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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탐욕 (2) 종교적 가르침과 심리학으로 본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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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23 ㅣ No.891

[영성과 심리로 보는 칠죄종] 탐욕 (2) 종교적 가르침과 심리학으로 본 탐욕

 

 

탐욕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을 듣고 이에 더 충실하고자 노력했던 수도승들과 교부들은 탐욕을 교만에 결코 뒤지지 않는 중대한 죄로 여겼다.

 

언뜻 보면 탐욕은 수도승이나 교부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탐욕은 인간을 영적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성덕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는 죄’로 여기면서 그 누구보다도 탐욕을 경계했다.

 

▶ 근심과 슬픔의 원인

 

에바그리우스는 수도승들에게 탐욕이 그들을 어두움에 살게 하고 슬프게 하며 근심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수도승들에게」, 18항, 57항 참조).

 

말씀을 더욱 철저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 안에서도 탐욕이 끈질기게 활동하고, 그 방법도 더욱 교묘해졌다. 그러면서 수도승들을 파괴시킬 수 있고 신앙인들에게 복음의 기쁨 대신 근심과 슬픔, 어둠에 머물도록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탐욕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바실리오 성인은 설교를 통해(「내 곳간들을 헐어 내리라」 외) 탐욕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바실리오 성인은 탐욕스러운 사람을 “충분한 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으며 “충분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의 특징으로 소개한다.

 

▶ 탐욕이 낳는 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탐욕으로부터 배신과 사기, 거짓, 위증, 불안, 폭력,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무정이 나오는데 이를 탐욕의 ‘일곱 딸’(「욥기 주해」 참조)이라고 소개한다. 이 일곱 죄는 탐욕이 자주 사용하는 수단이며 서로 연합하여 탐욕을 섬긴다.

 

▶ 사랑의 무질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탐욕을 모든 죄의 원인이며 뿌리로 여기면서 이를 오직 재물에만 국한된 욕망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절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욕망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이 욕망은 ‘사랑의 질서’를 깨트린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이 참된 성덕으로 나아가려면 ‘사랑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의 질서를 ‘향유’(frui)와 ‘사용’(uti)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따르면 사랑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향유해야 할 것을 향유하고, 사용해야 할 것을 사용하는 데 있다. 향유의 대상은 하느님이어야 한다.

 

그 반면, 사용의 대상은 시간과 역사 안에 있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것들이다. 만일 반대가 될 경우 사랑의 질서가 깨지고 불행해진다. 결국 탐욕은 사용해야 할 대상을 향유로 여기는 혼란이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덕에서 멀어지고 불행해지게 한다(「그리스도교 교양」 참조).

 

 

탐욕의 특징

 

다양한 종교적 윤리적 가르침(특별히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과 현대 심리학에 따르면 탐욕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만족이 없다

 

탐욕을 의미하는 라틴어 ‘avaritia’는 “재물을 ‘더’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란 뜻이다. 결코 만족을 모르는 욕망의 본질을 지닌 인간은 저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조금 더’를 외친다.

 

바실리오 성인이 일컬은 대로 탐욕스러운 이들은 ‘충분한 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정작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고 욕심이 가득하다. 라틴어 ‘miser’는 ‘비참한’ 또는 ‘불행한’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로 오늘날 영어권에서 ‘구두쇠’(miser), 곧 쩨쩨하고 인색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결국 구두쇠처럼 탐욕스러운 사람은 비참하고 불행하다.

 

▶ 누구나 탐욕의 대상이 된다

 

단테는 「신곡」 ‘연옥편’에서 탐욕의 벌을 받고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한쪽은 재물을 탕진한 자들이고, 다른 한쪽은 재물을 손에 쥐고 남에게 베풀지 않은 자들로 서로 비난한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 양쪽 모두 이 땅의 재물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집착으로 사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성경과 인류 역사에서 보듯이 왕이나 시종, 열심인 신앙인이나 비신앙인, 재물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누구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 불안과 열등감이 탐욕의 통로가 된다

 

탐욕은 불안과 열등감을 통해 작용한다. 첫 번째 탐욕의 통로는 불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직장에서 해고될까, 하던 일이 잘못될까, 건강을 잃게 될까, 노인이 되면 어떻게 할지, 동료와 가족이 떠나가면 어떻게 하나 등을 염려하며 만성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사회와 경제적 상황, 불안을 자극하는 다양한 상업적인 마케팅은 우리에게 미래를 대비하도록 더욱 더 보이는 돈에 집중하도록 부추긴다. 탐욕은 그 불안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움직이는 신을 창조하고 섬기도록 만든다.

 

두 번째 탐욕의 통로는 열등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돈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부족하고 낮다고 여기는 열등감은 돈에 대한 광적인 몰입과 집착을 부른다. 하지만 그 열등감은 더 높은 대상을 향할 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 죄에 무감각해진다

 

탐욕은 끝이 없다. 그래서 자주 정상적 경계를 훨씬 넘어선다. 조금 더 갖고 싶은 욕망은 적절히 제어되지 않으면 위험을 동반한 행동까지도 감수하게 만들어 거짓과 배신뿐 아니라 폭력, 도둑질, 사기, 횡령, 살인과 같은 불법까지도 저지르게 한다.

 

하느님 백성의 법이며 살 길인 ‘십계명’은 인류 역사 안에 이러한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도록 두 계명(9계명과 10계명)에 걸쳐 강조한다.

 

▶ 이미 벌을 받고 있다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탐욕에 빠진 사람은 종종 더 열정적이고 활력이 있으며 행복한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좌절, 우울함, 외로움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탐욕의 벌이면서 동시에 탐욕으로부터 도주하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특별히 탐욕스러운 자는 인간관계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벌을 받는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한 명도 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쩌면 은퇴 이후에 많은 이가 이러한 속담을 경험했을 것이다.

 

재물과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늘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적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인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인지에 따라서만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이익’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그들은 공동체와 대사회적인 역할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해진다. 그러한 삶은 자신만의 세상을 더 공고히 만들고 혼자만의 섬에 고립되게 만든다.

 

* 김인호 루카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TV ‘김인호 신부의 건강한 그리스도인 되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저서로 「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김인호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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