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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정 폭력은 범죄다: 왜 맞고 사냐고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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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7 ㅣ No.931

[경향 돋보기 - 가정 폭력은 범죄다!] 왜 맞고 사냐고 묻지 마세요

 

 

‘왜 그렇게 맞고 사나?’, ‘견딜 수 있으니 사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폭력까지 쓸까?’

 

매 맞고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가운데에 하나의 질문이라도 쉽게 나온다면 가정 폭력에 대한 생각을 냉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질문은 맞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아주 잘못된 질문이다. 폭력의 이유가 당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가정 폭력 피해자에게 ‘왜 맞았느냐?’ 하고 물으면 열에 열 명은 ‘왜 맞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가해자에게 ‘왜 때렸느냐?’ 하고 물으면 때릴 수밖에 없는 온갖 이유를 댄다. ‘무시해서’, ‘말을 듣지 않아서’, ‘욱하는 마음에서’, ‘끝까지 대들어서’ 폭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폭력을 쓰는 것은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한 책임이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하지만 폭력은 행사하는 사람이 선택하는 행동이지 당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폭력은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의 문제다. 그럼에도 가정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맞을 수밖에 없었겠다.’는 이유를 찾는데 집중한다.

 

아직도 가정 폭력 가해자의 입장에서 가정 폭력 문제를 들여다보며, 해결하려는 게 현실이다. ‘어떤 남자가 여자한테 무시당하는데 욱하지 않겠냐?’ ‘한마디도지지 않고 말대답하니 주먹이 나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설명된다.

 

 

아내 폭력 문제를 말하는 이유

 

가정 폭력이 부부간의 폭력, 특히 아내에 대한 폭력 문제로 주로 거론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정 폭력 피해자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이 여성이다. 그 가운데 6명은 성인(19-59세)이다. 여성, 아동, 노인이 가정 폭력의 주된 피해자다.

 

폭력은 속성상 상대적으로 힘이 없고, 폭력을 당해도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열악한 사람을 상대로 지속된다. 가정 폭력도 예외가 아니다. 가정 폭력 문제의 본질을 당사자 간의 갈등이 아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력’, 구체적으로 말해서 ‘잘못 쓰고 있는 힘’의 문제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권력과 횡포의 경계는 맞닿아 있다. 쌍방이 인정하지 않은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권력은 횡포가 된다. 가부장제에서 가부장의 권력은 가족 구성원을 지배하는 공인된 힘으로 수용되었다.

 

‘내 마누라 내가 팬다는데’, ‘내 자식 내가 가르치겠다는데’ 왜들 참견이냐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가부장적 발상이 가정 폭력과 맞닿아 있는 접촉점이다.

 

 

가정 폭력이 계속되는 까닭

 

가정 폭력 피해를 겪는 기간은 평균 11년이다. 가정 폭력이 어떤 사회 폭력보다도 참담한 사건으로 노출되는 이유가 오랜 시간 폭력을 묻어두었다는 데 있다. 따귀 한 대가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 칼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목을 조르고, 기절할 때까지 때리는 가정 폭력이 결코 사소한 부부싸움일 수는 없다.

 

한해 150여 명이 가정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런 상황에까지 치달으면서도 가정 폭력이 외부에 알려지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2.3%에 불과하다. 가족이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하고, 가정사라는 이유로 개입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정 폭력이 지속된다면 가정 폭력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을 방어하고자 적극적인 대처를 하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찾아야 한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폭력 상황을 지속시키는 것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냐는 반문도 하게 된다.

 

‘합리적인 문제해결’을 하지 못한 피해자의 문제는 무엇일까? 가정 폭력은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언제든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가족 관계에서 지속된다. 반복되는 폭력 상황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잘못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이라는 자책을 하면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갖게 된다. 매 맞는 여성 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으로 일컬어지는 증세다.

 

대부분의 가정 폭력 피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폭력 피해 여성들은 남편의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온몸이 떨리는 증세를 호소한다.

 

지속적인 학대와 폭력에 노출된 경우 남편이 자고 있어도 폭력의 두려움과 공포를 실제처럼 느끼기도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폭력으로 학습된 무력감에 감춰져 있다.

 

 

교회는 무엇을 말하는가

 

교회가 가정 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문제 해결의 시작과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두는 사회 통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맞는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가정 폭력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시작점은 극단의 폭력 상황으로 끝점을 찍는다.

 

‘폭력이 있더라도 가정을 지켜야 된다.’는 것은 가정 폭력 피해자를 피해 상황에 지속적으로 머무르게 하는 명령이다. ‘가정과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혼해서는 안 되고,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잘 하고 기도하면 얼마든지 남편이 변화할 수 있고 가정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전제는 피해자가 폭력에서 벗어나거나 머무는 모든 선택에 대한 비난을 받게 한다.

 

실제로 폭력 피해 여성들은 이렇게 말하며 폭력 상황을 벗어나는 것을 자신의 십자가를 던져버리는 모습으로 생각하여 오히려 고통스러워한다. ‘떠나면 남편과 아이들은 어떻게 살죠? 제가 없어서 다 잘못되면 어쩌죠? 이런 생각조차 잘못인 것 같아요.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참고 인내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는 말은 가정 폭력 상황에서는 절대 적용되지 않는다. 신앙의 관점에서 기도하고 하느님께 매달리며 위로받는 것이 고통을 참아내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가정 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가정 폭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이, 학대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학대를 자신이 유발했으며, 자신은 약하고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필요하다고 여긴다. 폭력을 하는 남편의 예측 불가한 폭발과 갑작스럽고 이유 없는 폭행에 대해서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참고 견디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정 폭력은 일정주기를 반복하며 지속된다. 폭력이 일어나기 전에 긴장상태가 있다. 머지않아 협박과 위협, 정서적인 학대와 신체적인 폭력이 유발되는 상황이 생긴다.

 

가해자가 사과를 하면, 폭력 상황의 심각성을 무감각하게 하는 화해기가 오고, 일정기간 폭력 상황을 잊고 좋게 지내는 폭력의 정체기가 온다. 정체기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닌데도 이를 ‘화해의 시기’로 단정하는 경우, 가정 폭력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지만 폭력은 결코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

 

 

폭력에 단호해야 할 교회

 

맞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인내와 희생은 가정 폭력에 대해 침묵하게 하고, 문제를 은폐시키며,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유가 된다. 반복될수록 강도를 더하고 가혹해지는 것이 폭력의 속성이다.

 

침묵의 유지는 학대와 폭력을 키우는 온상이 된다. 피해자에게 ‘맞을 짓을 한 ’책임을, 가해자에게는 ‘한 번쯤 실수할 수도 있다.’는 허용은 가정 폭력으로부터 침묵해야 할 문화를 만든다.

 

피해자가 가정 폭력 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가정문제를 드러내는 순간 ‘문제 있는 가정’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통념이 아직도 강하고, 피해자가 도리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가정 폭력 피해자가 고통을 말할 수 있고, 위험을 피할 수 있으며,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가정 폭력 문제를 접근하지 않고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폭력 문제 해결은 폭력을 당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하지 않는 데 있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호할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이 부족한 피해자가 위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피해자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는지 교회는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에게 절박한 것은 폭력이 멈추는 것이다. 가정 폭력이 지속되는 ‘공간’에서 벗어나고, 학대가 반복되는 ‘관계’로부터 해방되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가정 폭력이 없는 공간이 되어야 하고, 폭력이 반복되는 관계를 바꿔야 한다.

 

교회는 가정 폭력이 일어나는 가정을 더 이상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사목자와 수도자는 가정 폭력의 심각성을 올바로 깨달아 가정 폭력에 대하여 신앙적인 차원에서 인내하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고, 가정 폭력은 가정을 붕괴하고 해체하는 ‘죄’라는 입장에서 교회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단호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곳에 대한 미온적이고 폭력을 묵인하는 대응은 폭력을 키우고 피해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다.

 

 

교회는 어떻게 도울 것인가

 

교회는 피해자가 폭력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과 정보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 사목자는 가정 폭력을 예방하는 사목적 활동을 하거나 전문강사를 초대하여 강의와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가정 폭력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관심을 갖고 가톨릭 여성의 쉼터로 안내해 주는 방법도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폭력 상황을 견디고 반복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폭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갖가지 이유로 분노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 채, 폭력으로밖에는 자신을 표출할 방법이 없는 가해자를 위해서라도 폭력을 단절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교회 안팎의 가정을 살펴보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상담을 받도록 권하여야 한다.

 

지난 3년간 가정 폭력 신고 건수가 평균 2만 건이 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수많은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이 아직도 불안에 숨죽이며 살고 있다.

 

교회가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주고, 그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격려와 용기를 주는 가운데 예방 교육을 꾸준히 한다면, 가정 폭력으로 붕괴되고 해체되는 가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이상화 테오도라 - 여성가족부 산하 공무원 교육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2003년부터 여기서 일하며 양성(兩性)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희망을 키운다. 서울시 몇몇 구(區)의 성평등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이상화 테오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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