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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13: 과학기술 만능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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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1-27 ㅣ No.412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13) 과학기술 만능주의 1

과학을 절대적 진리의 잣대로 삼아 신의 존재 부정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인간 존재와 세상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게 된다. 즉,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혹은 이 세상은 무엇이며, 이 세계 안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디인가?“ 등등 존재와 삶의 의미,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애쓴다.

과거에는 종교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으로 여겼고, 여전히 신앙인들은 믿음 속에서 이 모든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근대 이후 과학과 기술 문명의 놀라운 발전을 경험한 현대인들은 종종 과학이 모든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과학 그 자체에 신적인 가치와 신성 자체를 부여하려 한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종교가 과학에 대해서 깊이 우려하는 이른바 ‘과학주의’적인 경향이다.


‘과학주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의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에서 “오늘날 이러한 사고방식 안에서 합리적 확실성이 과학적 기술적 발전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지식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총회 ‘의제개요’(Lineamenta)는 6항에서 오늘날 가톨릭교회와 신앙이 직면한 위기를 6개 영역으로 나눠 설명하고 여기에 ‘과학과 기술 연구’ 분야를 포함시켰다.

의제개요는 과학의 발전이 낳은 “경이로운 일들”에 감탄하고 그 ‘혜택’을 경험하고 그에 의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자칫 과학 기술이 ‘새로운 우상’이 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학이 제공하는 답변들이 부분적이며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진리와 의미에 관한 물음들을 바로 그 과학에 던지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에서 “다양한 문화 속에 파고 들어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과학주의적 성향’을 교회와 신앙의 위협이라고 지적하고, 과학주의가 “인생의 의미 물음과 관련된 모든 것을 비합리적인 환상으로 간주”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교회는 실험과 경험으로 검증된 것이 아닌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과학주의적인 무신론의 경향이 오늘날 세계에 만연한 것을 깊이 우려하면서, 이를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분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주의 무신론

이러한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근본주의로 비판받는 리차드 도킨스류의 과학주의 무신론이 사실상 현대 세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학자인 그는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 등의 저서를 통해 과학을 통해 검증되는 것만이 실재이고 과학적으로 증거를 찾을 수 없기에 신은 ‘망상’이라고 단정했다. 나아가 악의적일 정도로 종교의 기원을 비판하고, 종교는 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전자 결정론자로서 이른바 ‘밈’(meme)이라는 문화적 복제자에 의해 종교가 생겨났고, 밈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문화를 숙주로 삼아 전파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학자이자 신학자이기도 한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과학만이 진리가 아니라며, 도킨스가 신의 존재를 망상이라고 치부하는 것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오류를 밝힌다. 즉 그는 과학 역시 오류를 범하며, 과학은 ‘증명’이 아니라 ‘증거를 평가하고 개연성을 판단하는’ 작업이기에 과학을 절대적 진리의 잣대로 삼는 것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맥그라스 등 비판론자들은 과학을 빙자해 종교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무신론이라는 또 다른 종교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러한 무신론은 매우 교조적이고 과학적 근본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과학적 무신론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지만, 문제는 본격적으로 교조적인 주장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가 현대 세계와 사회의 문화 속에 깊숙이 배어, ‘신앙과 적대적인 전선’(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 의안집 103항) 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의 ‘신 체험’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인간 생명의 문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 ‘진리 안의 사랑’ 제74항에서 “오늘날 기술의 우위성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 사이의 문화적 갈등에서 특히 중요한 논쟁 영역은 ‘생명윤리’ 분야”라고 지적했다.

이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 문제는 “인간은 스스로 생겨난 존재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속한 존재인가?”이다. 회칙은 생명과학이 이 문제에 대한 선택에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정도로 크게 발전했음을 인정한다.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의안집 작성을 위한 답변서를 작성하면서, 한국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생명공학 분야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엄청난 경제적 이윤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 분야의 연구를 장려하고자 처음으로 마련된 한국의 생명윤리법은 오히려 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요인을 다분히 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한국교회는 주교회의 산하 생명윤리위원회를 통해 생명존중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발전이 자칫 하느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 생명의 존엄성까지도 과학이 결정할 수 있다는 교만함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문제 안에서 나타난다. 과학주의의 명백한 폐해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신앙과 이성’에서 “과학주의적 정신은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이끌었다”고 말했다.

“과학이 기술의 진보를 통해서 인간 실존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게 됐고, 이것은 “다양한 문화 안에 파고들어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경계선조차 없어져 버린 것 같다”고 교황은 개탄했다. 바로 이러한 정신 상태가 한국에서 생명과학이 생명산업과 연결되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서슴없이 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탁

여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긴밀하게 결탁한 과학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인간 자신을 상품화해, 배아줄기세포, 혈액, 장기, 탯줄 등을 전시하고 판매에 나서고 있다.

인간 발전의 조건을 세세하게 꼽고 있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은 이를 정확하게 짚고, “기술 지식이 범람하고 있지만 이익을 보는 사람은 기술을 소유한 사람”이며 “그 그늘에 사는 사람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과학은 결코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시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칠 때, 시민사회는 과학 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야 하며, 교회 역시 상시적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교회는 과학주의가 빚어내는 현대 세계와 사회에서의 폐해에 대해 깊이 우려하며, 신앙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무분별한 과학주의적 사고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신앙과 진정한 과학 사이에는 어떠한 갈등도 있을 수 없으며, 비록 서로의 길이 달라도 모두 진리를 추구해왔다고 늘 당당히 밝혀왔다”고 교황은 신앙의 해 반포 자의교서 ‘믿음의 문’ 12항에서 말한다.

과학에 대해 이해하고 열린 자세를 지닌 교회는 이미 여러 문헌들을 통해 언급했듯이,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성과를 누리고 체험해왔으며, 그것이 지닌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교회는 삶과 존재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종교를 대신해 대답하려는 과학의 월권이 문화 전반에 파고 들어 있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어떻게 설득력 있게 신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과학 어떻게 생각해왔나?

교회가 과학에 대해서 체계적인 입장을 밝히지 못해온 것은 사실이다. 근대에 크게 발전한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은 당시까지 교회를 지배하던 그리스도교적 창조론과 세계관에 큰 도전이 됐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과학의 발전에 교회는 비과학적으로 대응, 과학과 종교는 필연적으로 서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오해를 자아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갈릴레오 사건과 지동설을 주장한 부르노의 화형 사건이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가 적대적이라고 하는 주장은 오래 전에 폐기됐다. 오히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적 연구의 끝에서 신앙을 목격했다고 고백한다. 교회 역시 과학이 주는 실증적 진리들을 인정한다.

교회가 과학에 대해 말할 때, 우선적으로는 윤리적 우려를 표시한다. ‘사목헌장’은 제57항에서 과학과 기술을 진리 발견의 최고 법칙이라고 여긴다면 과학과 기술은 오히려 현상론과 불가지론을 조장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자칫 모든 것을 “과학적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반대로 “전혀 아무런 절대적 진리도 인정하지 않는” 경향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 교황청 비신자 사무국 총회에서 한 연설을 통해, 과학 기술 중심 사고는 모든 인간 활동을 한갓 감정으로 치부함으로써 그 이상의 어떤 진리도 알려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럼으로써 결국 사람들을 무신론으로 이끌고 교회가 말하는 신학적 진리를 부정하며, 마침내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같은 존재론적 질문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미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과학과 기술을 소홀히 여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목헌장은 “과학적 정신이 과거와는 다른 문화 형태와 사고 방식을 낳았다”며 “기술의 발전은 이미 지구의 면모를 바꾸어 놓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비교적 명확하다. 즉, 인간 문명의 산물들을 적극 활용하되, 그 올바른 이용을 위해서는 예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신자 과학자들에게 과학의 윤리적 이용과 인간적 발전을 위해 일할 것을 독려한다.

교회는 여전히 과학과 기술의 무절제한 사용의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의학과 생명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서보다는 유전자 복제 등에 비윤리적으로 이용되거나, 핵과 화학 무기와 같은 지구 위의 인간 삶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무기의 개발에 이용될 위험성을 교회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월 27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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