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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으로 돌아온 동방 가톨릭교회3: 가톨릭 콥트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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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13 ㅣ No.162

가톨릭으로 돌아온 동방 가톨릭교회 ③ 가톨릭 콥트 교회


1895년 이후 가톨릭교회로 회귀

 

 

콥트(Copt)라는 말은 ‘이집트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 알 굽트(al-gubt)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콥트 교회란 이집트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는 2세기 말에는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됐을 정도로 일찍부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고 사막의 성자, 은수자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성 안토니오(251-356) 등 초기 교회의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집트 교회 곧 콥트 교회는 4-5세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신격과 인격 등을 둘러싼 교리적 논쟁이 한창이던 때에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반대했다. 네스토리우스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위격으로는 신격과 인격 두 가지가 있고, 본성으로는 신성과 인성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는 사상이다.

 

콥트 교회는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반대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극단으로 나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본성으로도 신성만 있다고 보는 단성설(單性說, monophysitism)을 주장했다.

 

이집트인들이 공경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성인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 선출된 디오스쿠루스(Dioscurus)는 이 단성설을 강력히 내세우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 받았다. 그렇지만 이 단성설은 콥트인들 곧 이집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뿌리깊게 계속 퍼져나갔다.

 

7세기 중엽 이래로 이집트가 이슬람화한 이후 그 영향이 너무나 커서 오늘날 이집트는 국민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로 자리잡고 있다. 그 와중에도 단성설의 영향을 받은 정교회 콥트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계속 유지해 왔다.

 

가톨릭 콥트 교회는 1741년 정교회 콥트 교회의 암바 아타나시우스 주교가 신자 2000명과 함께 가톨릭에 귀의한 것이 시작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두 차례 정도(1442년과 1713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가 로마 교회로의 귀의를 선언한 적이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아타나시우스 주교는 2000명 신자를 돌볼 대목구장(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기 이전의 교구장)으로 임명됐으나 얼마 후 다시 정교회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남은 신자들이 조금씩 불어났고, 교황청은 1824년 이들을 위해 알렉산드리아에 총대주교좌를 설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1895년 교황 레오 13세는 첫 총대주교를 임명했고, 이 교회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총대주교좌가 알렉산드리아에 있고 신자들도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분포돼 있어서 알렉산드리아 가톨릭이라고도 부르는 가톨릭 콥트 교회는 지난 10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된 안토니오스 나기브 총대주교가 이끌고 있다. 신자 수는 16만 3000여명이고, 전례 언어로는 콥트어와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0년 12월 5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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