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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감시사회에서 살아가기: 감시의 역사, 안전과 자유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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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16 ㅣ No.1322

[경향 돋보기 - 감시사회에서 살아가기] 감시의 역사, 안전과 자유의 딜레마

 

 

감시는 언제나 국가안보와 안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권력의 악용과 인권 침해의 위협에도 감시권력의 확대를 용인하고 만다. 지난 3월 2일 민간사찰과 인권침해의 논란에도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사실은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한다. 감시권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늘 안전과 자유의 딜레마 사이에서 동요한다. 정부는 안전을 확보하려면 부득이 자유를 통제해야만 한다며, 나아가 진정한 자유는 안전의 토대 위에서만 극대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안전의 위협에 비해 감시로 말미암은 사생활과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는 다소 한갓진 고민처럼 들리기도 한다. 생명에 대한 위협 앞에서 홀로 있을 권리나 개인정보를 지킬 권리 따위는 부차적인 권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감시와 통제는 단지 사회 안의 위험요소를 식별하고 감독하는 문제를 넘어, 근대국가가 전체 인구의 생명과 사회적 삶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요소를 식별하고 관리하는 ‘생명정치’의 하나이다. 이러한 국가의 감시능력과 범위는 이후 20세기를 거치면서 날로 증대되었으며, 오늘날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조지 오웰이 경고한 전체주의적 감시사회의 위협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20세기, 첩보와 감시의 시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주저인 「감시와 처벌」에서 서구 근대사회가 감시사회이며, 개개인을 규격화해 권력의 생산성을 보장하는데 주력하는 사회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고대사회가 다수의 인간이 소수의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구경거리의 사회라면, 근대사회는 극소수의 개인이 대다수 집단의 모습을 한눈에 관찰하게 하는 감시사회이다.

 

고대사회가 성당, 극장, 원형경기장의 시대라면, 근대사회는 감옥, 학교, 공장의 시대인 셈이다. 푸코는 18세기의 철학자 벤담의 원형 감옥 계획에서 이러한 일망 감시의 건축적 이상을 발견했다. 원형 감옥은 감방이 감옥 둘레에 원형으로 배치되며 중앙에 감시탑이 설치된다. 감시인은 죄수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개인 감방에 분리되어 감시인을 볼 수 없다. 심지어 감시탑은 발로 가려져 있어 감시탑에 감독관이 아닌 일반인이나 허수아비를 세워놔도 감시의 효과는 동일하게 발휘될 수 있다.

 

벤담은 이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가 감옥은 물론 공장이나 학교 등 개인의 행동과 인간관계, 생활환경 전체를 감시할 필요가 있는 모든 곳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비록 원형 감옥은 제한적으로만 실행에 옮겨졌지만, 벤담의 이상은 현대 감시권력의 본성과 작동방식을 명료히 제시하고 있다.

 

감시는 우리가 대상을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의 행동 전체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원하는 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에 그를 배치하는 것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감시권력을 단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고, 감시당하는 개인이 권력의 시선을 내면화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감시권력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생산하면서 그들의 신체와 영혼과 행동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고유한 기술과 건축, 법률과 조치,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이상과 수사를 고안한다.

 

감시의 역사는 개인과 집단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하는 기술이나 환경이 시공간적으로 확대된 과정이었다. 감시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려면 개인의 신원이 정확히 식별되어야 하고, 나아가 인구 전체의 상태나 이동에 관한 지식이 축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19세기에는 인체 측정법과 지문 측정법 등의 지식이 고안되어 위조의 가능성이 적은 고유한 신체적 서명을 찾으려는 시도가 전개되었다. 범죄인이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동명이인이 무고하게 감옥에 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국 정부는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사진과 지문 등이 수록된 개인 신분증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도시화와 산업화가 거세게 진행되던 서구 국가에서는 도시 내의 범죄자와 외국인, 종종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에 대한 통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주로 도시문제의 온상으로 지목된 범죄인의 식별과 관리에 초점을 맞추던 감시는 20세기 전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 안전보장’이라는 더 큰 전략적 목표로 이동했다. 최초의 근대적인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전면전은 전쟁이 단지 국지적인 전투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자원과 노동자원을 체계적으로 동원하고 조직하는데 긴밀하게 연결되며, 나아가 군의 사기가 시민의 사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전면전은 시민과 군대, 전방과 후방의 경계를 흐릿하게 했으며, 적을 교란시키고 사기를 유지하고자 검열 기관과 프로파간다 시스템의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전쟁은 ‘조국 수호’는 물론 종종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졌기에, 적의 교란과 선동으로부터 여론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전쟁의 경험을 통해 국가 안전보장의 독트린은 친구와 적,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었고, 표현의 자유나 인권의 가치는 정보수집과 여론통제의 긴급함에 비해 부차적인 지위로 밀려났다.

 

두 차례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난 뒤 각국은 제대한 군인과 가족, 전시에 동원된 국민에게 일정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다. 서유럽 각국은 경제재건과 사회통합을 위해 사회복지 제도를 정비했고, 이는 광범위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문서화를 수반했다. 치안이나 건강보험, 사회급여 제공 등 각각의 목적을 위해 정부기관은 개인정보에 접근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춰나갔다.

 

전면전 이후 양대 진영으로 나뉜 냉전의 시대가 열리면서 국가 안전보장의 이념(이데올로기)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두 차례 전쟁에서 정보수집과 프로파간다의 중요성을 체득한 각국 정부는 적국에 대한 정보수집과 첩보활동에 전력을 기울였고, 첩보활동을 전담하는 비밀기구들을 신설했다. 이러한 기구들은 적국의 음모와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전자통신에 대한 강력한 감시망을 구축했고, 그렇게 비밀리에 수집한 정보는 종종 국내 정치에 활용되기도 했다.

 

 

데이터 감시와 민간 대량 감시

 

20세기 후반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냉전이 종식되면서 자유민주주의 세계는 ‘역사의 종언’과 ‘열린 사회’로의 진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를 비롯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미국은 냉전시기의 초법적인 군사첩보 활동과 국제적인 감청행위를 중단할 의사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감시의 대상을 적국의 스파이에서 초국가적인 인물, 시민단체의 활동가, 마약조직과 테러리스트 등 민간인으로 변경했다.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내부의 교란자들이 새로운 위협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시기에 대중적으로 보급된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민간에 대한 정보수집과 가공, 관리의 가능성을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게다가 2001년 9월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은 뒤 세계의 민주주의가 다시 위협에 직면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미국은 테러리즘에 대한 가혹한 응징을 예고하면서 ‘미국 애국자 법안(USA Patriot Act)’을 제정하는 한편, 국가안전보장국(NSA)에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감청, 수색과 압수활동에 대한 초법적 권리를 부여했다.

 

테러리즘의 특징은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냉전 시기에 명확한 교전국이 존재했다면, 테러리스트는 외부의 적(예컨대 이슬람 세력)만이 아니라 내부의 이방인 또는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선량한 이웃일 수도 있다. 21세기의 테러리즘은 당대를 특징짓는 네트워크, 유동성, 편재성 따위의 특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상상된다.

 

그리하여 감시의 대상과 범위는 법률로 정해진 경계를 넘어 무한히 확장되고, 감시의 목적 또한 사후처벌이 아닌 사전예방에 초점이 놓인다. 테러리스트들이 고정된 장소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통신망을 타고 이동하면서 정보를 교환한다는 인식은 인터넷을 통한 광범위한 정보수집과 감시 시스템의 구축을 정당화한다. 예컨대, 국가안전보장국(NSA)은 2001년 이후 외국인만이 아니라 미국시민들을 대상으로 통신 회사와 케이블 회사를 통해 인터넷을 감청하고, 전자우편, 문자 메시지, 검색 기록, 위치 정보 등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대량 감시는 일정 부분 우리의 동의에 따라 이루어진다. 물론 우리가 감시의 내용을 잘 알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술과 서비스가 개인정보의 광범위한 수집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순간 우리는 문자 메시지와 전자우편, 연락처는 물론이고,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을 통해 위치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신용카드, 교통카드, 거리의 시시티브이(CCTV), 인터넷 검색 기록 등을 통해서도 생활유형과 동선, 취향에 관한 각종 정보가 끊임없이 생산된다.

 

‘누리소통망’이라고 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친구와 관심사, 하루의 동선과 일상을 공유하는 게시물로 가득하다. 오늘날 우리는 감시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아무도 지켜봐주지 않을까봐 더욱 두려워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나에 관한 정보와 이야기를 온라인에 노출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더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우리는 공짜와 편리함의 유혹에 이끌려 반강제적인 약관에 동의하고 만다. 국가 기관은 테러 방지와 범죄수사를 이유로 이런 개인정보를 내놓으라고 기업들에게 종용하며, 기업들은 우리의 동의도 없이 그러한 압력에 굴복하곤 한다.

 

곧 오늘날 압도적일 정도의 대량 감시는 얼마간 정부와 기업, 시민들의 공동책임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감시권력에 대항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전자우편을 주고받지 말고, 휴대폰을 갖고 다니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사생활과 인권에 대한 강조는 안전을 위한 감시라는 더 큰 명분과 자발적인 자기노출의 문화 앞에서 큰 동의를 얻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무제한적 감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넘어 사회 전체의 자유와 진보를 가로막고, 힘겹게 구축한 민주주의 질서의 근간을 뒤흔든다. 경계와 범위가 불분명한 감시는 사회 안의 이견을 억압해 시민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는 한편,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권력유지를 위해 쉽게 공포와 위협을 활용하게 한다.

 

우리는 20세기의 군부독재 시절을 겪으며 그러한 위험성을 충분히 경험했다. 무제한적인 권력은 공포를 자양분 삼아 자라며, 안전에 대한 요구는 이내 안전 강박증으로 이어진다. 감시가 아닌 보안의 중요성, 자의적 비밀이 아닌 투명성,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 정부의 감시에 대한 민주적 통제 등 감시권력과 기술에 대한 시민사회의 다각적인 검토와 대응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 최철웅 - 중앙대학교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문화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함께 쓴 책으로 「감시사회」,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가 있다.

 

[경향잡지, 2016년 6월호, 최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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