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부족한 이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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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08 ㅣ No.398

[레지오 영성] 부족한 이의 넋두리…



金樽美酒는 千人血이요
玉盤佳肴는 萬姓膏라.
燭淚落時에 民淚落이요
歌聲高處에 怨聲高라.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맛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춘향전에 나오는 ‘어사가’입니다. 언젠가 춘향전을 보고서 적어 두었죠. 그리고 가끔씩 이글을 읽고 생각에 잠깁니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데…’하면서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살과 피를 뜯어 먹으면서, 그래서 사람들에게 피눈물 흘리게 만들면서 자신이 마치 정의를 실천한 것처럼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이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면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난 최선을 선택했고 이것이 가장 적절하다 생각하여 행동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그냥 그렇게 무뎌진 마음으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어떤 이들을 가난한 이들로 선택하실까

세상에는 정의롭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말이 옳다고 떠들어대는 듯합니다. 뭐 사람이 보통 그렇죠… 자기가 가장 부족하다 하면서도 사실 자신의 생각이 가장 맞는 듯 하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가장 옳은 듯 하고. 오죽하면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주장하면서 이것저것들을 들먹인다는 것이죠. 자녀를 위해서, 학생들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기타 등등… 하지만 결국엔 자기중심에 푹 빠진 아집이면서….

자녀를 위한답시고 한 행동이 자녀의 인생을 망치고, 학생들을 위한 가르침이 자기 밥그릇 챙기는 이기적인 교육으로 인도 되고, 국민을 위한다 하면서 국민들의 처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나라를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자신의 주머니 챙기는 꼴로 드러나고, 세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주님을 따르고 싶어 하던 날부터 늘 이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선적으로 선택한 가난한 이들. 과연 오늘날에는 누구를 두고 주님께서 우선적으로 선택한 가난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이들. 과연 오늘날에는 누구를 두고 그런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어떤 이들을 가난한 이들로 보시고 우선적으로 선택하실까? 많은 이들이 저마다 의인이라고 떠들어대는 세상 속에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 또한 의인을 가장한 악인일 수 있음을 기억하며.


스스로 비우고, 빈곳을 주님으로 채울 수 있기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43)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떤 이들은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저는 다른 이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 모릅니다.’라고 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주님, 그 죄인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모르고 있네요.’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 구절뿐만 아니라 같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 다름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이라 생각하며 죄인에 관한 내용들을 자신과 연결하여서, 어떤 이들은 자신이 의인이라 생각하며 의인에 관한 내용들을 자신과 연결하여서.

그런데 자신을 비우고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하지 않고 자신으로 가득 채워놓고 자신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때 이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을 한 없이 죄인으로 만들어 버려 주님의 사랑을 가려버리고, 어떤 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의인이 되어 내가 의인이기에 너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식으로 변해버리기도 합니다.

사순 기간을 보내며 새삼스레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제 자신의 생각과 사회 통념에 사로 잡혀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게 살지 않도록 스스로 비우며 깨어있게 하시고 그 빈곳에 주님으로 채울 수 있는 은총 허락하소서…’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4월호, 조영식 사도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양천성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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