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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원 수도회 이야기13: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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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28 ㅣ No.449

수원 수도회 이야기 (13)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가난 · 겸손으로 기도 · 노동의 조화 이루다


- 무엇보다 가난과 겸손으로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이루고자한 수녀회는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며 땀 흘려 일한다.


일생을 성경 연구에 바친 故(고) 선종완 신부는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실천하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는 관상공동체를 창설하고자 했다. 선 신부의 뜻을 이어가는 수도 공동체가 바로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원장 박미숙 수녀)이다.


■ 교구보다 이른 시작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1960년 3월 25일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신천리 산 6번지에 창설됐다.

1963년 1월 10일 회헌에 따른 교황청 포교성성의 인준을 받은 수녀회는 당시 서울대교구에 소속돼 있었으나 같은 해 10월 7일 교구 신설과 함께 교구로 편입됐다.

- 성가원 장애인시설 가을 가족 나들이.


이후 수녀회는 1966년 3월 6일 지역사회를 위한 어린이 주일학교를 열고 직접적인 복음 선포 활동에 첫 발걸음을 뗐다.

무엇보다 가난과 겸손으로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수녀회는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며 땀 흘려 일했다. 덕분에 초창기 수녀회는 ‘메추리 키워서 만든 공동체’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척박한 산을 두고 1967년 6월 14일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로 이전한 수녀들은 직접 흙벽돌을 짓고, 쌓아 살 집을 마련했다. 기도와 노동은 수녀들의 생활 그 자체였다. 곧 피정의 집도 열었다.

그리고 1969년 수녀회는 교구의 인준을 받았다. 초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은사(恩師)인 선 신부가 창설한 수녀회를 흔쾌히 교구로 받아들였다.

이후 수녀회는 1973년 부활절을 맞아 어린이 놀이터를 개장하는 등 지역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은 어린이 성경을 만들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선 신부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다.

- 해뜨는마을 요양시설.


1979년 수녀회는 막계리 수녀원 땅이 서울대공원 부지로 수용되면서 시련을 맞았다. 수녀회는 이전할 땅을 찾아야 했다. 결국 수녀들은 1982년 6월 1일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문원리로 옮겨왔다.

새집에서도 수녀들은 15년간 수지침 봉사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살았다. 서울, 안양 등지에서도 수녀원을 찾아왔다.


■ 초심으로 돌아가기

수녀들의 일과에는 언제나 말씀이 함께한다. 매일 성경 통독과 30분 묵상 시간은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는 수녀들의 정신이 담겨있다. 또한 수녀들은 주 1회 성경 묵상 나누기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수녀회는 1976년 한센인들을 위한 ‘성 라자로 마을’에 첫 분원 진출을 시작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사회복지에 눈을 떴다.

수녀회 역사 담당 김춘자 수녀는 “사회복지로의 진출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라며 “성경 속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 수녀회는 1973년 부활절을 맞아 어린이 놀이터를 개장했다.


수녀회는 현재 전국 13곳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1985년 문을 연 영보자애원부터 영보정신요양원, 영보노인요양원, 영보기도의집, 성가원, 작은프란치스코의집, 프란치스코의집, 해뜨는마을까지 총 8곳이 교구에 속해있다.

수녀회는 영보자애원 운영 시작을 전후로 일본 순심대로 수녀들을 파견해 사회복지실습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은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다. 영보자애원에 입소한 1000명의 노숙인 중에는 수녀들의 머릿수건을 벗기는 등 장난을 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이밖에도 수녀회는 선 신부의 출신본당인 원주교구 용소막성당에 선 신부 유물관을 마련하는 한편, 한센인 보호소 상지공소(전주교구 함열본당 소속)와 다미안의 집(안동교구) 등에도 수녀들을 파견하고 있다.

아울러 2010년 수녀회 설립 50주년을 맞은 수녀회는 사회복지 분야로 치우친 공동체의 사도직 활동을 재조명 하고, 쇄신의 기회로 삼아 기도와 노동 속에서 증거의 삶을 사는 고유 사도직으로의 회귀를 결정했다.

이에 수녀회는 지난해 6월 28일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에 바다의 별 관상공동체를 설립했다. 창설자 선 신부의 정신과 현 시대에 맞는 사도직을 찾아나가기 위해 12~20명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농장을 열고 순수 유기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 공동체의 농장 역시 끊임없이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갈구하는 수녀들의 노력이다.

김 수녀는 “우리 수녀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근본으로 나자렛 성가정의 삶을 본받아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이를 가난과 겸손, 기도와 노동의 삶을 통해 실현하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3년 1월 20일, 이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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