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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이책 읽기: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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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7 ㅣ No.166

[김계선 수녀의 종이책 읽기]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벌써 여름의 기운이 나무들을 휘감고 있는데 그 푸름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겨울이 온 듯 꿈처럼 눈 덮인 팔공산과 비슬산을 보고 있자니 올 봄 유난히 봄을 보내기 싫어 떨어지는 꽃잎도 아쉬워하던 한 사람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매화향기에 취할 무렵이면 조선시대의 화가 고담 전기의 “매화초옥도” 속의 벗을 찾아가는 선비인양 그렇게 눈과 낙화 분분한 그리움에 젖어 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책을 손에 잡는다.

이번에 나를 책속의 만남으로 이끄는 책은 그림이 있는 에세이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이다. 사람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사람을 키우며,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더니, 오호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 있었다. 김천 평화동 출신의 김연수 소설가는 성당마당에서 큰 나무를 배경으로 전쟁놀이 하다 잠든 이야기를 어찌나 맛깔스럽게 써놓았는지 최근에 평화동성당을 다녀와서 그런지 몰라도 책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겪었던 이야기여서 더 공감을 하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성당마당에 있던 큰 버드나무에서 느꼈던 평화로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누구에게든 내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사람일 수 있었다면 그건 평화동성당의 버드나무가지 덕분이리라.” 아, 사랑스런 그 버드나무가 아직도 건재한지 확인하지 못했던 무심함이 이리 안타까울 수 있을까.

남아프리카의 희망봉!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의 동쪽 끝 나라까지 온 선교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희망봉에서 느꼈던 단상들은 얼마나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주든지 내심 고맙기까지 하였다. ‘희망’은 그처럼 우리 시대의 아픔과 상실들을 보듬어 안을 단어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엄청난 고통과 절망이 지나간 상태를 뜻하는지도 모른다며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고통과 절망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더 밝아지고 환해진다며, 참으로 넘기 힘든 봉우리를 ‘희망봉’이라고 옛사람들이 부른 이유를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에서 찾는다.

“감옥에 다녀온 뒤로는 원할 때 산책할 수 있는 일, 가게에 가는 일, 신문을 사는 일, 말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일 등 어떤 작은 일도 고맙게 생각했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단순한 일이었다.” 사소한 일상의 일들이 고맙게 느껴질 때 삶이 늘 감사로 채워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괜히 웃어주고 싶은 그 쉽지 않은 길을 만델라는 감옥에서 체험한 것이고 우리는 책을 통해 발견하니 그 얼마나 공짜의 인생인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선현들은 말했다. 책은 지혜의 샘이다. 길과 지혜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소설가 김연수는 신앙과 삶과 역사를 어떻게 하면 이어줄까 하고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 오정희는 행복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루면서 만났던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고단함을 풀어놓게 하고 나누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가 쓴 글에서 금아 피천득 선생은 봄이 마흔 살을 넘긴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이 기적이라며 거칠고 무디어진 마음의 감각을 신선하고 경이롭고 따뜻하게 열어주는 봄, 새 생명의 고마움을 기도라는 주제로 적어 내려간다.

소설가 공선옥은 특유의 수더분한 필체로 세상의 부조리함과 이 부조리함에 젖어 냉정하고 차갑게 변한 인간사를 놓치지 않고 비판적 관점으로 적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경외심과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세상을 살리는 것임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그러면서 남의 고통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건넨다. 아름다운 풍경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라고 그 자리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이 고등학교 졸업식 때 받은 명함 한 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며 우리를 그 시절로 들어가게 한다. 대학도 떨어지고 희망도 없어지고 선생님에 대한 미움이 가득해서 선생님의 오토바이에 본드 칠을 하고 졸업식장에 들어갔는데 그 선생님이 유난히 말썽꾼 제자들에게 명함을 주시며 무슨 일이 생기면 30분 이내에 달려가겠다고 하셔서 본드를 지우면서 사랑의 눈물을 흘렸던 감동에로 초대하고 있다.

소설가 이명랑의 글은 사람 사는 향기를 잔뜩 풍기면서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맛깔스러운지 저런 이웃과 함께 살아보고 싶다고 느낄 정도이다.

시인 조창환은 시인답게 죽음과 삶의 문제를 화두로 그리움과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회고는 우리를 다시 그분 곁으로, 그분 마음에로 모이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소설가 한수산은 여행과 만남에 대해 아름다운 필체로 다가온다. 만남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 서로의 영혼이 얽히는 순간과 순간의 고리들이라고 여러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산에 가면 여러 나무들이 어우러져 각기 자기만의 개성과 아름다움으로 도저히 치우침을 가지지 못하게 하듯이, 이 책에 있는 작가들의 36편의 글들은 어느 한 편도 더도 덜도 없이 그림과 어울림이 아름답다. 여섯 명의 소설가, 그리고 한 명의 시인이 쓴 글을 예술로 소통하는 메시지로 세상에 꿈을 건네며, 자연과 예술의 융합을 실천하고 있는 이순형 화가가 설렘이 있게 책에 담고 있어 읽는 재미만 아니라 보는 재미도 더하고 있다.

책은 이처럼 쉽게 지혜를 만나서 고개를 주억거리게도 하고 밑줄도 긋고 싶고 다시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또한 30년 동안 대구의 신앙인들과 함께 걸어온 「빛」잡지는 얼마나 많은 길과 지혜를 건네고 빛을 비추었을까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숭고한 동행이 내내 주님께 가는 길에 빛이 되어주길 희망하며 축하와 감사를 드리는 마음이다.(*본문그림 : 이순형 화가)

[월간빛, 2013년 5월호,
김계선(에반젤리나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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