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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책 읽는 청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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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4-30 ㅣ No.213

[책 읽는 청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교구 청년부 담당 오승수 시몬 신부입니다. 책 읽는 청년 시간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신간이 아니라 고전입니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시형 옮김 2005, 청아출판사)입니다. 1905년 출생인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2차 세계 대전 중 3년 동안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수감 되었습니다. 그 기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평범한 수감자였던 나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것으로 자랑할 일은 못 되지만, 나는 수용소에서 마지막 몇 주를 제외하고는 정신의학자 노릇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의사 노릇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프랭클의 이 책은 수백만 권이 팔렸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열권의 책’ 목록에 들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전하는 책들은 많습니다. 그 많은 책 가운데 유독 이 책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프랭클은 단지 수용소에서의 참상과 잔혹함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에 의미를 담았습니다. 수용소에서의 삶 안에서도 인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고달픈 인간들에게 프랭클의 이 노력, 최악의 상황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감동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프랭클은 수용소에 대한 첫인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날 저녁에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 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채 몇 시간도 못되어 집행되었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그 화장터의 문에는 유럽 여러 나라말로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화장터로 들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비누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다음 -그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묘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그 끔찍한 사건을 기록해 놓은 것은 너무나 많으니까.

선별 과정에서 살아남은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삶을 하나씩 풀어나갑니다. 그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놀라운 동물이라는 것을 그때 경험으로 깨달았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뎠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놀라운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어 보자. 수용소에서 우리는 이를 닦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잇몸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했다. (중략) 수도관이 얼어붙어 세수는 고사하고 손 하나 제대로 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흙일을 하다가 어쩌다 찰과상을 입어도 - 동상에 걸린 경우만 제외하면 - 상처가 곪는 법이 없었다. 밖에서 생활할 때 잠을 제대로 못 잤던 사람도 있었다. 옆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잠이 깰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는 그런 사람이 동료의 몸 위에 엎어져서 귀에서 불과 몇 인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주 깊이 잠을 잤다.

혹독한 수용소의 생활 속에서 가장 힘든 것 가운데 하나는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갈망이었다고 프랭클은 회고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컸다고 합니다. 단지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날은 그 장소에서 해방되는 날이라 여겼기에 욕구 자체가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와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이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꿈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꿈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꿈을 꾼 사람들은 꿈에서 깬 다음 수용소 생활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꿈속의 환상과 현실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중략) 우리 중에서 정신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맛있는 음식을 다시 먹게 될 그 날을 그리고 있었다. 단지 맛있는 음식 그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가 되면 먹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인간 이하의 상황이 마침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고통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상황 속에서 프랭클은 인간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수감자가 시간에 대한 무감각과 삶에 대한 무관심의 도피처로 빠져들 때 그는 의사로서 또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지금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랭클은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존재의 이유, 그 삶의 이유에는 인간이 신에게서 받은 자유에 대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서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강제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중략)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길 수 없는 영혼의 자유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이는 살아감의 의미, 삶의 이유를 찾은 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이 책이 신앙인으로서 우리 각자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4년 4월 27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8-9면, 오승수 시몬 신부(마산교구 청년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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