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주님께 등 돌린 세상이기에 우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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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0 ㅣ No.388

[레지오 영성] 주님께 등 돌린 세상이기에 우리가 필요합니다



지난 가을에 교구청으로 살림을 옮겼으니 교구청 살림엔 풋풋한 새내기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새해를 맞고 보니 사뭇 두어 해쯤 지난 느낌이 듭니다. 사제의 삶이 언제나 어디에서나 한결같을 터임에도 교구청에서의 매일은 저를 어색하게 했습니다. 우선 주일에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생소했는데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생경스러웠습니다.

따져보면 신학교도 평일에 근무하고 주일에 쉬는 직장이었는데, 이렇게 색다른 느낌이 드니 의아합니다. 아마도 신학교에서는 방이 곧 집무실이었기에 강의시간 이외에는 줄곧 방에서 근무를 했으니 출퇴근 개념이 희미했던 모양입니다. 이를테면 강의록을 준비하다 피곤해지면 잠시 쉬기도 하고, 지치는 날엔 일단 누워 뒹굴다 밤을 새워 일을 처리해도 무방했던 재택근무자였던 셈인데요.

이어졌던 본당의 사제생활은 또 얼마나 들쭉날쭉 입니까? 정해진 미사 시간 외에는 거의 정해진 게 없다 할 정도로, 본당 사제의 일상은 뒤죽박죽으로 엉켜드는 일이 수 없이 많습니다. 사제관은 모두에게 ‘열린 장소’이고 사제의 시간은 온통 신자 분들의 사정에 맞춰져야 하니까요. 그렇게 오락가락 대며 몽땅 ‘내놓은 존재’로 지내다가 모든 일이 계획에 따라 예정대로 착착착 진행되는 곳으로 이동했으니, 어리둥절할 밖에요. 바짝 긴장할 밖에요……. 물론 이즈음에야 겨우 규칙적인 교구청 생활에 익숙해진 제 어눌함을 변명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요즘 저의 가장 큰 변화는 9시 이전에 전화가 오면 으레 “출근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겁니다. 여태껏 고작 몇 걸음 걸어 도착하는 직장생활에 마음이 곤두서 있다는 증거일 테지만 그래도 이제는 새벽, 미사에 앞선 성체조배와 주교님을 모신 아침 식탁의 담소와 서둘러 출근을 준비하는 분주한 아침이 즐겁습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가질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행복합니다. 명실공이 주일을 기다리며 한 주간을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근로자가 된 듯싶습니다.


한 끼니 식사가 간절한 이웃이 이리도 많아

교구청에 근무하면서 갖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교구에서 펼치는 여러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부산교구의 사회사목국에서 주최하는 밥퍼 운동에 총대리 주교님을 모시고 갔던 날의 충격은 오래 제 마음에 간직될 듯 한데요.

그 곳의 긴 행렬을 보던 순간, 숨이 멈출 것만 같았습니다. 일주일에 단 한 끼니, 제공되는 밥을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떨려왔습니다. 모든 것이 넘쳐나서 소비가 곧 미덕인 양 추앙받는 세상에서 결코 믿을 수 없는 일을 목격했으니까요. 한 끼니의 식사가 이토록 간절할 이웃이 이리도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기본적인 삶의 조건마저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하루가 얼마나 길고 또 힘겨울지... 내내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제 마음을 후벼대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성모님의 마음이 생각났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를 배불리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모성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이 그리도 많다는 사실이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아, 어머니 저는 눈뜬장님이었습니다. 제가 바로 대문 앞의 나자로를 외면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울먹울먹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세상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

솔직히 세상은 교회의 가르침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나서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야말로 세상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 무엇에 목말라하는지를 선명히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썩어 문드러져서 더 이상 희망이 없을 듯 보이는 혼탁한 세상이지만 양심이 살아있고 정의에 박수를 치며 선한 삶을 동경한다는 뚜렷한 방증이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썩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상황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을 당신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이고 당신처럼 세상을 사랑하여 생명을 선물해 줄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세상의 타락에 관하여, 세상의 혼란에 관하여, 세상이 물질만능주의에 휩쓸려 버린 일까지도 모두, 제대로 복음을 살아내어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특히 성모님을 따르겠다고 선언했음에도 실천하지 않는 레지오 단원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레지오 단원들은 옳지 않은 세상을 비웃을 수가 없습니다. 못된 세상을 삿대질하며 흉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헛된 사상에 사로잡혀서 헛된 꿈을 향해서 뛰고 또 뛰면서 미쳐 날뛰는 이유는 참 행복의 가치를 제대로, 입이 아닌 진실 된 마음으로 살아내지 못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탓이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진 사상이 반듯해지도록 참 진리를 선포하지 않은 죄, 왜곡된 시선을 고치도록 생명의 복음을 전하지 못했던 우리의 허물이 얼마나 막중할지요.

그릇된 길을 가는 이에게 참된 지혜로 일깨운 적이 있는지, 누군가의 잘못됨을 복음 말씀을 통하여 바로잡아 준 적이 있는지, 참이고 영원한 주님께 진심으로 이 세상을 위하여 엎드려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있는지, 철저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변화란 지난날의 틀을 깨고 무너뜨리는 혹독한 대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늘의 작업이라는 점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후미진 세상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 몸져누워 앓고 있는 세상을 하느님께서는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깊은 병이 어서 낫기를 진심으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왜곡되고 모순된 세상이야말로 우리를 깨우는 성모님의 팡파르입니다. 세상의 건강상태가 ‘불량’이라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성모님의 용사로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2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사목국장, 부산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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