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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그리스도교 철학자: 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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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1-08 ㅣ No.202

[그리스도교 철학자] 복자 존 헨리 뉴먼 추기경

 

 

신학, 철학, 그리고 교육 분야에 걸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복자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추기경의 생애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저술한 일기와 편지, 메모를 포함하여 수많은 저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생에 걸친 종교적 진리의 탐구를 통해, 그는 「4세기의 아리우스주의자들(The Arians of the Fourth Century)」, 「그리스도교 교의 발전에 대한 논고(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동의의 문법을 위한 논고(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외 여러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설교와 강연 자료들을 남겼습니다.

 

 

생애와 주요 작품들

 

180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뉴먼은 할머니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지만, 청소년기에는 토머스 페인(1737-1809년 : 미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영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년), 볼테르(1694-1778년) 같은 계몽주의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때 종교에 회의를 품기도 합니다. 성공회의 월터 마이어즈 신부는 이 시기의 뉴먼을 칼뱅주의적 복음주의로 이끌었고, 이후 뉴먼은 어린 시절의 단순한 신앙을 넘어 복음의 위대한 진리들에 헌신하게 됩니다.

 

옥스퍼드대학교를 구성하는 대학 가운데 하나인 트리니티대학을 졸업한 그는 1825년 성공회에서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러나 뉴먼은 당시에 팽배한 자유주의의 방만한 물결에 혐오감을 가졌으며, 성직에 대한 정치적 간섭에 심한 의분을 느껴 1845년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게 됩니다. 그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교회와 전통교회 정신으로의 회귀를 갈망했던 자신의 개종에 대한 변을 「자기 생애를 위한 변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개종한 이후, 그는 자신의 초보적 이성주의를 극복하고, 신앙을 우위에 둔 이성을 추구합니다. 뉴먼은 필립보 네리 성인의 정신을 따라, 1848년 버밍엄에 영국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했으며, 1879년에는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으로 서임됩니다. 1890년 선종한 뉴먼은 2010년에 영국을 방문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릅니다.

 

 

신앙 우위의 철학

 

뉴먼은 일생 동안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며, 이미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부터 오리엘대학의 지성주의자들을 비판합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했던 설교에서 “신앙은 내재적 힘을 통해 스스로를 확증하며, 이성을 사로잡아 그 위에 군림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신앙은 인식과 행위의 도구로,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것들과는 상이하며, 특히 이성 아래에서 이해되는 것에 종속되어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선물에 대해 열려있는 겸손한 마음을 통해 자라는 것임을 확인합니다. 이성이 지닌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신앙을 우선시한 뉴먼의 이와 같은 입장은 증거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적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17세기 영국 경험론자들이 내세웠던 증거주의는, 어떤 명제에 대해 증거가 보장하는 정도를 넘어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윌리엄 페일리(1743-1805년)와 같은 신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가 기적이나 예언의 성취와 같은 외적 증거를 통해 결정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뉴먼은 이러한 증거주의 학파의 객관주의를 경계하라고 권합니다. 무엇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기에 증거 그 자체로 신앙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뉴먼은 이러한 맥락에서 증거가 사람의 견해를 바꾸는 일은 드물다고 주장하며,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보통 그것을 원하고 필요로 하여 응답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마음에는 증거가 낭비만 될 뿐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계시종교는 지성만이 아니라 전인격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에 신앙은 필요나 갈망이 없는 누군가가 논증의 설득력을 바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주장합니다. 또한 주어진 증거에 따라 추론한 결론은 증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조건적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얻은 추론적 결론의 신앙은 언제든지 새로운 조건 아래서 소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직관주의를 반대하는 추론 감각

 

뉴먼이 증거주의를 주의하도록 당부했지만, 신앙의 증거들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는 증거주의에 대해 반대한 만큼 직관주의 또한 배격합니다. 직관주의자들은 이성주의에 반하여, 인간의 순수한 마음에는 영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하는 인지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뉴먼이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경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설득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직관을 결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직관주의와 증거주의 사이에서 뉴먼은 객관적 증거가 아니라 올바른 마음 상태가 미신과 불신앙으로부터 신앙을 지켜준다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뉴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의존하여, 우리의 신앙이 덕스러움의 여부에 상당 부분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 행위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인도하는 덕으로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제시하는데, 뉴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개념을 차용하여 ‘추론 감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실제 삶에서 효과적으로 갖가지 추론과 확신을 행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러한 행위들의 논리적 근거를 정확하게 나열할 수 없듯이, 이성에 종속되지 않는 신앙의 행위도 개연적인 조짐들과 현상들로부터 종교적 확신을 이끌어낼 수 있고, 종교적 확신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경험들이 추론 감각을 통해 확실한 결론으로 인도된다면, 믿을 준비가 된 이는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

 

뉴먼에게 신앙은 직관에 따른 것도, 또는 철저한 이성적 추론에 따른 것도 아닌, 일종의 내적인 성향으로,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자기 현현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충실한 초자연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정의는 이성적 노력과 더불어 그 안에 신앙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자 하는 뉴먼의 노력을 엿보게 합니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찾는 노력은 “인간이 성령의 이끄심 아래 하느님을 찾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고, 신앙과 이성에 대해, “인간 영혼을 들어올려 진리에 대한 명상에 이르게 하는 두 개의 날개”(회칙 「신앙과 이성」 참조)라 묘사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이러한 뉴먼의 가르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신앙과 이성에 대한 고찰 외에도 뉴먼의 개혁적인 사상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요한 사상적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어서, 어떤 이는 그를 공의회의 “숨겨진 교부”라 부르기도 합니다. 뉴먼의 다양한 저술들이 평신도들의 역할, 양심, 교육 등에 관한 공의회의 가르침들 안에서 숨 쉬고 있으며, 교회 일치를 위한 시대의 요청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허석훈 루카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내고 지금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3년 12월호, 허석훈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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