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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 산책: 철학과 신학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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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1-12 ㅣ No.148

[신승환 교수의 철학 산책] 철학과 신학의 관계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거에 묻고 대답하는 과정


인류의 시간은 선사시대와 역사 시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구분은 인간이 문자를 발명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 때에 따른 것이다. 문자로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는 것은 인간이 비로소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와 관계되는 모든 것을 해명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바꾸어 말해 역사는 인간이 자신이 있다는 사실과 살아가고 있음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명시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서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이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명시적인 행위를 우리는 철학이라고 말한다. 철학은 나의 존재뿐 아니라, 있는 것 전체 즉, 존재 자체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한다. 개별 사물에 대한 지식은 이러한 존재 이해에 근거해서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과정이 학문의 역사이다. 그래서 초기에 철학은 학문이란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역사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다양하게 철학을 정의했다. 어떤 사람은 철학이란 사물을 인식하는 지식의 기초에 관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또는 세계관이나 가치관이라고 말하거나, 우주와 자연, 신과 영혼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과학이 대상에 대한 객체적 지식을 추구한다면 그와 달리 철학은 그 지식의 근거와 본질을 묻는 학문이란 말이다. 현대에 와서는 철학을 언어의 본질을 분석하거나, 논리적 사고를 전개하는 학문이라고 좁혀서 말하기도 한다. 어떤 학자는 과학이 모든 지식을 제공하기에 철학이란 아예 끝장난 학문이거나, 아니면 문화와 언어에 대한 해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철학은 객체적 대상과 그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의미 문제에 관계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철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거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과정이며, 그러기에 다른 모든 학문과 달리 인간의 이해와 해석 그 자체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다. 철학은 신학과 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의 근거 자체에 대해 묻는 학문이며, 그러한 학문이 자리할 터전을 닦아가는 근본적 터전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학문이 그 대상인 존재자(있는 것)에 대해 질문한다면 철학은 있는 것 그 자체, 존재(있음)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자 한다. 그래서 개별 학문은 철학적 이해에 따라 자신의 학적 근거를 정립한다. 존재자에 관한 개별 학문은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신학은 하느님과 신앙에 관한 인간의 학적 해명이다. 그러기에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복음 선포가 신학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존재론적 근거와 철학적 해석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지상 예수의 복음 사건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그리스 교부들은 당시의 철학을 원용했던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1월 13일, 신승환 교수(가톨릭철학학회·가톨릭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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