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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교황청은 수교가 될 것인가? - 중국의 천자제도와 그리스도교 문화 구조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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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1-12 ㅣ No.230

중국과 교황청은 수교가 될 것인가? - 중국의 천자제도와 그리스도교 문화 구조의 충돌



교황청과 중국의 수교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의 5세대 새 지도부가 구성되었는데 그 가능성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물어 오지만 중국의 정치와 체제를 연구하고 지켜본 결과 나는 한마디로 대답한다. 안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와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세계가 기대하는 바는 중국이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중국이 종교에 대한 자유를 인정하고 교황청과 국교관계를 수립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하다. 국교가 수립되면 13억 인구를 대상으로 전교하려 지금부터 미리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바심마저 내비치면서 한국의 많은 수녀회에서는 회원들을 중국으로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그것을 바라고 기대한다고 해서 실상을 파악하는 데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중국과 교황청의 수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근거해서 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우선 중국의 사회와 정치체제를 들여다보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진시황 이래 중국은 천자제도를 도입하였다.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약자로서 곧 ‘우주의 주재자이자 천상의 통치자인 천제(天帝)의 아들’을 칭하는 말이다. 황제가 곧 천자라는 정교일치의 관념은 중국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중국의 역대 황제는 신의 대리자로서 최고의 사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이른바 신권(神權 theocracy) 정치체제를 채택하였다. 심지어 황제 중심의 봉건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한 지금의 시점에서도 중국 통치자는 이 전통적인 체제와 관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황제가 공산당이라는 말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중국 정치의 실체 파악은 이러한 천자 개념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에서 공산당은 실체이고 현실이다. 평상시에는 그 실체가 있는지 조차 잊고 살지만 그 옆을 조금 스치기만 해도 그 괴물은 금세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 중국에 살면서 공산당이라는 실체를 빼놓고 말한다면 그것은 뱀의 비늘만 가지고 그 뱀의 크기를 가늠해 보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공산당은 무엇인가? 그 실체를 파악하려고 꼬리를 잡아끌면 그 머리는 중국의 전통 황제들이 지닌 천자의식에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천자 의식은 천명(天命) 사상에서 유래한다. 천자의 통치권은 하늘이 명한 것이니 신성불가침한 것이며 백성들과 신하들은 이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시대가 변하였지만 중국의 천자 의식은 변하지 않았다. 봉건주의가 막을 내리고 공화국이라는 근대제도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통치자들은 과거 천자 의식이 지닌 권위와 힘, 그 매력을 포기할 수 없어 당(黨)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당은 무엇이고, 또 당은 과연 누구인가? 본래 그것은 하나의 제도일 뿐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통치자들은 교묘한 수를 썼다. 통치자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서 공격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당이라는 가상의 인격체를 만들어 하수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중국 통치자는 당에게 페르소나(persona, 위격)를 부여했다. 공산당이라는 허구의 조직체에 페르소나를 부여해서 천자와 동급의 신성성을 지닌 권력체로 탄생시킨 것이다. 당은 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절대자 그 자체이다. 당은 권력자의 인격을 대신해서 뒤집어 쓴 탈바가지 같은 존재이며, 권력이 이데올로기화한 정권의 실체이다. 당은 신기루 같아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파악되지 않는 조직체이다. 노출은 되지 않으면서 그 존재와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지국장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신(神)이라고 말한다. 공산당은 모든 것을 당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당을 위해 충성하고,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라고 독려한다. 당을 위해 노래하고, 당을 위해 글을 쓰고, 당을 위해 말을 하라고 한다. 모든 것은 당에게 구심점이 맞춰져야 한다. 누구든지 이 당을 건드리면 통치자는 바로 이 당이라는 실체로 응징을 가해 온다. 중국 사회 안에서 당에 맞서는 실체는 없다. 당은 바로 통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당의 실체를 종교의 공식에 대입해 보면 바로 신이요, 절대자라는 말이다. 그러니 중국이라는 영토 안에 두 개의 절대자가 군림할 수 없는 것이며, 공산당은 그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티칸과 교황이 종교의 영적인 권리를 중국 안에서 주장하려 들면 중국 통치자는 곧바로 강력히 거부의 의사를 내보이는 것이다.

천자는 정치적 용어이면서 종교적 용어이기도 하다. 하늘의 아들이니 북경의 천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권리를 지닌 지상의 유일한 존재자로서 정교의 수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정교일치지 엄밀한 표현은 종교가 정치에 예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중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헤게모니)은 언제나 천자에게 주어져 있고, 약간의 누수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인 천하의 통치체제에서만 가능한 사고방식이다. 만일 종교 지도자가 사회의 어느 특정 그룹을 주도하려 하면 이는 바로 일인 통치자에 대한 반항이나 반역으로 이해되었다. 주교서품을 교황청이 아닌 종교국에서 주도한 것은, 다시 말해 통치자가 주도하고자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통치자의 야욕인 완전한 권력 장악인 것이다. 신앙의 영역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통치자의 손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이는 천자에 대한 직접적 도전으로 이해한다. 교황의 주교 서임권을 내정 간섭이라고 말하는 중국 지도자의 발상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명실공이 중국의 불교로 각인 받고 있다. 불교가 중국의 봉건제도와 황제 중심주의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중국의 정교관계를 이해하고 수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불교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불교는 초기 전래시기에 중국 제왕의 지위와 중국 전통의 통치체제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사문불경왕자논쟁(沙門不敬王者論爭, 승려는 제왕에게 존경의 예를 바치지 아니한다)에 휘말리게 되어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불교는 중국의 국정과 민정을 파악하면서 통치자들의 정책에 협조하게 되었고, 이로써 정교간의 공생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리하여 국태민안을 지향하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농도 짙게 표출하면서 역대 제왕들의 보호와 지원 속에 국가 종교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천주교는 중국과 재회하는 명 말부터 이미 유럽 식민주의의 열강들과 한 무리라는 낙인이 찍혔고, 거기에 중국 사대부들의 척외관념(斥外觀念)과 우환의식(憂患意識)이 가미되어 정교관계는 대립과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다. 마태오 리치 사후에 시작된 남경박해(1616~1623년)를 시작으로 의화단사건(1900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박해는 사실 정교의 긴장과 대립의 부산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외래 종교가 중국 사회 안에서 겪게 되는 긴장과 대립의 핵심은 바로 정교의 관계에 있고, 정교 간 충돌의 핵심은 바로 사회 주도권의 쟁취에 있다. 중국의 정치 지상주의의 근원은 유교의 전통에서 비롯된 천자 개념에 있고 중국의 역대 제왕들은 바로 이 천자의 신분으로서 중국 사회 안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기에 다른 어떤 힘, 그것이 종교적 신권(神權)일지라도 이 황권(皇權)을 넘어설 수 없었다. 이런 전통은 공화국이 성립된 현재의 체제 안에서도 변함이 없다. 통치자는 헤게모니의 누수를 가장 두려워한다. 경제는 언제나 정치를 위해 봉사해 왔고 공존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유일하게 정치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이지만 중국에서 종교는 언제나 통치자의 수중에 있어 왔다. 종교가 가끔 그 통제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태평천국의 난, 백련교도의 난, 파룬궁 등등) 언제나 통치자에 의해 제지당했다. 지금의 공산당 체계 역시 같은 수준에서 종교를 통할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영토 안에서는 모든 종교나 문화, 그리고 경제마저도 중국의 전통 정치체제 속에 예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티칸과 중국의 문제는 신(神) 지상주의와 국가 지상주의의 충돌이요, 교황과 중국 황제의 힘겨루기이며, 유럽 중심주의와 중화 중심주의의 몸싸움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바티칸과 중국의 모든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천자 의식은 강력한 중화 중심주의에 기인하는 사고형태이다. 중국의 영토에서는 중화 통치자의 권위 외에 그 어떤 존재의 정통성과 권위도 인정되지 않는데, 종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교황청의 권위와 정통성, 역사성을 인정하자면 자신들의 천자 의식에 위배되고, 인정하지 않으려니 교황청과 공산당은 수교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그토록 주교 선출과 서품 방식을 자선자성(自選自聖, 스스로 선출하고 독자적으로 축성한다) 방식으로 고집하는 이유도 그 저변에 이런 천자 의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자 의식에서 나온 중국 통치자의 종교관은 자가당착이요,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중국의 정치 체제와 문화가 민주적으로 변하기 전에는 절대로 교황청과 수교를 맺을 수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과 로마 가톨릭의 재회를 논한다 하더라도 이 문제는 다시 충돌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이는 21세기 풀어야 할 중국과 바티칸의 관계에서 최대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영토 안에서 이 공산당의 실체와 통치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어떠한 종교도 중국 사회에서 살아날 수 없으며, 복음 전달은 더 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로마 가톨릭교회가 중국 안에서 직면한 딜레마이자 풀어야 할 과제이다.

[땅끝까지 제76호, 2013년 7+8월호, 김병수 대건 안드레아 신부(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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