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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14: 과학기술 만능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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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2-10 ㅣ No.415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14) 과학기술 만능주의 2

과학 발전할수록 신앙 깊어지고 하느님 존재 이해


그리스도교적 창조론과 세계관에 도전을 해온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이 모든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신자들조차 그릇된 ‘과학주의’에 젖어있는 요즘, 스스로 신앙인임을 고백하는 과학자들은 참된 과학은 믿음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김왕기(전남대학교 명예교수) · 김재완(고등과학원 교수) 박사의 기고문을 통해 과학기술 만능주의를 신앙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한다.


■ ‘과학시대의 신앙’ - 김왕기(전남대학교 명예교수 · 이학박사)

“과학, 자연 이치 규명 위해 결국 하느님께 소급”


현대사회의 과학기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자연과학이 모든 학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 과학기술만능주의에 따라 신앙심은 약화되고, 과학을 절대적 진리의 잣대로 삼아 신의 존재도 부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천만의 말씀이요, 당치않은 말이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신앙심은 깊어지고 신의 존재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神)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종교의 근본문제지만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연계시에 대한 과학적 시각에서 신의 존재를 논리적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다. 신학은 초경험적 존재인 신과 그의 말씀을 연구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과학은 자연의 가시적·경험적 존재의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학문이다. 신학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이,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이 요청된다.

신학과 과학은 추구하는 대상이 다를뿐 아니라 대립되는 분야로 이해돼 상호배타적 학문으로 오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닐스 보어(Niels Bohr)의 말처럼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이다. 신학과 과학은 동일한 범주에서 다뤄질 수 없지만 상호이해를 증진시켜 준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므로, 과학은 자연의 근원을 규명하기 위해 하느님께 소급해갈 수밖에 없다. 과학과 신앙은 만나기 마련이다.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적 광신으로 전락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신앙 없는 과학은 새로운 가설에 의존해 초월성을 배격하기 쉽다.

인간은 오성(悟性)과 이성(理性)에 의해 자연의 궁극적 원인의 존재를 확신한다. 오성은 경험적 대상을 사유하는 인식능력이며, 이성은 초경험적 대상을 사유하는 인식능력이기도 하다.

신앙은 이성에서 출발해 순응에서 완성되는 믿음이다. 신앙과 이성은 상호 모순되지 않고 근본적 조화를 이룬다. 우주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은 이성과 신앙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 지능의 한계성 때문에 하느님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사실 4차원 자연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시공간을 초월한 초자연세계를 간파할 수 없다. 저승이나 내세, 신의 존재 문제는 과학지식을 집결하더라도 실증할 수 없는 영역이자 신앙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성을 초월할 수 있어도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되므로 맹신하면 미신이나 사이비종교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논리적 판단과 함께 믿는 것도 중요하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A. Smith)는 “과학은 광신이나 미신의 독성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라고 말했다.

과학은 언제나 ‘인간의 한계성을 지닌 노력’ 안에 머문다. 이를테면 인간은 밤하늘의 몇 십, 몇 억 광년 떨어진 별을 보고 있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그곳에 가볼 수 없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광속도(30만km/sec)나 그보다 빠른 우주선은 만들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성 때문이다.

진리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자연과학에서는 정리(定理)와 공리(公理)로 나눌 수 있다. 정리는 증명할 수 있는 진리며, 공리는 증명할 수 없지만 논리적 모순이 없는 진리다. 하느님은 자연과 시공과 인과율을 초월한 초경험적 존재다. 하느님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도, 검증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이므로, 하느님의 현존은 자연계시를 공리로 추론해 인지할 수 있다.

하느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 사실은 ‘계시’를 통해 알 수 있다.

계시란 하느님이 당신의 업적과 말씀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보이심을 의미한다. 계시에는 자연(간접)계시와 직접계시가 있다. 자연계시는 대자연의 삼라만상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 인간의 이성으로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말한다. 우주는 하느님의 현현(顯現)이다. 우주는 하느님을 말한다. 자연의 우주만물은 하느님의 과학·예술작품이며, 하느님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직접계시는, 자연을 초월한 신비세계는 도달할 수 없는 인식의 한계가 있으므로 하느님이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해(히브 1,1),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통해(히브 1,2), 이후 사도들을 통해 진리를 설명하는 가르침으로 알려진 것이다.(히브 1,1-2 1티모 2,5 2베드 1,21) 우리가 자연계시를 이해하는 데는 자연과학의 원리로 과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다. 자연을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자연과학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물질과 에너지로 보존돼 있고, 변하고 있으며, 질서가 있다는 사실에서 화학과 물리학의 개념과 원리를 이용한 논리로 신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결국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신앙심은 강화된다.

* 김왕기 박사는 1936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 전남대학교에서 물리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화학반응속도론, 물리유기화학, 양자화학 등 분야에 연구논문 53편을 수록했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5년 광주평협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1년에는 한국평협 주최 제28회 가톨릭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물리학자가 천주교 신자라니?’ - 김재완(고등과학원 교수 · 양자정보과학 연구)

“과학기술의 성과는 완벽하지도, 만능도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물리학자는 엉터리야’라고 대중강연으로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인데 나는 엉터리 물리학자인가. 진지한 과학자들 중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가 많다고들 해왔지만,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과학기술계는 물론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에서도 그리스도 신앙은 자신과 이성(理性)을 속이는 행위고, 신앙인은 학자로서 부적격자라는 분위기가 높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과학과 맞서다가는 신앙을 잃을지도 모르니 차라리 외면하는 듯한 경향이 엿보인다.

신앙에 대한 위협을 극복하면 새로운 힘을 얻는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철학사에서 “그리스도교는 예정론을 믿는다”고 했는데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여쭸더니 “예정론은 잘못이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했다.

마침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 발표 50주년에 관한 신문 특집기사를 읽게 됐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에서는 같은 조건 아래에서 총을 다시 쏘면 같은 곳에 맞지만, 양자물리학에서는 같은 조건 아래에서 쏘더라도 같은 곳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양자물리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증명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양자물리학이 자유의지를 증명한다고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자유의지의 여지는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점 신앙은 깊어졌고, 예비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날 아침도 새벽미사 복사로 시작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거의 기대하기 힘든 일일 것 같다.

나름의 신학이론은 고등학교 시절 정리됐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 이 부분은 논증적이다. - 내 존재의 가치가 인정되려면 적어도 나와 같은 존재가 있어야 한다. - 이 부분은 논증을 초월하는 희망이자 바람이다. - 두 존재는 사랑, 미움, 무관심 세 가지 관계가 가능한데, 사랑만이 옳은 관계다. 존재의 가치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장해줄 수 있는 절대타자, 그분이 ‘신’이다.

대학시절 접한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위협이었다.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고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의 종교성을 말하지만, 실상 그는 그리스도교가 인격신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유한한 삶에서 우주의 신비를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영원한 삶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했다. 그의 겸허한 마음에 감동하면서도, 신앙이 욕심이라는 말에 갈등했지만 ‘하느님이 만든 인간의 가치는 영원한 삶을 바랄 정도로 무한하다’는 생각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대학원 시절, 물리학계는 카오스 연구가 한창이었다. 고전물리학적 비선형계의 미래는 결정돼 있지만 ‘나비효과’로 알려진 것처럼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로 증폭된다. 예정론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실제 자연은 양자물리학을 따르고 고전물리학은 근사(近似)에 불과하므로, 나는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비선형 현상을 바라보는 양자카오스 연구를 했고, 그것이 이어져 현재 양자정보과학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벽한 것도, 만능도 아니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위력을 맹신하고 그 앞에서 움츠러들지만 20세기 과학은 자체의 한계를 드러냈다. 헝가리 수학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수학적 논리체계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체계 안에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없는 명제가 있다. ‘수학이 완벽하지 않다’는 증명을 수학자가 내놓았다는 사실은 논리와 이성이 완벽한 도구라는 믿음에 충격이었다.

비선형계의 예측 불가능성. 앞서 설명한 나비효과다. 복잡한 시스템의 미래가 결정돼있다 하더라도 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훌륭한 컴퓨터와 정확한 데이터를 이용해도 날씨나 시장상황을 장기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캠브리지 대학 루카시안 2대 석좌교수 뉴턴의 프린키피아 300주년 기념연설’에서 16대 루카시안 석좌교수였던 라이트힐 경은 “미래가 예측 가능한 것처럼 오도(誤導)한 것에 대해 과학자들이 대중들에게 집단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확률적 예측만 가능하다. 자유의지에 관한 양자물리학적 논의는 여전히 열려있는 문제고, 자유의지와 존재의 무한한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는 희망과 믿음의 문제다.

나름대로 철학과 신앙이 틀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자 새로운 위협이 나타났다. 대학시절 가톨릭학생회를 통해 알게 된 분들 중 상당수가 신앙을 등지고 있다. 정치·사회·경제문제도 있겠지만 천주교 영성이 그런 문제를 초월하기에 약해진 탓이다.

과학이 겸허히 한계를 내보이는 것처럼, 외형적 성장을 거듭해온 교회의 신앙도 사랑의 찬가 후반부 표현처럼 겸허해져야 한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 12)

* 김재완 박사는 1958년 출생했으며, 1985년 서울대학교와 1993년 미국 휴스턴대학교에서 각각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양자정보과학으로, 미 텍사스 초전도체센터 연구원, 삼성종합기술원 계산과학팀장,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연구부 교수 등을 거쳐 현재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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