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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종교 다양성의 세계에서 조화 증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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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40

종교 다양성의 세계에서 조화 증진하기

 

 

종교 다양성은 인류 역사의 어떤 시기보다도 더 분명하게 현대세계의 현실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조화와 협력 안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필수적 과제이다.

 

이 글에서는 종교인들 사이의 조화를 증진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결실 있는 종교 간 협력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요건들, 종교 지도자들의 책임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1. 종교 다원성

 

세계에는 하나의 종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로 많은 수의 종교가 존재한다. 가톨릭 신자 수는 세계 전체 인구의 약 18% 정도이며, 그리스 정교회, 동방 예법 교회, 성공회, 개신교 등의 그리스도교 신자 수는 15% 정도이다. 이로써 전체 그리스도교 신자는 인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17%, 힌두교는 13%, 불교는 7%이다. 그러나 이들 종교 외에도 다른 많은 종교가 있다. 곧 유다교, 전통 종교, 시크교, 바하이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일본 신도 등 실로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D. Barret,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1982년, 782-785면).

 

이들 종교는 대다수 인류의 삶의 모습 속에 자리하며, 인간 집단들의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수천 년 세월의 반향을 담고 있다. 각각의 종교는 깊이 있는 종교적 자산인 경전을 소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의 지혜를 전달하는 데 이바지한다. 종교는 인간의 지상 실존을 위협하는 근본적 질문들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살지,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가르쳐왔다(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 선교」, 53항 참조). 

 

모든 종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종교의 신자이건 같은 도시나 나라에 함께 살거나, 국제적 사업, 정치적, 문화적, 교육적, 종교적, 그 밖의 다른 접촉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을 수용하고 존중하려면 그들의 종교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데 개방적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종교 간 대화는 우리 세계의 다원적 종교 현실에서 성립된다.

 

 

2. 일치와 협력을 향한 세계의 갈망

 

우리는 접촉과 만남, 이해, 조화, 일치와 협력을 갈망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국가와 민족과 사람들은 함께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누며, 특히 가능한 상처를 치유하고, 더욱 안정적이고, 영속되는 평화를 수립하기를 희망한다. 우리 시대에는 과거 인류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 더 많은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립주의는 점점 더 발 디딜 틈이 없어져가고 있다. 또한 이제는 서로 공통으로 지닌 요소들이 그들을 구분하는 요인들보다 점점 더 중요시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세계를 더욱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발전이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비행기, 텔레비전, 팩스, 인터넷, 전자우편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사업 또는 관광, 순례 또는 교육적 목적,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하는 국제 여행이 잦아졌다. 뿐만 아니라, 인류학과 민족학, 종교학 등의 학문 분야가 놀랍게 발전하였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더욱 조화로운 세계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데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종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다양한 종교의 신도들은 서로 만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도록 노력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종교인으로서 무엇을 함께할 수 있는지 자문할 것을 요청받는다.

 

 

3. 주요 도전과 문제에 함께 대응하기

 

세상에는 종교인들의 협력을 요청하는 중요한 문제와 도전이 존재한다. 우선 정의와 평화와 관련된 문제들이 있으며, 인종, 종교, 언어, 사회적 지위, 성(性)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역사적 이유 또는 다른 이유로 발생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는 분쟁과 전쟁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불의와 전쟁을 촉발하는 데에는 소수의 사람만으로 충분하지만, 정의와 평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정의와 평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 간 장벽은 중요치 않다.

 

더욱이 국내적이고 국제적인 수준에서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사이의 연대를 거부하는 상황과, 정당하게 얻은 것일지라도 부유한 이들이 갖는 재산의 소유권은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수반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상황들이 존재한다. 

또한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불의와 차별 행위가 발생하는데, 때로 이들을 매춘의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상황과 가정 파탄을 이유로 사회의 소외된 지역에 사는 거리의 아이들도 있다.

 

또한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유발하고, 어떤 경우 사람을 노예화시키는 약물 남용과 에이즈 등 현대의 심각한 문제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여러 종교의 신자들은 이러한 중요한 도전과 문제에 직면하여 무관심한 상태로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 종교의 최고 이상은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찾고자 힘을 모을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 상황들은 마음의 확실한 전환 없이는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이러한 마음의 변화와 전환을 시작하는 데 가장 강력하고 깊은 동기를 제공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종교 간 협력은 단순히 바라는 것을 넘어 꼭 이루어야 할 필수적 과제이다.

 

 

4. 폭력의 위협

 

오늘날 종교 간 협력을 이루는 데 저항하며 떨쳐버려야 하는 어려운 현실은 바로 폭력의 위협이다. 폭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종종 인종적 민족적 이유, 또는 치유되지 않은 역사의 기억 때문에 공공연한 폭력을 자행하도록 하는 긴장 상황이 존재하며, 경제적 어려움, 실업, 빈곤, 공동체에서의 소외 등으로 발생하는 폭력이 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고자 폭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러 잘못 해석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첨예한 종교적 문제들은 더욱 파괴적인 폭력을 낳는다. 

 

사실 종교가 그 자체로 폭력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그 이름에 걸맞게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그러면 그들도 너희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황금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종교를 이유로 폭력 행위에 가담하게 되면,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 때문에 그들 목숨을 버리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종족 간 분쟁, 내전, 테러, 종교 광신도의 행위, 그리고 이른바 인종 청소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대규모 학살 또는 인종 말살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또한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폭력, 낙태를 통한 태아에 대한 폭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종교의 신도들은 서로 수용하고,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용서와 화해, 사랑과 일치를 증진하는 데 힘을 모을 것을 요청받는다. 진정한 종교는 용서가 나약함의 표시라 가르치지 않는다. 하느님은 생명의 하느님이시지 죽음의 하느님이 아니시다. 하느님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하느님이시며, 긴장과 미움이 아닌 화해와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종교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폭력과 전쟁, 죽임을 일삼는 것은 모순이 된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은 비난과 반대를 받아 마땅하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 신도들이 선교나 그들 종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성찰하도록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공동 선언 등을 할 중요한 의무가 있다.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뉴욕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이 테러를 당했을 때,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과 미국 이슬람 위원회 의장은 이 사건을 애통해 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또한 1996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와 국제 이슬람 기구 대표들 간의 연락위원회 회의에서는 알제리에서의 폭력 상황과 7명의 수도자를 납치하여 살해한 데 대한 비난을 표명했다. 2001년 9월 11일 이래로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단체들은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에 대해 많은 공동 성명을 내놓았다. 이러한 공동 성명은, 사람들이 그들 종교의 지도자들이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더 많아질 필요가 있다. 

 

 

5. 상호 풍요로움의 증진

 

종교 간 대화는 다른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 신앙에 접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킨다. 우리는 종종 다른 관점을 만났을 때, 진리에 더 가까이 도달하게 되며, 더 많이 연구하고, 깊게 하며, 이해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만남은 스스로의 신앙을 정화하고 깊게 한다.

 

종교 간 대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긍정적 가치와 별도로 대화에 참여하는 종교들은 서로를 풍요롭게 한다. 종교 간 대화에서 그리스도교는 타 종교를 향상시키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보편성을 획득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몇몇 종교들이 그들의 불필요한 신념과 습관들을 벗어버리는 것을 도왔다. 불교가 사회사업과 인류 증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도왔으며, 또한 불교와 이슬람교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여성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 교회는 교리와 인종, 문화, 행정 조직, 언어와 경배 등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차선이 될 수 없는 보편성의 개념을 종교 간 대화에 가져왔다. 실로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라고 말한다.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일하며, 이 세상을 함께 일구어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종교 간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 역시 타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 이들 종교는 종교 간 대화를 통해 그들의 문화적 환경을 전해준다. 곧 그들 민족의 언어와 철학적 내용, 관습의 표현, 민족에 맞는 지역적 특색을 가져다준다. 이들은 이 선물들로 그리스도교를 풍요롭게 한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로부터 이러한 선물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이것을 정화하고 강화하며 발전시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민족들의 역량과 자산과 관습이 좋은 것이라면 촉진하고 받아들이며, 받아들임으로써 실제로 정화하고 강화하며 승화시킨다. 사실 교회는 저 임금님과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임금님께 만방이 유산으로 주어지고, 뭇 민족들이 그분의 나라로 선물과 예물을 가져온다.”(교회 헌장, 13항)라고 말한다. 교회는 어떤 문화에도 묶여있지 않으며, 어떤 문화와도 동일시되지 않는다. 교회는 모든 문화 안에서 모든 문화와 함께 어울릴 수 있다.

 

 

6. 결실 있는 종교 간 협력을 위한 요청

 

종교 간 협력이 진실하고, 오래 지속되며, 결실을 맺게 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지라도 타 종교인들을 그들의 정체성 안에서,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얻고자 하며, 일반화의 오류를 피하고,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종교 간 차이점은 부정할 수 없을지라도 많은 부분에서 의견의 일치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타 종교인에게 보여주는 존중과 수용의 자세는 종교 자유의 권리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Dignitatis Humanae)에서는 이 점을 강조한다. 어느 누구도 종교와 양심의 문제에 대하여 타인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종교는 권유되는 것이지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주의는 일종의 결과이다. 종교를 가지고, 이를 실천하며, 이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다른 이들과 나눌 권리에는 지역적 경계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한 종교가 다수를 이루는 국가에서 타 종교인의 종교의 자유는 부정하면서, 자기 신자들의 종교 자유만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새천년기가 되어서조차 몇몇 나라에서는 이 상호주의가 사실상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타인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 간 대화에 임하는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부정하도록 요청받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진실함과 성실함 안에서 타 종교인을 만나고 협력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7.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종교 지도자들은 점점 더해가는 종교 다원성의 세계에서 그들 신도들이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수용하며, 협력하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 각지에는 여러 분쟁 상황이 존재한다. 발칸 지역, 수단, 필리핀 남부, 인도네시아, 서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에서의 분쟁이 그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이 분쟁들의 원인을 종교라고 쉽게 단순화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종교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그러한 긴장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들을 어떻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할지 그들 신도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분쟁은 정치적, 경제적, 인종적 요인, 또 가끔은 실제로 종교적 요인 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때로 실제적이건 감에 의한 것이건, 적절히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치유되지 않은 좋지 못한 기억이 이유가 되는 때도 있다. 깊이 분석해 보면 이러한 슬픈 상황에 대해 종교가 모든 설명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개인으로 또는 단체로 자기 비평을 하는 데 신자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만일 어떤 개인이 또는 어떤 종교 공동체가 타 종교에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성하고, 있는 자리에서 잘못을 받아들이며, 용서와 화해를 청해야 한다. 이는 나약함의 표시일 수 없다. 이러한 진정성이 훌륭한 관계를 이루도록 돕는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의 상징적 행위는 그들 공동체에 교육적 가치를 발휘한다. 종교 지도자들이 서로 방문하거나(특히 각 종교 주요 기념일 등에서), 종교 행사에 축전을 교환하고, 위급 상황이나 국가 기념일에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면 그들 신도들에게 종교 간 조화는 신학적인 무엇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이룰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게 된다. 

 

가톨릭 교회는 종교 간 협력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종교 간 대화에 관한 이 시대의 대헌장인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Nostra Aetate)를 발표하였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평화를 촉진하고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자 아시시에 세계 종교 대표자들을 초대하였다. 1999년 10월에는 다가올 세기에 더 나은 세계를 위하여 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찰하는 세계종교회의가 바티칸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세계의 가톨릭 교구들과 수도회, 각종 위원회와 기구들은 종교 간 대화를 주도하여 오고 있다. 

 

* 출처: Francis card. Arinze, “Promoting Harmony in a World of Religious Diversity”, Pro Dialogo(2002.2.),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195-201면, 이준혜 편역. 

 

* 이 글은 아린제 추기경이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이었을 당시(2001년 11월 28일) 필리핀 마닐라 동부 대학(University of the East)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사목, 2004년 8월호, 프란시스 아린제(교황청 경신성사성 장관 ·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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