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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만민에게 복음을: 모잠비크 - 시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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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6-03 ㅣ No.193

[만민에게 복음을 - 모잠비크] ‘시마’에 대한 단상


음식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전 통을 알 수 있는 주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색깔과 향을 음미합니다. 그러고는 맛을 즐깁니다. 또한 음식이 사람의 건강을 좌우하기도 하고 또 사고의 깊이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시마와 선교사

하지만 이곳 아프리카에서는 하나 더 미각을 자극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손’인데 따뜻한 ‘시마’를 떼어 주물럭거린 뒤 그것을 반찬에 찍어서 먹습니다. 그러면 따뜻한 시마의 열기가 손가락을 타고 온몸으로 번지며 또 준비한 사람의 정성도 손을 통해서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 선교지에 와서 공동체를 방문하면 말 못할 어려움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음식 문제입니다. 대략 3개월에 한 번 하게 되는 공소 방문은 신자들에게는 모임의 장이며 신부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대부분 공동체에서 점심을 준비합니다.

미사가 끝난 뒤 신자들은 따끈한 시마와 삶은 콩 또는 닭고기 몇 점이 들어있는 접시를 공소 안으로 들여옵니다.

신부 접시에는 보통 닭고기 두세 점이 들어있고 공소 회장님 접시에는 날마다 먹는 삶은 콩이 든 반찬이 나옵니다. 저는 제가 먹을 양만 덜어내고 나머지는 공소 회장님 접시에 덜어드립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먹어도 부족할 고기 한 조각과 국물을 서너 명의 어른이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눕니다.

아프리카 말로 번역할 수 없는 한국말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음식물 쓰레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음식물을 버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 시마를 먹는 사람이라면 금방 배가 불러오고 더부룩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더부룩함과 포만감은 저녁을 먹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저는 벌써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모잠비크에서 지냈고 어느 정도 시마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한지 과일을 먹거나 커피 한잔을 꼭 마시게 됩니다. 김치 맛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자신만의 십자가는 누구나 있다

어느 날 같이 있는 동료 신부와 저녁을 먹으면서 제가 “이제 어느 정도 시마를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니 이곳 삶에 적응을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동료신부는 “시마를 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사제관에서도 날마다 먹을 수 있어야 적응을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문을 해왔습니다.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선교사로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섬뜩하게 뒷덜미를 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학생 시절 외국인 노 선교사 신부님이 영성지도를 해주셨는데, 그때 옛날 한국의 좋은 시골 인심과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신부님이 한국에 오신 지 얼마 안 되어 공소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공소 방문 기간 동안 신자 집에서 머물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파와 밖으로 나가 화장실을 찾아봤지만 도무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답니다. 신부님은 한참을 헤매다가 그럴싸한 것을 발견했고 거기서 시원하게(?) 일을 해결했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집주인 자매님이 노발대발하면서 그 집 꼬마에게 매질을 하고 있더랍니다. “네가 장난질로 장독에다 똥을 쌌지?” 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는 억울하다고 난리였지만 신부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그 위기를 모면했다고 합니다. 당시 신부님은 선교사 초년생으로 된장이 담긴 장독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그것을 변기로 알고 거기에 실례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인 것입니다.

불고기를 참 좋아하시는 신부님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사시면서 한국인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그리고 더 정이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말이 어렵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습에서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자신만의 십자가는 누구나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을 아프리카에서 배운다


언젠가 몇몇 신자 가정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공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형제 두 명과 자매 한 명 이렇게 세 명이 저와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이 미사 시작 때는 보이는 것 같더니 이내 사라져서 미사 끝난 뒤에야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 갔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 식사를 준비하느라 밖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웃으면서 “밥도 중요하지만 몇 개월 만에 오는 신부의 방문인데 미사를 함께 드리는 게 더 좋았지 않냐?”고 얘기를 하니, 자매님은 오히려 “손님이 왔는데 식사를 대접하는 게 더 중요하지 무슨 소리냐?”며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부인이나 다 큰 딸아이는 오랜 시간 장작불을 피우고 눈을 자극하는 매운 연기와 뜨거운 장작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시마를 만듭니다. 그리고 방금 빚어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마는 준비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져 부모님과 가족을 위한 사랑이자 훌륭한 선물이 됩니다.

게다가 개별 접시가 아닌 큰 접시에 시마와 반찬을 담아서 같이 나눠 먹습니다. 같은 접시에 손을 넣어 음식을 나누며 가족은 말없이 하나의 일원임을 느낄 수 있고 또 손님에게는 집주인의 따뜻한 환영과 존중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인색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인데 도움을 받고도 ‘왜 그냥 멀뚱히 보고만 있는 걸까? 왜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건 이곳 문화에서 이혼을 당한 홀어머니 아래서 크는 아이들이 많고 또 가정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서 오는 문제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형제자매들에게 사랑이나 감사의 마음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표현은 서투르지만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해 주는 깊은 마음을, 요즘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그 무엇을, 저는 이곳에서 다시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저는 가끔씩 아프리카 사람 특유의 여유와 순수함이 묻어나는 웃음을 한국에 있는 형제자매님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 왠지 많은 사람의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올해 이곳 농사는 흉작이 될 것 같습니다. 들녘은 푸르고 옥수수는 잘 익어가고 있지만 너무 많은 비로 올해 농사는 망쳤다며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가뜩이나 소박한 밥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작은 병에도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이 많은데, 올해는 그러한 간소한 먹을거리마저 보장이 되지 않는다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골 신부인 저에게도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순례의 여정을 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할 수 있기를 오늘도 조용히 기도드립니다.

* 박광기 마르티노 - 한국외방선교회 신부. 아프리카 동남부에 있는 모잠비크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5월호, 박광기 마르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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