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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한테서 찾아보는 어머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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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10 ㅣ No.400

[레지오 영성] 성모님한테서 찾아보는 어머니 사랑



오월은 왠지 정겹고 푸근하다. 가정의 달이라서 그렇고, 성모님의 달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가끔 본당에서 보면 어버이날에 성모상에도 카네이션이 꽂힐 때가 있다. 누군가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달아드리듯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우리 신앙인의 어머니인 성모님께 카네이션을 봉헌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공통적으로 성모님한테 친 어머니 같은 친근한 정을 느끼며 산다. 간혹 개신교 신자들이 천주교 신자들에게 ‘마리아 믿는 교’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신자들 중 아무도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으로 섬기는 사람은 없다. 지금 천국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성모님과 인연을 갖고 그분의 사랑과 정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천주교신자들의 축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당신부를 하면서 교도소 사목을 겸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은인들이 기증한 성모상을 교도소 뒷마당에 세운 적이 있다. 삭막한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수인들이 성모님에게서 위로와 포근함을 느끼게 되길 기도하면서, 성모상 축복식을 가졌다. “여러분 중에 어머니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을 많이 사랑하고 기도해 주시는 성모님이 어머니가 되어주실 것이니 든든하게 생각하라”고 강론했던 기억이 난다.

근년에 인도의 어느 광고 작가가 제작한 광고카피는 엄마 잃은 소년이 고아원에서 분필을 가지고 나가 아무도 없는 뒤뜰에 가서 엄마 그림을 그린 후 그림 한가운데 엎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겠지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가 엄마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에라도 안기고 싶은 심정을 너무 잘 표현했기에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 신앙인 역시 성모님을 대하는 심정이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인생살이에 지치고 힘들어 할 때, 가끔 성모님 품에 안기어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 앞에 서기에는 자신 없고, 죄인의 피난처라고 생각하는 성모님 앞에서 말이다.


성모님은 품에 달려드는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여기고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데 과연 성모님은 우리를 자녀로 여기고 우리를 위해 세상 어머니들처럼 애쓰고 계시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몇 해 전 타계하신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엄마 까투리’가 선생님 사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이 동화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그 줄거리는 이러하다. ‘산불이 나서 피할 길이 없자, 엄마 까투리가 새끼들을 품고 바닥에 엎드린다. 불길이 온 몸에 덮치지만 엄마 까투리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산불이 꺼졌을 때, 죽은 엄마 까투리의 날개아래에서 새끼들이 종종거리며 나온다.’ 모성의 큰 사랑을 생각나게 만드는 동화인데, 이와 비슷한 실화도 있다.

1865년 어느 추운 겨울날에 한 젊은 여인이 혼자서 아기를 품에 안고 영국의 사우스 웨일스의 구릉지대를 지나다가 휘몰아치는 큰 눈보라를 만나 그만 길을 잃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얼어 죽었는데, 눈보라가 멈춘 후 마을사람들이 눈 속에서 그녀의 시체를 발견하였을 때 놀랍게도 아기는 아직 살아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죽기 전에 자기의 겉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싸놓았던 것이다. 이 아이를 착한 사람이 데려다 길렀는데, 이 사람이 바로 1916년에 영국수상으로, 영국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의 한사람이 된 ‘데이비드 로이드 죠지’라 한다.

그렇다 이것이 어머니 사랑이다. 자식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가지신 어머니! 교회는 성모님에게서 이런 사랑을 발견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모님 품에 달려드는 누구도 성모님이 외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의 모성에 하느님 백성 맡기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십자가 아래에 계신 어머니와 제자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제자야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19장26-27)”라고 하시며 서로를 맺어주실 때만 해도 그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그때는 모르셨을 것이다. 당신을 어머니로 모시는 사람, 아니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걱정하시고, 기도하시며 전전긍긍 애타하시는 운명이 될 줄은 아마도 모르셨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인간구원을 원하는 교회의 마음을 절절한 가슴으로 사시도록 운명 지워지신 어머니이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참 잔인한 임무를 주신 것 같다. 인류구원이 완성되는 그때까지 어머니의 기도와 애탐은 이어질 테니까 말이다. 우리에게는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성모님한테는 너무 힘든 과제가 주어진 것 같다. 하긴 자식을 위해서 염려하고 걱정하며 희생하지 않는 엄마는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없다. 양엄마나 새엄마도 제대로 자식에게서 엄마로서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그런 사랑과 희생의 삶이 뒤따라야 함을 세상 사연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사실들이다.

성모님도 신앙인들 나아가 아들 예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먼저 기도와 사랑을 쏟으신다. 그러면서 당신이 우리 신앙인의 어머니임을 드러내신다.

발현하시는 성모님이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간절히 호소하시는 걸 보면, 우리를 향한 성모님의 사랑을 능히 짐작하게 된다.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의 모성에 하느님 백성을 맡기신 것이다.

오월, 우리를 낳아주신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를 위해 항상 염려하시는 성모님의 사랑에도 감사의 마음을 갖자. 엄마까투리처럼,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주실 성모님께 감사와 효성을 드리며 살아갈 결심을 새로이 했으면 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5월호, 김학록 안셀모 신부(안동교구 사무처장, 안동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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