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영성ㅣ기도ㅣ신앙

[신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해하기2: 교회의 신비 - 교회의 자기이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15 ㅣ No.397

[신앙의 해 특집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해하기] (2) 교회의 신비 - 교회의 자기이해


지난 10월 11일부터 시작된 ‘신앙의 해’를 맞아 우리는 지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또 신앙의 해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연관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지난 호 끝에 강조했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라고 예수님께 묻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라고 대답하신 예수님의 단순한 말씀처럼 우리는 ‘주어진 계시 진리’를 믿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번 호에서는 믿기 위한 노력의 한 방법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교회의 자기 이해’에 대해 먼저 알아보려고 한다.

과연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의 신앙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삶의 자리”인 교회는 과연 무엇인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그리고 …… !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들으면 먼저 예전에 보았던 신암동 예배당 벽 어딘가에 쓰여 있었던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실제로 우리에게 누군가가 교회가 무엇인지, 우리가 속해 있는 천주교회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것에 대해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의 대답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평범한 신자의 대답 ‘우리가 구원 받는 장소 또는 모임’ 아님 초등학생의 대답 ‘신부님이 사는 집’ 등 많은 이들이 자신이 체험하고, 들은 바에 따라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수많은 대답이 있어왔다. 특별히 개신교와의 분열이 있고 나서부터 더욱더 어느 교회가 ‘참된 교회’인지에 대해 대답을 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대답보다 더 걸작인 것은 없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교회헌장 1)

‘이 대답이 왜 걸작인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이라도 신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어 생각해 본다면 가장 명료하고 쉬운 대답은 바로 이것이다. ‘성사(Sacramentum)’라는 말은 원래 ‘신비(Mysterion)’라는 희랍어의 라틴어 번역이다. 그리고 이 ‘신비(Mysterion)’라는 말은 성경 안에서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구원의 경륜(하느님의 마음속에 있는 계획)’이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드러난 구원의 업적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앞의 명제에서 성사라는 말을 신비로 바꾸어 본다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와 같다.” 다시 말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드러난) 하느님 구원경륜(계획: 오이코노미아, oikonomia)과 같다.”로 변화된다. 이 말의 바탕에는 바로 교회라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하기 이전에 주어져 있는 하느님의 구원 섭리, 바로 ‘예수님을 통해 주어진 구원 은총 내지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예수님이 없다면, 교회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성자 예수님의 파견과 함께 함’으로 세상에 드러난 교회도 신비인 하느님 구원 계획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역사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말하면서 형태와 역할과 같은 외연적인 사실들을 통해서 교회를 규명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교회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라는 근원적인 부분으로부터 교회를 보려고 한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의록 등을 살펴보면 교회 내부에서부터 ‘교회가 무엇으로 세상에 드러나고(세상과 투쟁하는 교회), 교회가 무엇으로 구성된다.(법적인 교계제도)’는 것에서 교회를 바라보고자 하는 경향들도 있었다. (이런 경향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가령 ‘부모님’을 부모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나에게 무엇을 해준 사람인가?’라는 것에서 찾는 경향이 그것이다. 이는 부모가 자식을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교회는 주어진 교회’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지막 결정은 만사를 제쳐 놓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라는 그 근원에서부터 교회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를 그 근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이 시각은 교회가 서 있는 세상,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교회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부정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펼치시는 장소가 바로 ‘이 세상’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그동안 가르쳐야 하고 방어해야 하고 꾸짖어야 하고 죄악시만 했던 심지어 삼구(마귀, 세속, 육신) 가운데 하나로 불리던 ‘세상’이 오히려 교회가 구원을 이루는 장소임을 교회는 다시 자각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시고, 자신이 누리고 계신 ‘성부와 성령과의 친교(Communio)’를 우리와도 나누시고자 하셨듯이 그 신비로 주어진 교회와 세상의 만남도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비, 성사인 교회의 존재 속성은 그래서 친교에로의 봉사이다. 세상 마지막 날까지 교회도 예수님께서 누리시던 친교에 참여하기 위해,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꾸준히 자신을 희생하고 쇄신하면서 결국 세상에 그 친교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봉사하는 존재가 교회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신비에 이어 공의회가 말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부터 모인 백성’(교회헌장 4)이 교회라는 말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신 그분은 신비인 교회를 통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고 계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을 세부적으로 모두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간략하게 교회의 자기 이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하느님 구원 경륜 안에서 예수님께서 그러하듯, 예수님에 의해 불린 교회도 ‘구원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신비이고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무슨 일을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구원의 시대에 주어진 선물과 같은 것이기에 먼저 우리는 감사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믿어야 한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그분을 믿는다면…. (물론 교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 항상 쇄신되고 깨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음 호에서는 우리가 살펴본 교회의 자기 이해에 이어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느님 백성과 친교’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월간빛, 2012년 12월호, 최석환 요셉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교수)]


1,14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