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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화산과 민주화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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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98

[과학과 신앙] 화산과 민주화의 인연

 

 

민주화를 위한 그날

 

1980년 5월 18일!

 

이 날짜를 말하면 대한민국 사람의 대다수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릴 것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에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당한 이후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의 현대 역사에 - 특히 민주화와 관련하여 -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왔지요.

 

그렇지만 당시의 국내 상황과 미국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 이후 일부 정치군인들이 국방부를 점령하고 - 한 나라의 국방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다니요. - 허수아비처럼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분이 물러난 뒤에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갈망하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열기가 매우 뜨거웠습니다.

 

그런 곳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무자비한 진압을 시도했으며,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잔인한 행위들로 수많은 인명을 상하게 했으니 당시의 책임자는 그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국민들, 특히 광주시민들은 이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며,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기틀을 마련한 사건이었음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에 국민들은 이른바 ‘땡전’ 뉴스를 한참 동안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밤 9시 시보가 울리면 바로 시작하는 텔레비전 뉴스의 첫마디가 “전○○ 대통령은 오늘 ….”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런 말이 생겼다지요? 누가 당시의 광주에 군부대를 보내서 무자비한 진압을 지시했는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듯합니다만,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들이 퇴임 후에 결국은 감옥에 갇히면서 과징금까지 내는 불명예를 겪는 등 불행한 일들이 잠시 되풀이되었지요.

 

‘80년의 봄’ 이라고 했던 그 봄날에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활화산처럼 타올라서 금방이라도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 같았습니다. 대학생들은 전국 곳곳에서 거의 날마다 민주화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었지요.

 

저도 한때 그 대열에 합류했다가 전경들에게 포위되어서 붙잡히게 되었는데, 아프도록 곤봉을 맞고서야 풀려났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국가권력 집행자(?)’에게 팔이 마비될 정도로 곤봉을 맞다니요. 그때는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뒤에 제 아들이 전경으로 입대해서 ‘촛불시위’를 막는 부대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요즘에는 오히려 전경이 시위대를 무서워하더군요. “아저씨들이 방패나 곤봉 등의 시위진압 장비를 뺏으려 하고, 대나무를 쪼개서 얼굴을 찌르려고 달려들면 무서워 죽겠습니다.”라는 것이 제 아들의 하소연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화산 대폭발

 

우리 사회에 이렇게 중요한 변환을 가져다준 그날, 미국 북서부의 워싱턴 주에서는 123년 동안 활동이 없던 세인트헬렌스 산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납니다. 이 화산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며, 시애틀의 남쪽에 있습니다.

 

환태평양 화산대란 말 그대로 태평양 주위를 빙 둘러서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대를 말하는데, 태평양 연안에 화산들이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지난 호 대륙의 이동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대륙 지각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어떤 지각은 다른 지각의 아래로 밀려들어가기 때문이지요.

 

특히 1980년 5월 18일 일요일에 있었던 대폭발은 매우 유명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경제적 손실이 컸던 화산 폭발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격적인 폭발이 있기 전 두 달 동안 마그마 방에 마그마가 주입되면서 수많은 지진과 수증기 분출이 계속되었지요. 지하에서 마그마가 계속 차올라, 산 높이는 폭발 전보다 120m나 높아졌습니다.

 

그날 오전 8시 반에 일어난 지진으로 산의 북쪽 사면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무너지자, 갑자기 가스와 수증기가 풍부한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분출된 화산재 기둥은 대기권으로 20,000m 이상까지 솟구쳤고, 화산재는 미국 내 11개 주에 걸쳐 쌓였습니다.

 

피해를 더욱 키운 것은, 분출과 동시에, 산 정상에 있던 눈과 빙하들이 녹으면서 화산재와 섞이고, 이에 따라 화산재 이류(굈流)가 생기면서 남서쪽으로 80km나 떨어진 콜롬비아 강까지 흘러들어간 것입니다.

 

분출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지질조사국(USGS)의 권고로, 당국이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기에 수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과학자와 사진기자를 포함한 57명과 수천 마리의 가축이 사망했으며, 넓은 면적이 폐허가 되면서 1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화산의 다양한 활동

 

화산의 분출에 따른 피해를 거리에 따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분출구로부터 반지름 13km 이내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졌으며, 반지름 30km까지는 화산재 이류 또는 화산 쇄설류에 덮이고, 나무들이 밑동부터 잘려서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누웠습니다. 그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는 나무들이 선 채로 뜨거운 폭발가스에 그을려 죽었습니다.

 

화산 쇄설류의 온도는 360℃ 정도였으며, 질식성 가스와 부유분진(浮游粉塵)이 가득했습니다. 실제로 희생자의 대부분은 질식하여 희생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공중으로 분출한 화산재는 인공위성으로도 관측될 정도로 거대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10월까지 5번의 폭발성 분출이 계속되었으며, 총 21회의 분출활동이 있었습니다. 이 화산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까지도 소규모의 화산활동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화산들이 이처럼 폭발하면서 분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화산들은 조용히 마그마만 분출하거나 또는 기체들만 뿜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어떻게 화산의 분출을 미리 알 수 있을까요? 위험성을 보이는 화산에는 보통 여러 가지의 계측장비들을 설치합니다. 화산이 활동하기 전에 마그마 방에 마그마가 차오르면서 발생하는 미세 지진을 관측하고, 중력의 변화도 측정하며, 산의 높이 변화도 측정합니다.

 

또 마그마 활동에 따른 땅의 전류변화도 화산활동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관측을 바탕으로 화산의 위험성을 예고하기 때문에 많은 희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화산 가운데에는 지각판의 이동과 관련된 화산들도 있지만, 하와이 섬의 화산처럼 열점(hot spot) 활동과 관련된 화산들도 있습니다. 지각들이 열점 위를 이동하기 때문에 알류샨 열도로부터 이어진 새로운 화산섬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30년이 지나고 아쉬운 현실이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광주의 1980년 5월 18일과 세인트헬렌스 화산의 그날은 서로 다른 날입니다. 태평양을 지나면서 날짜변경선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날로부터 이제 30년이 지났으니 우리 사회가 완전히 민주화되었을까요?

 

교중미사 때에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보편지향기도에서 수시로 우리 정치와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건만, 아직도 힘들게 사는 국민들이 많은 것은 단지 국제정세가 좋지 않기 때문인가요? 각종 돈 봉투 사건,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건, 학교 내의 폭력과 그에 따른 어린 생명들의 자살, 다이아몬드 게이트라고 알려진 사건 등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군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던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하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이 말을 들은 부자청년은 풀이 죽어 떠납니다.

 

미국의 어떤 부자는 오히려 부유세를 내자고 스스로 자청하고 있는데 반해서 아직 우리 사회는 부자들에게 이런 정신이 조금 부족한 듯합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기에 틀린 것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거 꽤 오랜 시간 동안 일부 관리들이 평화로울 때는 민중들을 수탈하고, 환난이 올 때는 먼저 도망갔던 일들을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슴의 밑바탕에는 위정자 또는 정치가들을 불신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로마의 어느 젊은 귀족이 전쟁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자 그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아들아, 네가 지금 이 전쟁을 피하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 전쟁에서 죽는다면 사람들은 너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싶은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켜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겠지요. 우리 사회에서도 고위직부터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넘쳐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닙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윤왕중 토마스 -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경향잡지, 2012년 3월호, 윤왕중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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