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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전환기의 가정사목: 프란치스코 교황과 주교 시노드 임시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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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2-11 ㅣ No.772

[복음살이] 전환기의 가정 사목


프란치스코 교황과 주교 시노드 임시총회



‘동성애’, ‘혼전 동거’, ‘이혼 후 재혼’은 가톨릭교회에서 오랫동안 가정과 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비윤리적인 것으로서 단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톨릭신자들 안에서도 ‘동성애 행위’를 ‘본질적인 무질서(intrinsic disorder)’라고 규정한 교리를 바꾸어 달라거나 ‘동성 결혼’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점차 늘어나고, 혼전 동거를 선택하는 커플이 증가하고, 이혼 후 재혼함으로써 영성체를 하지 못하게 된 이들이 교회 공동체와 멀어지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10월 5일부터 19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 사목과 복음화’를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를 소집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하여 현대 사회에서 제기된 시급한 가정의 위기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회의는 1년 후 2015년 10월 4~25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가정의 신비와 소명’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14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를 준비하는 성격으로서, 세계 가정의 현실을 진단하고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솔직한 토론과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여 이를 정기총회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논의하려는 의도에서 미리 열린 것입니다.

가정을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시노드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1980년 9월 26일~10월 25일까지 열린 제5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후 34년 만입니다. 이 시노드의 결과는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1981년 교황 권고 「가정공동체」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1980년 주교시노드 정기총회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면, 이번 2014년의 임시총회는 기존의 가정에 관한 교리에 대한 도전에 직면한 교회가 사목적인 관점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방향과 필요성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은 임시총회 전 설문조사를 통하여 각 지역 교회에서 제안한 내용들과 온라인을 통해 전달된 개개인의 의견들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가정 사목과 복음화’라는 주제의 의안집을 6월26일 발표하였고, 이를 임시총회의 기본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단죄보다 자비 체험하고 다시 교회로 들어오게 하려는 사목적 배려

이처럼 이번 시노드 임시총회가 주목받는 것은 가정 안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혹은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삶을 살아가며 교회로부터 멀어져 있는 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단죄보다는 주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다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사목적 배려의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2013년 7월29일 가톨릭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위한 브라질 방문을 마친 뒤 비행기 내 기자회견에서, 동성애자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 대한 질문에서, “동성애자인 누군가가 주님을 찾으며 선한 뜻을 갖고 있다면, 내가 누구이기에 그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If someone is gay and he searches for the Lord and has good will, who am I to judge?)”라고 대답하면서, 교회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더 개방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낳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을 지닌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지난 2월 추기경회의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조건들을 고려하고 회개를 거친 후에, 즉 사회적으로 이혼하고 재혼했으나 교회법적으로는 혼인무효를 거치지 않아서 죄의 상태인 재혼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제안한 바가 있었으며, 실제로 교황은 지난 9월 이 문제를 다룰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기 때문에, 이번 시노드에서도 혼인법과 관련된 규정의 완화 제안이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언론들은 시노드 임시총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개혁적 행보가 개방성과 투명성으로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했습니다. 우선 교황은 시노드 회의 첫날 참가자들에게 “솔직하고 용기 있게 말하고 겸손하게 들을 것”을 당부하며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참가자들은 이혼하고 재혼한 이들의 영성체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찬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동성애 문제가 논의 주제로 공개석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황은 과거 시노드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정리된 결과만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논의의 전 과정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시노드 기간에 매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간에 발표된 토론 보고서도 즉각 배포되어 보도되게 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신자들의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특히 중간보고서(토론 보고서)와 정리된 최종 보고서를 모두 공개하였고, 심지어 세세한 투표 결과를 모두 공개함으로써 중간보고서에 있던 어떤 표현이 최종보고서에서 빠졌는지, 최종보고서의 어느 문항이 얼마나 많은 주교들의 찬성으로 채택됐고, 어떤 문항이 최종 보고서에 채택되지 않았는지도 모두 알려지게 한 것입니다.

이 임시총회의 최종 보고서는 공식적으로 공표된 교회의 입장이 아니라 내년 정기총회까지 각 지역교회에서 더욱 숙고하고 논의하도록 제안된 문서입니다. 

이번 시노드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던 것은 토론 보고서에 있었던 ‘동성애자를 교회 안에서 환영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마치 가톨릭교회가 오랜 금기를 깨고 동성애를 인정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지만 최종 보고서에는 이런 표현이 삭제되었고, 대신 기존의 가르침대로 동성애자를 존중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로 수정되기도 했습니다.


재혼자들을 위한 사목적 방안 마련에 더 많은 논의 필요해

총 3부, 62개 항의 임시총회 최종 보고서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론(1~4항), 제1부 가정의 상황과 도전(6~11항), 제2부 가정의 복음(12~28항), 제3부 사목방안(29~61항), 결론(62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각 문항은 시노드 교부 183명의 찬반투표를 거쳐 2/3 이상의 찬성표를 얻은 내용이며, 이 투표를 통해 13일 발표된 토론 보고서에는 포함됐던 동성애자 관련 문항, 이혼한 재혼자의 영성체 허용 관련 문항은 부결되었습니다.

또한 최종 보고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단일성이 교회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가정의 중요성과 교회와 사회에서 지니는 가정의 의미를 강조하는 교회 전통 가르침에 따른 결론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혼인무효소송 절차의 간소화를 발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내용과, 이혼과 재혼의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촉구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교황청 대변인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부결된 내용은 주교들의 삼분의 이 이상의 합의를 얻지 못한 것일 뿐 앞으로의 논의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며 앞으로 계속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대표로 시노드에 참가한 한국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도 시노드를 마치고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재혼한 신자들의 영성체 허용 문항이 채택되지 못한 것은 주교들이 이에 반대한다기보다, 재혼자들을 위한 사목적 방안 마련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 모여 그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임시총회는 우리나라보다 이미 오랫동안 혼인과 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현실의 삶의 괴리에서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서방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회의의 연장선에 있는 내년의 정기총회에서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생각입니다. 이미 바티칸의 여러 고위 성직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 수 없다고 한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예수님께서 직접 확인하신 원칙이기 때문에 교회가 바꾸지는 못합니다. 

남녀가 행하는 혼인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평생 동안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상호보완과 부부일치의 사랑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협조자로서 사랑의 결실로 새로운 인격체를 세상에 보내는 출산의 사명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녀의 상호보완과 출산이 불가능한 동성애를 교회가 창조질서의 하나로 받아들이거나 동성애자들의 결합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들이 교회 안에서 편견 없이 활동할 자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마련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커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영성체를 위해서 그들의 과거 혼인을 무효화하는 절차도 더 간소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혼란의 시기에 교회는 성과 가정에 관한 하느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하는 일과 현실에서 그 가르침에서 멀어져 있는 신자들을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받아들이고 신앙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12월호, 박정우 후고 신부(가톨릭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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