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예수님의 쌍둥이가 되어주세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4 ㅣ No.360

[레지오 영성] 예수님의 쌍둥이가 되어주세요



오랜만에 강둑을 걸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던 강변의 정취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강변에 도착한 제 마음은 울상이었습니다. 곳곳에 버려진 오물에 눈살이 찌푸려졌고 퀴퀴한 악취에 미간을 찡그리고 말았습니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서둘러 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한 더미 쓰레기 위를 감싸듯 피어있는 갈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향기가 없어서 고약한 냄새를 지워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절로 “괜찮아... 괜찮아... 네 탓이 아닌 걸 알고 있어”라는 말을 건네게 되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버릇처럼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쓰레기가 넘치는 세상을 더럽다고 버리지 않고 추하다고 돌아서지도 않고 다시 또 다시 새 생명으로 채워주시는 분의 지대한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가끔 성모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그려봅니다. 그럴 적이면 으레 눈에 익숙한 엄마와 갓난아기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옹알이 하는 예수님, 엄마 젖을 먹는 예수님... 물론 응가를 한 예수님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성모님 모습도 제 묵상의 단골 재료입니다. 성모님과 아들 예수님의 평범한 일상을 묵상하노라면 우리의 매일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복음의 재료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성모님은 레지오 통해 세상 살림 꾸리고 계셔

저는 지금 레지오 마리애의 교본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가 성모님의 소원이 깃든 영성운동이며 성모님의 꿈이 이루어진 모임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웃의 어려움을 줄여주기 위해서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모으고, 기도를 모아 봉헌하고 계신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세상 구석구석 눈에 띄지 않는 상처를 보듬어 감싸며 그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 지금도 잰 걸음을 걷고 계실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이 땅에서 그토록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신 이유를 깨달아 실천하고 계신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성모님께서 손수 꾸리시는 세상 살림집의 진정한 일꾼이며 도우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활동이 주님의 기쁨이며 자랑일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먼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봉사와 희생에 존경을 표하게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제가 가진 존경의 근거는 바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맡고 있는 일들이 해도 해도 티 나지 않는 세상 살림살이라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해도 해도 끝도 없는 살림을 매일 매일 매만져 꾸리시는 어머니의 손길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많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잡다한 일들을 사랑과 희생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손길이 세상 곳곳에서 꼭 필요한 그곳에서 작고 소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들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이 성모님의 소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도 당신 아들의 영광을 위해서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서 세상 살림을 꾸리고 계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러분이야말로 성모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효심 가득한 자녀들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기쁨을 위해서만 존재하시는 성모님의 의중을 헤아린 효자효녀들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지 2천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가치관은 날이 더할수록 더 험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결코 복음적이지 않을 것이며 세상 교육도 세상 끝 날까지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기에 급급할 것이라는 점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나 하나가 바르게 산다고 뭔 변화가 있을까 싶어서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주님께서 분명히 지적하신 사안입니다. 온 세상이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익숙하여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우리에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의 지혜를 갖추고 살아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썩어가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질시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뛰어들어 희망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썩어가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날 아름다운 강변을 수놓은 갈대가 쓰레기더미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이야말로 주님 사랑의 흔적임을 느꼈습니다. 썩어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더미마저도 생명의 근거로 사용하시는 당신의 너그러움이 곧 우리의 희망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주위 환경에 개의치 않고 아름답게 피어있는 갈대로부터 그리스도인의 모범적 자세를 배웠습니다.


가난한 삶을 실제 행위로 살아낼 때 사랑의 계명 준수할 수 있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난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가난은 마음속으로 가난하게 살겠다는 다짐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실제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가난한 삶을 실제 행위로 살아낼 때에만 사랑의 계명을 준수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우리의 서약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아 실천할 때에만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유능한지 묻지 않으십니다.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졌는지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다만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처럼, 당신 어머니처럼 세상을 품어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이야말로 변치 않는 복음적 삶이라는 진리를 당신과 성모님의 삶을 통해서 확실히 알려주셨습니다.

글의 끝자락, 저는 어머니의 소원을 살피며 마무리하려합니다. 성모님의 소원은 아들 예수님의 소원과 다르지 않으며 성모님의 바람은 아들 예수님의 바람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려합니다.

성모님의 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당신 아드님 예수님을 꼭 닮은 쌍둥이처럼 살아주기를  원하십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은 더더욱, 예수님과 ‘쌍둥이’가 되어 참 행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원하실 터입니다. 혹여 주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고 힘들 적마다 부리나케 말씀을 통해서 희망과 사랑을 보충 받는 지혜를 갖추기 원하실 것이라 감히 짐작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궂은 세상 살림을 살뜰히 꾸려주실 성모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단원 모두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여 세상을 살리는 예수님의 쌍둥이가 되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이 자랑하고 또 자랑하는 으뜸자녀가 되시기를 마음모아 축원해드립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7월호,
장재봉 스테파노(신부, 부산교구 김해 활천성당 주임)]



1,42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