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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2012 세계 협동조합의 해 (상) 한국 천주교회와 협동조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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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08 ㅣ No.603

[2012 세계 협동조합의 해] (상) 한국 천주교회와 협동조합운동

협동조합, 더 나은 세상 만드는 '대안 모델'


유엔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International year of Cooperatives 2012)'로 보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Cooperative Enterprises Build a Better World)'이 표어다. 유엔은 지난해 10월 31일 제66차 총회에서 '세계 협동조합의 해' 선포식을 갖고, 각국 정부가 협동조합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적절한 재정 지원을 함으로써 협동조합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촉구한 바 있다. 가톨릭교회에도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기관들이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교회의 사회 가르침도 긍정적이다. 교회 협동조합 운동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과제는 무엇인지, 전망은 어떤지 두 차례에 걸쳐 조명한다.


인간적 대우 받으며 기쁘게 노동

모자가정 가장인 봉제노동자 장영옥(클라라, 52)씨 일상은 솔샘일터에서 비롯되고 마무리된다. 그는 여느 봉제공장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노동 환경에서 일한다. 1993년 초창기엔 100만 원 남짓하던 급여는 이제야 180만 원으로 올랐지만, 다른 공장에 비하면 그리 많이 받는 편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환경에서도 열아홉 해째 수단과 장백의, 성직자 셔츠, 수도복, 복사옷, 성가대옷 등을 마름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그가 이렇게 오래 한 직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바로 솔샘일터가 '봉제 생산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이고 자신이 노동자이기에 다달이 몇 만원씩 내온 출자금이 600만 원에 이를 만큼 조합에 애정을 쏟으며 일을 해왔기에 그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또 신용협동조합인 명례방협동조합에도 300만 원을 출자, 어려운 이웃과 연대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협동조합에서 열심히 일한 덕에 그는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고, 지난해 3월엔 아들이 대학을 나와 천안에 있는 중견기업 연구실에 취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서울 삼양동선교본당 복음화위원장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넉넉하게 아이를 뒷바라지 못했지만 협동조합이 있었기에 삶의 질도 높아졌고 인간적 대우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젠 솔샘일터도 자본이 부족해 공장을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있는 49.59㎡(15평) 크기 반지하 주택으로 옮겼고, 조합원도 4명으로 줄어 협동조합을 유지하기가 버겁기만 한 게 현실이다.


1993년 서울 빈민사목위원회와 함께 출범

- 지난해 6월 전주교구 나바위성지에서 가진 성지순례 겸 연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명례방협동조합원들.
 

눈에 띄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협동조합은 교회와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협동조합'은 대안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위기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조합원이 10억 명에 육박할 정도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소유하는 사업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1993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와 함께하며 출범한 명례방협동조합(이사장 박명희)과 솔샘일터, 유기농 생산자협동조합인 화목공동체, 재활용공동체인 살림협동조합 등은 대도시와 농촌, 도시빈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출범 당시 4700만 원이던 명례방협동조합 종잣돈(출자금)은 2011년 말 현재 6억 4064만여 원으로 불어났다. 총 대출액은 6억 1114만여 원으로 출자금 대부분은 어려운 이웃이 대출해 사용하고 있다. 이율은 연 7%(생산공동체 대출이율은 4%) 수준으로 비교적 낮은데도 상환율은 60~70%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고 독촉이나 압류는 없다. 그냥 "내 주십시오"하는 정도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생겨난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물론 협동조합 유지는 결코 쉽지 않다. 7개이던 생산공동체 협동조합은 3개로 줄었고, 남아 있는 협동조합도 위태롭다.

- 제의와 성직자 셔츠, 수도자옷 등을 마름하는 생산자협동조합 '솔샘일터' 조합원들.
 

노숙인 자활을 목적으로 생겨난 협동조합도 있다.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갈거리사랑촌 주도로 2004년 설립된 갈거리협동조합(이사장 김종훈)이다. 노숙자와 무료급식소 '십시일반' 이용자, 저소득층 조합원 280여 명이 1억 4000여만 원을 출자했다. 적게는 20~30만 원, 많게는 200만 원의 대출금은 노점 운영을 위한 소액창업자금이나 난방비, 자녀학자금, 의료비 등으로 쓰인다. 상환율이 95%로 높다. 나머지 5%도 해당 조합원의 사망에 따른 것이어서 사실상 상환율은 100%에 가깝다.

농촌 지역에도 협동조합이 태동하고 있다.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가 지난해 11~12월 중 '가톨릭농민회와 함께하는 생활협동조합학교'를 개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올 한 해는 꾸준히 생태ㆍ환경 아카데미와 함께 심화과정으로 생활협동조합 교육을 실시한다.
 
강성중(이시도로) 안동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은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식생활 및 생태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방안을 시도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조합원이 소유하고 운용하는 협동조합만의 시스템은 교회정신을 살리는 쪽으로 새롭게 개념이 정립되고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일반 협동조합과 조합원 수나 출자금, 전체적 규모면에서 뒤떨어지지만, 교회 협동조합 모델은 은행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용협동조합이나 타 생산자ㆍ소비자 협동조합과는 달리 신앙과 애덕을 토대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며 생산공동체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회적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협동조합의 해 제정 배경과 취지

국제연합(UN)이 2012년 한 해 의제를 '협동조합(Cooperatives)'으로 설정한 것은 조합원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협동조합 사업 모델이 전 세계 시장이 공정한 경쟁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200년 넘는 세월 동안 협동조합은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온 데다 경쟁을 부추겨 이득을 도모하기보다는 조합원들 요구에 부응해 함께 번영하는 공유경제를 지향해 왔다는 데에 유엔은 주목했다.

'협동조합의 해' 선정은 국제사회가 사회경제적 발전에서 협동조합의 가능성과 긍정적 역할, 그 영향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들어 금융 위기에 직면한 국제사회는 전 세계 경제 붕괴라는 치명적이고 비극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지난 4년 동안 유일하게 예금 및 이용자가 증가한 협동조합 금융부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반 기업처럼 주주 이익에 봉사하지 않고 사람(조합원) 모두에게 봉사하는 협동조합 금융모델이 새로운 협동조합 성장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동조합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협동조합만의 독특한 법적, 재정적 체계를 담을 그릇이 될 협동조합기본법도 제정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 세제 지원도 부족하다. 생산자 협동조합의 경우 자체 생산기술이 미약하고 소비자 협동조합의 경우 마케팅 능력도 떨어진다. 부족한 것 투성이다. 그렇지만 대안금융모델로, 대안기업모델로 협동조합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천주교회도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교회의 첫 사회 가르침인 「새로운 사태」는 협동조합을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간추린 사회교리」 339항도 노동의 가치를 증진하고 개인과 사회의 책임의식, 민주적 삶, 시장과 사회 발전에 중요한 인간적 가치를 증대시키는 데 중요하고 의미있는 본보기로서 협동조합을 들고 있다.
 
[평화신문, 2012년 1월 8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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