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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신앙선조들, 사순시기 어떻게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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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10 ㅣ No.496

신앙선조들, 사순시기 어떻게 보냈을까

고신극기로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


'회개와 기도의 때' 사순시기다.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 이어지는 사순 40일을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은 어떻게 지켰을까. 그 40일을 들여다보려면 타임머신을 타고 1840~50년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럴 수는 없으니, 당시 김대건ㆍ최양업 신부 등 한국인 사제들이 쓴 서한, 샤를로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 펴냄) 등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이들 사료를 통해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사순 살이'를 살핀다.

조숙ㆍ권 데레사 동정부부는 사순시기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금욕에 대한 훈련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실천했다고 전해진다. 그림=탁희성 화백.
 

1843년 사순시기. 11살 소녀 바르바라는 책 2권과 쌀을 지닌 채 또래 소녀 1명과 함께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깊은 산속 토굴에서 책을 읽고 기도를 하고 동무를 가르치며 지냈다. 사흘 만에 가족에 발견돼 끌려온 바르바라는 그때부터 1주일에 두 번씩 금식재를 지키고 고기와 생선 등 육류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특히 사순시기에는 날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집안일을 할 때나 들일을 할 때나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특히 교리문답과 교리책, 성녀 바르바라와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성인전,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 기타 조선 신심서를 늘 암송하곤 했다.
 
최양업 신부는 1850년 10월 1일자 서한에서 수계생활을 하다 18살 어린 나이로 선종한 바르바라의 삶을 통해 박해시대 사순시기에 신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히 그려낸다.
 
서한을 통해 드러나듯 당시 험준한 산속 벽ㆍ오지에서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던 신자들은 사순시기 때면 단식을 하는 금식재(대재)와 육식을 하지 않는 금육재(소재)를 엄격하게 지켰고, 평상시에도 이를 지켰다. 신자들은 재일(齋日)이면 식음의 절제 또는 전폐를 뜻하는 재(齋, abstinentia)를 지켰고, 이 재는 박해시대 신자들에게 절식과 금육재(소재), 절주 및 금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가뜩이나 조밥에 소금을 겨우 얹어 먹는 열악한 형편인데도, 이조차도 마련하지 못하면 나뭇잎이나 도토리ㆍ풀뿌리ㆍ산나물 등을 먹고 지내야 하는 궁핍한 처지인데도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을 통해 육신을 제어하고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과 더 큰 친교의 관계를 가졌다. 지금이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단식실천 요구, 즉 파스카적 단식 계명(전례헌장 110항)에 따라 사순절의 시작과 성금요일, 그리고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성토요일에도 실행하도록 하지만, 당시엔 사순시기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단식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자신을 극기했다. 이른바 고신극기를 통한 참회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참여해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1801년 순교자 김광옥(안드레아)의 아들로, '하느님의 종' 125위에 포함돼 있는 순교자 김희성(프란치스코, 1765~1816)의 경우가 그 예다. 어려서부터 모든 교리 실천의 훈육을 받으며 자란 그는 아버지가 순교한 뒤 경상도 영양 고을 깊은 산속에 은거해 나무뿌리와 도토리로 연명했고, 사순절이면 엄격한 금식을 지켰다. 자신의 성격을 얼마나 순화시켰는지 그의 온화함은 모두에게 찬탄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부부 간에도 금욕을 지켰다. 이처럼 당시 신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기도와 희생, 자선에 엄격했고, 금욕적인 성향이 강했다.
 
금식재와 금육재가 천주교 신자들의 교리로 알려지면서 이를 지키는지 여부를 보고 천주교 신자인지를 알아내 체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래서 1811년 중국 베이징(북경) 주교에게 보낸 '신미년 서한'에선 금식재와 금육재의 관면을 청하기도 했다.
 
나아가 박해시대 신자들의 사순시기는 '수난 복음'을 묵상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성경 해설서인 「성경광익(聖經廣益)」에 따르면, 신자들은 사순시기가 되면 4복음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수난에 관한 대목만 간추려 묶은 '수난복음'을 집중적으로 깊이 묵상하면서 피정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느님의 종 조숙(베드로, 1787~1819)과 동정부부 사이인 권 데레사(1784~1819)는 특히 금욕에 대한 훈련을 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실천했다. 몸이 자주 아프고 병치레도 많았지만 영신적 열성으로 고통을 기꺼이 참아냈으며, 겉으로 아무런 불편함이나 배고픔도 보이지 않았다. 고통 중에도 예수님 따르기만 열망하면서 자신의 영적 발전을 위한 독학에 몰두했다. 기도에 전력을 기울이던 그는 종종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말을 듣던 모든 이들을 신앙적 열심으로 채웠다.
 
전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조한건 신부는 "박해시대 사순시기는 대림시기에 비해 각종 교회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기에 그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도 "다만 지금보다는 대재와 소재를 잘 지켰다는 기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고 수난복음에 대한 묵상을 기록한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평화신문, 2012년 3월 4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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