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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 산책: 우리는 철학적 신학 통해 자신의 이해와 신앙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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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03 ㅣ No.152

[신승환 교수의 철학 산책] 우리는 철학적 신학 통해 자신의 이해와 신앙 드러내

복음과 그 안의 진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철학적인 해명 과정 거쳐 형성된 것이 신학


나자렛의 한 젊은이로부터 전해진 ‘기쁜 소식’을 접한 당시의 지식인들은 그 안에 담긴 진리를 확신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신앙으로 돌아선 이들은 이 복음과 그 안에 담긴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론적으로 정립함으로써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럴 때만이 이 기쁜 소식을 정당화하고, 다른 사람들에 그 진리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작업을 위해 이들이 원용했던 것이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철학이었다. 이렇게 작업한 신학적 철학자를 우리는 교부라 부른다. 이들 교부들은 당시의 지배적 문화였던 헬레니즘의 토양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은 현재적 문화를 떠나 이해되지 않는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진리의 원천으로 계시의 말씀과 함께 이를 해석하면서 수용해온 전승(traditio)을 거론한다. 철학적으로 해명하고 이를 통해 체계적으로 정립된 진리의 말씀이 지금 우리가 지닌 교회의 가르침에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을 위해 전승에 대한 이해와 그를 위한 철학적 소양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유스티누스, 오리게네스, 위 디오니소스, 보에티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물론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교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오늘날과 같은 풍성한 신학적 보물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본성을 삼위일체로 이해하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철학적 체계, 예수의 인성과 신성 문제, 사람이 된 신성의 문제, 하느님의 말씀과 로고스(logos)적 해석 등은 철학의 도움 없이는 결코 해명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사론의 체계를 세우며 교회와 은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데 철학적 지식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렇게 신학이 철학적 해명 과정을 거쳐 형성된 말을 신성의 본성이 변한다는 의미나, 철학에 의해 계시의 말씀이 오염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우리가 접하는 신학적 지식의 변화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이해체계가 바뀌고 변해간다는 의미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어린이일 때 우리는 어린이의 말을 하며”, 성숙한 어른이 되었을 때는 그에 걸맞은 말을 하지 않는가. 토마스 아퀴나스가 접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를 통한 신학적 해명이 당시 신학계에서 받았던 반대와 비판을 생각해보면 이 사실은 명확히 이해될 것이다.

우리의 인격과 이해가 성숙함에 따라 하느님과 그 말씀에 대한 이해 역시 성숙하고 또 그렇게 깊어질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변하게 된다. 신학과 교리 지식이 계시의 말씀을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고 해서 어려워할 필요가 없다. 철학은 어려운 학문체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이해하고 해석하는 생각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철학적이다. 신앙하는 우리는 철학적 신학을 통해 자신의 이해와 신앙을 드러내게 된다. 신학 역시 복음에 기초한 학문이 아닌가. 그러니 철학이나 신학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동안 집필해주신 신승환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3일, 신승환 교수(가톨릭철학학회·가톨릭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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