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의 영성은 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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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4 ㅣ No.358

[레지오 영성] 레지오의 영성은 ‘순명’



저는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마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신부가 되고 싶다고 답했던 기억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가을 쯤 어느 날, 부모님이 저를 보자고 하시더니 혹시 신학교에 가지 않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신학교에 간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신학교가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때 제가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이 그걸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형제가 일곱이 있었는데 그중 남자 형제가 다섯입니다. 부모님은 그중 하나라도 사제를 만들고 싶어 하셨지만 번번이 실패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저한테까지 차례가 오고 만 것입니다. 저는 차마 부모님의 바람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들처럼 모질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장할 수가 없어 신학교에 가게 되었고 그냥 하루하루 살다 보니까 신부가 되어서 지금까지 2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져

그러고 나서 이제와 생각해 보면 저는 제 뜻대로 산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자는 대로 살아 왔고, 남들이 좋다는 대로 그냥 따라서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그냥 떠밀리고 또 떠밀리면서 이때까지 살아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선택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남자가 되고 싶어서 남자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신부가 되고 싶어서 신부가 된 것도 아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나에게 그냥 주어진 것들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일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내 형제들과 가족들도 내가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살다보니까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언제부터인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를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더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모두 내 의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나는 그렇게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과 함께 지금도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때로는 못 마땅하고 맘에 들지 않아도 저는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 맘에 드는 물건을 골라서 삽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맘에 안 들면 그 가게를 찾아가서 다른 물건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이렇게 언제든지 되돌릴 수도 있고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에겐가 선물을 받았다면? 그런데 그 선물이 맘에 안 든다면? 그러면 참 아쉽지만 그 선물을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만족하려고 애쓰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꿀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우리 인생은 이렇게 바꿀 수 없는 것들, 그냥 주어지는 것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불만을 품고 살아가면 그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맘에 안 드는 것들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하고 항상 사랑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결과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봄이 좋을 듯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로부터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 받았습니다. 성모님이 무엇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선택하셨고 성모님은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해드린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쉬워 보일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일이 그렇게 쉽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느님 뜻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우리가 선택한 삶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우리가 선택해서 낳았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좀 더 예쁘고 착하고 머리도 좋고 그런 자녀로 골랐겠지요. 우리 부모를 우리가 선택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태어났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에 우리는 이렇게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 되겠다고 한 적도 없고, 부모를 택한 적도 없고, 때로는 세례 받겠다고 한 적도 없지만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우리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왜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이고 우리의 인생은 이러한 부르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예”라고 답하고 순응하고 순명하면서 살아가는 길 뿐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바꾸려고 하거나 다시 선택하려고 하면 그로인해서 불행한 일들이 생겨납니다. 선물을 받아놓고 그 선물을 싫어하면 그 사람이 행복하겠습니까? 어떻게든 받은 선물에 대해서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부모님을 싫어하고 자식을 싫어하고 배우자를 싫어하고 자기 직업을 싫어하고 동료들 친구들을 싫어하고 자기 생김새마저 싫어하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순명할 때 우리에게 행복하고 보람된 인생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하느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5장 16절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 봐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성모님께서도 하느님의 선택에 대하여 거부하거나 바꾸어보려는 태도보다는 받아들이고 순명하심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고, 세상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되셨던 것입니다.

레지오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성, 곧 레지오의 영성은 바로 순명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유를 따지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레지오의 영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6월호,
김찬회 세레자 요한(신부, 서울대교구 서원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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