 아니라, 실재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의 의의

여러분들이 읽기에도 그러실지 모르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 역시 성 안셀모의 ‘존재론적인 신 존재 증명’에 관한 논거를 철학적 말장난 같다고 느꼈습니다. 성 안셀모 역시 자신의 논거를 흥미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했지만 객관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논증이라고까지 본 것은 아니었기에, 여기서는 이러한 반대 논의들은 차치하고, 이 논증이 중세에 아주 잘 알려졌었다는 사실과 하나의 논증으로 분명 상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성 안셀모의 논증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물론 후에 중세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성 안셀모의 ‘존재론적인 신 존재 증명’을 하느님에 대한 논증을 단순히 ‘사유’에서 출발하여 ‘존재’를 이끌어내려 했다고 반박하지만, 세간의 비판과 달리, 성 안셀모가 자신의 증명을 단순한 사유의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분명 성 안셀모는 하느님의 실재의 체험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출발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 안셀모가 ‘실재하는 사물들의 존재’가 단순한 ‘가능성이나 사유된 것’보다는 더 크다고 생각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성 안셀모는 스스로 자신의 정의에서 이미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유가 온전히 그분을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무한한 하느님의 존재를 개념화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쩌면 그의 신 존재에 대한 논증은 우리의 이성의 한계에 대한 신앙적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허석훈 루카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내고 지금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3년 5월호, 허석훈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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