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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15: 과학기술 만능주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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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2-24 ㅣ No.417

[가톨릭신문-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공동기획 - 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15) 과학기술 만능주의 3

신앙 - 이성 지속적 대화 위한 신학화 작업 요구


2000년 대희년을 앞둔 1998년 주간지 뉴스위크지 한국판에서는 8월 21일자에 ‘21세기의 과학과 종교’라는 특집기사를 마련했다. 우주 팽창의 속도와 150억 년이라는 그 나이를 밝혀낸 것으로 유명한 원로 천문학자 앨런 샌디지(87)는 이 기사에서 무신론자였던 자신이 50의 나이에 신을 믿게 됐다고 고백했다.

훨씬 전인 1985년 미국 달라스에서 열린 과학과 종교에 관한 회의석상에서도 앨런은 이미 유신론자들의 좌석에 자리를 잡았었다. 여기에서 빅뱅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우리를 제1사건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더 멀리 있는 제1원인까지는 데려다 줄 수 없다. 물질, 시간, 공간, 에너지의 갑작스런 출현은 태초에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 오웬 깅그리치도 빅뱅이 유신론적 세계관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결론을 내렸고, 생화학자 케니언도 이전의 입장을 철회하고 세포 분자의 엄청난 복잡성과 DNA의 특성들은 생명의 설계자를 대변하는 증거라고 믿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 과학자들은 과학적 원리를 무시한 믿음으로 종교를 갖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헌신하는 과학의 증거들에 의해 신앙으로 인도된 것이다.

물론 모든 과학자들이 이처럼 과학의 끝에서 신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로써 볼 때, 과학이 결코 종교의 절대적인 적대자는 아닐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증명된다. 역으로, 어느 종교인이든 우주의 나이를 150억 년으로 추산하는 과학자를 향해 성경에 나온대로 창조주가 지어낸 세상의 나이는 이제 겨우 6000년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당신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아니라고 우긴다면 이 또한 과학과 종교를 돌이킬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모는 일이다.

분명히 교회는 과학의 업적과 몫을 인정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신앙과 이성’ 끄트머리에서 “인류가 오늘날의 발전을 크게 빚지고 있는 과학적 탐구의 이 용감한 선구자들에 대한 저의 경탄을 표현하고 격려”하면서 과학이 이룩해온 성취에 대해 거듭 놀라움을 표시한다. 교황의 이같은 경탄과 격려는 곧 “신앙과 진정한 과학 사이에는 어떠한 갈등도 있을 수 없으며, 비록 서로의 길이 달라도 모두 진리를 추구해왔다고 늘 당당히 밝혀” 온 교회의 입장을 그대로 드러낸다.

바로 이 때문에 교회는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표시하고 있다. 특별히 교회는 신앙의 해를 맞아 진정한 과학의 정신에서 벗어난, ‘합리적 확실성이 과학적·기술적 발견에 한정된 것으로 여기는’ 오늘날의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이에 대한 사목적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을 보편교회와 주교회의, 그리고 각 교구에 요청하고 있다.

교황청이 신앙의 해를 맞아 발표한 사목적 권고를 담은 공지문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신앙의 해 기간 동안 각종 ‘호교론적인’ 책자와 리플렛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학계와 문화계에서 심포지엄과 토론회, 세미나 등을 통해, 특별히 가톨릭 대학들에서 신앙과 이성의 창조적 대화를 새롭게 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편협한 과학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앙과 이성의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신학화의 작업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미 세속화된 세계 안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신앙적인 사고를 위협하는 온갖 문화적 경향들 안에서 생활하는 일반 신자들은 ‘과학주의’의 위험성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종교가 하던 역할을 이제는 과학과 기술의 성취가 담당하게 된 오늘날의 사회에서 교회는 더 이상 일반 신자들의 느슨한 신앙 태도,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비난하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교회의 신학자들이 과학주의적 사고방식과 그 위험성에 대해서 경각심과 관심을 갖고 탐구,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서 교회와 신자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교회는 신자 과학자들의 몫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과 사목적 배려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신이 헌신하는 과학적 연구와 신앙의 가교를 건설하고 있는 이들 신자 과학자들이 신앙과 이성,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지니고 있는 지혜와 믿음은 오늘날 교회 안의 신자들이 과학주의에 매몰되거나 치우치기 쉬운 위험성에 대한 해독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2월 24일, 박영호 기자]


[인터뷰] 심종혁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과학 - 종교 융합의 열쇠는 ‘신학적 성찰’


- 심종혁 신부(사진 이우현 기자)


많은 사람들은 과학과 종교가 각을 세우기 시작한 때를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에서 찾는다. 재판정에서 그는 지동설을 부정할 것을 맹세하고 풀려나지만 법정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전한다. 당시 교회는 진리의 세계를 독점하고 과학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주의의 비극은 종교와 과학의 위치가 이제는 뒤바뀌고 있다는 것에 있다.

심종혁 신부(예수회·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갈등되는 영역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것을 1300년대 유럽의 흑사병이라는 참극에서 찾는다. 그는 “신앙인들은 비극에서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렸고, 다른 한 쪽은 원인을 규명하고 실질적 대책을 강구하며, 과학적 노력을 하기 시작한 부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예전과 달리 현대사회에서 진리와 견해를 독점하는 세력은 종교보다 과학적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예전 종교가 했던 역할, 즉 사회에 진리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역전된 상황이다. 과학주의의 대표적 상징으로는 스티븐 호킹 박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위대한 설계」라는 책을 출간하고, 종교는 진리에 대해 말하려고 했으나 이렇다할만한 의미를 답하지 못했으며, 종교와 철학, 신학은 영향력을 잃고 과학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요지의 논리를 편 바 있다.

심 신부는 “대중들은 호킹의 학문적 영역을 언론매체가 전달한 그대로만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며 “과학자의 발견 업적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 중에 성찰이라고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찰의 부재는 교회의 신앙인들과 신학자들이 갖고 있는 한계점과도 맥락을 함께한다.

그는 ‘과학자들은 호기심 때문에라도 탐구를 계속해나갈 것인데 이를 보고 안 된다고만 할 것인가’하고 묻고, 교회 신학자들도 과학의 무지에서 해방돼야 하며, 끊임없는 신학적 성찰을 통해 교리를 재편하거나 과학적 사고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맞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적 사고의 젊은이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합리적 설명을 해줘야 합니다. 과학과 신앙에 대해 사제에게 묻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하는 식의 대답은 지양해야 하지요.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자기고유 사고방식에 얽매여 그것을 주입하려고만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는 사제가 되기 전 학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때문에 누구보다 과학자들의 고유 사고방식을 이해한다. 그는 과학자들을 가리켜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보편 법칙을 만들고자 염원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끊임없이 평행선을 내달릴 것 같은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모델링을 크게 4가지로 나눴다. 대립과 독립, 대화와 통합이다.

“대립은 영원히 갈등하는 것이고, 독립은 과학과 신앙, 서로의 영역을 구분 짓고 침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답변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지요. 대화는 서로의 이견을 좁혀나가는 것이고, 통합은 그것보다 진일보한 견해입니다. 서로의 추구 영역에 대해 보완할 수 있겠지요.”

그는 과학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부족에 대해 지적하면서도, 과학적 진리로만 모든 것을 재단하는 현대사회의 세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인간은 고귀하다’는 명제는 과학적 진리로 증명할 수 없고 오직 철학과 신학적 진리에 의해서만 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역사를 통틀어 영속적이고 지속적인 가치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종교가 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현대과학이 갖고 온 새로운 가치체계를 성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인간관계의 양상도 변해가고 있지요. SNS를 통해 젊은이들이 ‘내가 오늘 어묵을 먹었네’등의 사사로운 사건들을 인터넷에 올리고 나누는 것을 보면서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결국 저의 고전적 사고방식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교회도 마찬가지로 과학을 재래적 사고방식으로만 판단해버린다면 이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 공동체성 등 그리스도 고유의 가치도 신앙인들에게 끊임없이 교육돼야 하는 문제다. 그는 떼이아르 드 샤르뎅 신부를 언급하며 과학과 종교를 융합하고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모델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고 했다. 샤르뎅 신부와 같은 작업이 오늘날 절실하다는 이야기다.

“그리스도는 우주 궁극의 원리로서의 하느님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은 인격적 하느님이지요. 그리스도는 인격적 관계를 맺고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 사랑으로 다가섭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하지요. 일반신자들은 종교와 과학 모두에 순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게 과학주의가 위협적 사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학적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종혁 신부는
- 서강대학교 수학, 이론 물리학 전공
- 미국 웨스톤신학대학원 영성신학 전공
-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교의신학박사 학위 취득
- 현재 예수회 회원,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가톨릭신문, 2013년 2월 24일,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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