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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2012 세계 협동조합의 해 (하) 한국교회 협동조합운동 과제 및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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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15 ㅣ No.604

[2012 세계 협동조합의 해] (하) 한국교회 협동조합운동 과제 및 전망

양극화 극복, 사회통합 이룰 대안으로 떠올라


- 유기농 화목공동체에 들른 조합원들이 유기농산물로 기르는 소에 대한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


2005년, 서울 북부 저소득층 밀집지역 삼양동에 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재활용협동조합 '살림'으로, 1998년 9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자 설립된 삼양동선교본당, 강북 평화의 집, 솔샘일터 등과 '솔샘공동체'를 이뤘다.

처음엔 조촐했다. 주민 서너 명이 조합원으로 연대, 중고의류와 가구, 가전, 생활용품 등을 수거ㆍ수리ㆍ판매하는 재활용협동조합으로 출발했다. 주민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도 숨어 있었다. '바울로계획'에 참여한 수도자들의 참여도 큰 힘이 됐다. 초창기만 해도 협동조합에 대한 인근 본당의 관심과 후원으로 '질 좋은' 중고물품이 많이 들어와 재활용품 수거판매사업은 활성화되는 듯했다. 매장도 1곳에서 3곳으로 늘어났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참여한 조합원들의 자발적 의지나 교육이 부족했다. 갈등이나 욕심 조절도 어려움이었다. 재정적으로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만날 적자였다. 결국은 시작된 지 3년 만인 2008년 2월에 협동조합을 접고 강북 평화의 집과 함께하는 생산공동체로 존속키로 했다. 강북 평화의 집과 함께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요즘엔 흑자로 돌아서서 다시 협동조합을 추진하려 한다.
 
1999년 5월에 출범, 2003년 9월 생산협동조합이 됐던 '하늘자리김치'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본당(하늘자리공동체)과 함께했던 김치 생협은 준비 부족과 위생 문제로 2006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조합원끼리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과 교육, 전반적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박순석(요한 세례자) 명례방협동조합 감사는 "주민들에 대한 교육도, 설립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운영되면서 갖가지 시행착오가 생겨나고 결국엔 협동조합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지만 협동조합은 본당 및 지역별로 연계, 가난한 이들과 중산층이 빈부 간 벽을 허물고 함께 연대하는 모델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이처럼 교회에선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외환, 금융위기와 함께 비롯된 새로운 빈곤 탈출의 길로서, 새로운 출애굽으로서 협동조합이 대안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1956년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 소도시 몬드라곤에서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1915~1976) 신부가 주도, 노동자 23명과 함께 설립한 첫 번째 생산자 협동조합 '울고'를 시작으로 50여 년 만에 세계적 협동조합 복합체로 성장한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는 그 대표적 사례다.
 
지금은 100개가 넘는 조합과 지원기관에 2만 명 이상이 일하고 있고, 해외공장도 38개나 두고 있지만 여전히 협동조합이다. 참여경영시스템과 경영정보 공개, 일정 지분의 노동자 배분, 일부 이익 사회환원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노동자가 경영하는 생산자협동조합으로 우뚝 섰다. 그야말로 '몬드라곤의 기적'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다.
 
새로 명례방협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이 신입 조합원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도 이처럼 크게 성장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1943년 기술전문학교를 설립해 '사람을 키우는' 데만 13년이 걸렸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협동조합에서 일할 인재를 길러내고자 대학을 세워 지금도 4000여 명을 교육하고 있다. 또 '협동조합기본법'을 발의, 스페인 의회에서 통과되는 데도 12년이 걸렸다.
 
유럽의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인 4500개 매장을 갖고 있는 영국의 단위생협인 코퍼라티브 그룹, 720만 명 국민 중 200만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소매시장 점유율이 20%에 육박하는 스위스의 생협인 미그로스는 협동조합운동이 서구 일상 안에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지난달 29일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협동조합 설립은 탄력을 받게 됐다. 따라서 올 12월부터는 5명만 모여도 단위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고, 금융ㆍ신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부문에서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졌다.
 
또 취약계층 고용 등 사회적 목적 실현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협동조합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정부도 협동조합에 대한 세제 지원과 지정기부금 단체 등록 지원방안을 추진하는 등 다방면에서 지원할 방침이기에 협동조합 설립이 붐을 이룰 전망이어서 교회도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크다.

향후 가장 큰 과제는 역설적으로 협동조합 기본법에 따른 법적 요건만 갖추면 '마음대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조와 자기책임, 민주, 평등, 형평, 연대 등 협동조합의 6대 가치나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를 비롯해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ㆍ훈련ㆍ정보제공, 협동조합 간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협동조합의 7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협동조합이라는 공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함께 협동조합 기본법의 제정취지나 의미, 정신을 살리는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이 절실해졌다.
 
박재천(요한 세례자) 논골신협 감사는 "협동조합기본법은 우리 사회나 교회에 '협동 운동'을 뿌리내리는 기초법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치고 "협동조합은 지금까지 이익집단으로 치부돼 왔지만 사실 인류 역사 경제 시스템에서 중요한 운동적 가치를 지니는 만큼 협동조합이 사회통합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경제적 대안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친정 같은' 협동조합 꿈꾸는 박명희 명례방협동조합 이사장


명례방협동조합 박명희(율리아나, 50) 이사장은 "명례방협동조합은 신협이면서도 신협이 아니다"고 말문을 뗐다. 금융 협동조합이긴 하지만, 신협중앙회에 가입하지 않고 조합원과의 믿음과 신뢰,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와 생산협동조합 대출에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달 총회 승인을 앞둔 새 정관 정신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명시했다고 한다.
 
물론 자본금이나 규모 면에선 일반 신협이나 금융기관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이 온전히 해방되는 사귐과 섬김,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려하기에 그 성과는 일반금융기관에 견줘 더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최근엔 파산 신청을 받은 사람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도 박 이사장은 "2013년에 설립 20주년을 맞지만 교회 정신이나 조합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며 "그래서 일반 신협 정관에 유사하게 만들어진 정관을 우리 협동조합만의 특성을 반영하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대라는 교회정신을 담아 새롭게 정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명례방협동조합은 가난한 이들의 경제적 상황을 개선하고 가톨릭 사회교리를 실천하는 '평신도 사도직 공동체'를 지향한다"면서 동시에 "'친정'같은 협동조합을 꿈꾸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올해 설립 19주년을 맞는 명례방협동조합은 6억 4064만여 원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개인 무담보 신용대출, 생산협동조합 솔샘일터ㆍ화목공동체와 생산공동체 살림 등에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대교구 선교본당과 평화의 집 등에 2억 8000여만 원의 기금을 지원하고 있고, 가난한 청소년들에 대한 장학기금도 33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명례방협동조합만의 체계나 프로그램 개발, 시스템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993년 설립 당시부터 달마다 5만 원씩 이체, 200만 원의 출자금을 냈다고 털어놓은 박 이사장은 "처음엔 가난한 이웃에 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분들에게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명례방협동조합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설립정신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경영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전력을 다 쏟겠다"고 다짐했다.
 
[평화신문, 2012년 1월 15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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