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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착한 목자 곁을 지킨 아름다운 양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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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7 ㅣ No.418

[레지오 영성] 착한 목자 곁을 지킨 아름다운 양떼들!

 

 

1784년에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형성되자마자, 천주교 신자들은 수차례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1791년에는 전라도 진산 지역에서 조상 제사와 관련하여 발생한 천주교 박해로 윤지충과 권상연은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며 순교합니다. 그 후 계속되는 박해 중에도 천주교 신자들은 북경 교구와 사제 파견에 대한 꾸준한 노력으로 조선에 최초로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합니다. 

 

하지만 주문모 신부의 입국 사실이 탄로 나고, 그에 체포령이 떨어지지만, 착한 목자 주문모 신부를 살리기 위해 아름다운 양떼인 윤유일, 지황, 최인길이 목자를 대신하여 순교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주문모 신부는 6년 동안 동료 신자들과 함께 천주교 신앙 전파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1801년 박해로 주문모 신부는 수많은 동료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 관헌에 자수한 후 기꺼이 순교하게 됩니다. 

 

1801년 대박해로 천주교가 조선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지만, 박해가 잠잠해진 틈을 타서 다시금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교회 재건과 함께 성직자 영입 문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특히 정하상은 1816년 겨울부터 10여 년 동안 아홉 차례나 중국을 왕래하면서 성직자 파견을 요청합니다. 

 

이처럼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앙을 지켜온 조선 교회 신자들의 편지를 받은 교황청 포교성성(현재 인류복음화성)의 추기경들은 감동합니다. 그리하여 조선 교회를 북경교구에서 독립시킨 후, 대목구를 설치한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맡기게 됩니다. 이 당시 조선 교회 신자들이 보여준 천주교 신앙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교구 설립이라는 놀라운 일을 일구어 낸 것입니다. 

 

이후 교황청은 제1대 조선대목구장인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에 앞서 유방제(파치피코) 신부를 입국시켜, 주교의 입국을 준비시킵니다. 그리하여 유방제 신부는 1834년 1월3일에 정하상 등의 안내로 의주 부근의 국경 지대를 통과하여 조선 입국에 성공합니다. 이때 조선 내 천주교 신자들은 주문모 신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유방제 신부의 입국 사실을 감추었고, 그가 선교사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줍니다. 그리하여 그가 조선 교구를 떠날 때까지 조선 교회 신자들은 유방제 신부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외국 성직자 도운 조선 교회 신자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836년 1월15일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인 모방 신부가 입국을 합니다. 모방 신부가 3개월 만에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당시 조선의 언어, 기후, 지형, 행정체계, 왕실, 도로, 건축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모방 신부가 조선을 잘 이해하고, 선교지 조선을 올바로 인식했다면, 이것은 곧 모방 신부를 이끌어 준 조선 교회 신자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후 유방제 신부는 조선인 세 명의 신학생을 데리고 마카오로 떠나는데 여기에 성 정하상과 성 조신철이 함께 동행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인 세 명의 신학생을 유방제 신부에게 맡긴 후, 또 한 명의 선교사 샤스탕 신부를 데리고 1837년 1월15일에 조선에 안전하게 입국합니다. 그리고 조선에 입국한 샤스탕 신부가 조선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한양의 회장 집에 머무르게 배려합니다. 

 

사실 외국인이 조선인 집에 묵는다는 것은 그 당시 집 주인으로서는 죽음을 무릅쓴 결정입니다. 하지만 샤스탕 신부가 조선어를 잘 익혀 좋은 선교사가 될 수 있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랑곳하지 않은 분들이 이 당시 조선 교회 신자들이었습니다. 

 

이어서 1837년 12월31일에 조선 교회는 처음으로 제2대 조선대목구장인 앵베르 주교를 맞이하게 됩니다. 앵베르 주교가 조선에 입국한 후 3개월 동안 조선말을 배운 후 1838년 부활 대축일을 준비합니다. 이때 앵베르 주교는 300명 이상이나 되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거행합니다. 단지 3개월 만에 조선말로 고백성사를 주고, 성체성사를 집전할 수 있었던 앵베르 주교의 노력도 실로 대단하지만, 그를 숨겨 주고, 돌보았고, 조선어를 가르쳤으며, 조선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조선 교회 신자들의 노고 또한 대단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특히 앵베르 주교가 마카오 소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의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보낸 1839년 3월 0일자 서한에는 다음의 내용이 있습니다. 

 

“… 나는 날마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납니다. 3시에는 집안사람들을 불러 기도를 드리고, 3시 반에는 예비자가 있는 경우에는 성세를 주고 혹은 견진을 주는 것으로 성무의 집행이 시작됩니다. 그 다음에는 미사성제가 있고 감사의 기도가 따릅니다. 성사를 받은 교우 15명 내지 20명이 이렇게 해서 해 뜨기 전에 물러갈 수 있습니다. 낮 동안에는 대략 이만한 숫자가 하나씩 들어와서 고해성사를 받고 이튿날 새벽 성체를 영한 다음에야 나갑니다. 나는 한 집에서 이틀밖에 머물지 않으며 그리고 교우들을 집합시킵니다. 그리고는 해가 뜨기 전에 다른 집으로 옮겨갑니다.” 

 

서한을 통해 앵베르 주교의 선교와 성사 집행 사실을 접하면서 앵베르 주교가 얼마나 조선 교회 신자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박해자의 눈을 피해 밤을 이용하여 천주교 신앙을 지켜내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앵베르 주교만큼이나 더 놀라운 것은 앵베르 주교를 집에 모시던 신자들입니다. 앵베르 주교가 기도할 때 그 옆에서 함께 기도하는 신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벽 3시 반에 앵베르 주교에게 영세와 견진을 받는 신자들의 모습도 떠올립니다. 

 

또한 앵베르 주교와 미사를 드리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앵베르 주교가 있는 집에 찾아가 고해성사를 받고, 하루 온 종일을 기다린 후 다음 날 새벽녘에 앵베르 주교 미사에 참석한 15명 내지 20명의 신자들을 마음 또한 묵상해 봅니다. 이렇게 앵베르 주교와 미사를 마치고, 해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 분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상상해 봅니다. 

 

 

우리 시대 수많은 우상의 유혹은 새로운 박해 

 

조선 천주교회 역사 안에서 박해 시기 동안 포졸들에게 체포된 모든 선교사들은 한 사람도 배교하지 않고, 기꺼이 순교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조선 교회 신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관가에 자수한 주문모 신부부터,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그 밖의 모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체포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꺼이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증거한 후 순교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순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조선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들을 돌보아주며 그들 곁을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 준 당시 조선 교회 신자들의 사랑과 헌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말해서 착한 목자 곁을 지킨 아름다운 양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가 걸어간 순교의 길을 따라 아름다운 양떼들도 그들을 따라 기꺼이 순교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 시대는 수많은 우상숭배의 대상들이 우리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고, ‘출세’, ‘성공’, ‘돈’, ‘권력’ 등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교묘히 유혹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유혹으로 새로운 박해입니다. 그러므로 박해 시기 착한 목자와 아름다운 양떼의 그 마음을 새롭게 되새기며, 서로를 지켜주고, 돌보아줄 때입니다. 착한 목자와 아름다운 양떼의 사랑,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지켜내는 힘입니다.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9월호, 강석진 요셉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새남터성지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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